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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연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3)

사랑이 변했다고 느끼는 여자에게 사랑을 증명하려는 남자

by 연두씨앗 김세정

<사랑이 변했다고 느끼는 여자와 사랑을 증명하려는 남자>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았다.

여자에게는 사랑의 상처가 있다. 남자에게도 사랑의 상처가 있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이 받았던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남자에게 이야기해준다. 남자는 여자의 상처를 공감해준다.

여자는 떠나간 남자를 잊지 못한다. 남자의 마음이 떠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잡지 못했던 자신의 무기력함에 잠식해 있었다. 남자는 그것이 여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준다. 여자는 남자의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꾹 참는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을 단단하게 둘러싸고 있던 얼음조각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서로가 자신의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정말 바보 같죠? 내가 얼마나 그때 멍청했냐면...

만약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이 혹시 후회할까? 그 사람이 나를 그리워해 줄까?

그런 멍청한 생각까지 한 거 있죠."


"진짜 그럴 수도 있겠죠."


여자는 남자의 대답에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바라봤다.


"진짜 죽었으면 그리워하며 후회했을까요? 뭐 잠시는 그랬겠죠. 결국은 다른 누군가를 만나 잘 살겠지만..."

여자는 방금까지도 그리워하면 눈물을 흘리던 옛 남자에 대해 시니컬한 반응을 지었다.


"나도 잊지 못하는 여자가 있어요. 그녀는 당신 말대로 죽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이제 평생 잊을 수 없게 되었어요."


여자는 무척 놀라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여자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남자는 죽은 옛 연인과의 이야기와 철없던 자신의 옛이야기를 여자에게 들려준다.

여자는 눈을 반짝이며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자는 그 남자에게 상처 받았을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그 남자에게 '잊히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묘한 질투심을 느꼈다.


"이제 우리 셈 셈인가? 이런 얘기 누군가에게 해 본 적 없는 거 같은데...."


이야기를 마친 남자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머쓱하게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셈 셈이에요. 그래도 내쪽이 그쪽보다 더 구질구질한 것 같아요."


"그녀가 떠나고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래도 당신은 자기 삶을 잘 살고 있잖아요. 그 편에선 오히려 내 쪽보다 나은데요."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엔 '죽은 그녀'가 남자의 마음에는 '잊지 못하는 그 남자'가 자리 잡고 앉았다.


여자와 남자는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고 사랑을 이어나갔지만 그들 역시 여느 연인처럼 서서히 식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여자는 이 남자 역시 그녀에게 익숙해지면 그녀가 질렸다며 자신을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자주 사랑하느냐고 물었고, 남자는 사랑한다고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더 이상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랑해. 그런데 넌 왜 나한테 사랑한다는 얘길 안 해?"

"내가? 그랬나?"

여자의 눈치를 살피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았다.


"사실 요즘 달라진 기분이 들어."

"뭐가?"

"사랑받는 느낌이 안 들어."

"사랑하는데."

남자는 그녀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더니 꽉 안아주었다. 그녀는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와 남자를 바라봤다.

"아니 그런 말 말고..."

여자의 표정은 진지했고, 그녀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남자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믿어줄 건데? 내가 심장을 꺼내 보여줄 수도 없고..."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아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댔다.


"느껴봐. 이렇게 뛰고 있잖아. 내가 널 사랑하는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여자는 잠시 자신이 남자를 의심했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내가 더 잘할 게.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 진짜 그런 소리 한 번만 더 해봐. 그땐 진짜 내가 너 다시는 안 봐."


여자는 남자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자는 남자의 변화를 느낄 수 없었고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

남자는 여자에게 했던 다짐대로 정말로 다시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녀가 전화를 걸어도, 그녀가 문자를 보내도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여자는 남자가 떠나고 생각했다.

'역시, 마음이 변했던 게 맞아. 결국은 날 떠날 거였어. 이제는 나랑 헤어졌으니 나 말고 다른 예쁘고 귀여운 여자애들을 만나겠지. 잘했어. 잘 헤어진 거야.' 여자는 자신의 선택이 옳은 거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여자는 다른 남자들이 그랬듯이 남자가 헤어진 뒤에라도 자신을 사랑한다면 한 번쯤은 다시 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원래 자기 마음대로 조절이 안되니까, 막는다고 막을 수 없는 거니까.

'아무리 미워하려 해도 미워해지지 않고,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으니까....'

연락을 해도 남자의 연락이 없자 그녀는 그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했다. 남자는 여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남자와 헤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여자는 비로소 자신이 왜 첫 번째 남자에게 버림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연애의 권태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남자는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그녀를 떠났고, 연애의 권태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한 여자는 남자가 변했다며 이별을 선택했다. 여자는 두 번의 연애에서 권태기에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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