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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Oct 23. 2021

[부부 일상] 최고의 주말

마법의 주문! 주말 아침은 아빠가 쏜다!!!

 금요일이 다가오자 불안해졌다.

"아.. 주말에 뭐 먹지?"

 

 음식 하기 싫어하는 나는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여러 번 후회했었다. 차라리 회사 가서 돈을 벌어온다고 하면 음식을 안 해도 될까? 하지만 회사를 다녀도 아마 여자인 내가 육아를 하고 식사를 준비해야 함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육아나 살림을 비교적 잘 도와주는 남편이지만  어쩐지 요리는 자주 해주진 않는다. 아이가 어릴 때는 잠도 못 자고 매번 해롱 해롱 하는 아내를 위해 가끔 깜짝 요리(?)를 해주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 남편의 일이 많아지면서 남편의 요리는 더욱 맛보기 힘들었었다. 물론 지금도 종종 아주 근사한 식사를 마련해주기는 하나.. 그래도 대부분의 식사 준비는 아내인 내 몫이었다.

 

 나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배만 부르면 굳이 음식에 대한 미련이 없는 편이다. 맛이 없어도 그래도 먹을 수 있고, 늘 같은 메뉴라도 크게 질리지 않는다. 미각이 예민한 엄마(?)와 미각이 둔감한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미각이 둔감한 여자였다.

 다행인 것은 내가 어릴 때 먹었던 엄마의 음식 덕분인 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는 음식과 간 보는 능력(?)은 그나마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요리는 언제나 어려웠다. 한 때는 방송에서 맛집 프로그램도 하고, 심지어 요리 코너까지도 해봤지만 그것만으로 나의 요리가 늘지는 않았다. 아니 요리는 할 수 있는데, 요리를 하는 걸 싫어한다.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주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식재료를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 손의 감각이 예민한 나는 음식 재료들의 낯선 느낌들이 불편하다.

 식당업과 학교 급식 조리 일을 하시는 시어머니와 어릴 때부터 동네 장금이로 소문난 친정어머니 사이에서 나의 요리는 처참했다.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요리보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데, 아내이고 엄마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요리를 하는 것뿐이었다.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과 비교당할 때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남편은 음식에 대해 크게 불평불만은 한 적은 없다. 대체로 차려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이었지만 나와는 약간 식성이 달랐다. 나는 한식과 고기 위주의 음식을 좋아하는 한 편, 남편은 양식과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다. 결혼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밀가루 음식은 떡볶이와 라면뿐이었다.


 신혼 때는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서툰 솜씨로 콩나물을 무치고, 시금치를 무치고, 된장찌개를 끓였던 적도 있었다.


 

"맛이 어때? 짜? 싱거워??"

엄마표! 밀키트 & 뷔페식 & 간편식의 조합

어릴 때 엄마가 음식을 할 때마다 나를 불러 간을 보라고 할 때마다 나는 귀찮아했는데 막상 내가 요리를 해보니 엄마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괜찮아." "쫌 많이 짠데?" "싱겁긴 한데 난 이런 게 좋아"

 남편의  속 시원한 대답은 상처였고 어정쩡한 대답은 마음이 불편했다.

 


건강을 위해 싱겁게 먹겠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모든 요리에 간을 덜하고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해 매운 음식도 다 뺐다. 손이 느려 음식을 하나 하면 주방은 엉망이었고 나물 몇 가지를 하면 시간은 시간대로 다 가 버렸으나 항상 양이 남아 결국 다 버려야 했다.

 그러다 아이들까지 챙기면서 나는 반찬가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반찬가게를 이용하니 다양한 반찬을 그날그날 적당히 사서 기존 반찬과 같이 먹으니 반찬 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그렇게 요리에서 멀어졌던 나였다. 특히나 음식 투정이 없으나 뭘 먹어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신랑의 입맛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반찬가게의 반찬도 며칠만 먹으면 물렸다. 날마다 반찬을 다르게 하기도 힘들고. 날마다 비슷한 반찬을 주기에도 눈치가 보였다.


 나는 퇴근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가장 고민되고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여보. 오늘 뭐 먹지? 먹고 싶은 거 있어?"

 "글쎄..."

사실 남편의 답변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냥 투정 부려본 거였다. 내가 묻는 10번의 대답 중 8번 이상은 '아무거나 혹은 대충 있는 거 하고'였다.

남편의 대답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나 치킨 배달 선물 받은 거 있는데 저녁에 치킨 사갈까요?"

'오~ 나의 구세주여~ 금요일 저녁에 일용할 양식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어~ 치킨 좋아요~ 불금엔 치킨이 짱이죠~"


"여보.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요?"

남편은 치킨을 사 오면서 큰 딸이 좋아하는 떡볶이와 둘째 딸이 좋아하는 순대와 아내가 좋아하는 오징어튀김을 사 왔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음식을 보고, 그냥 밥을 먹을 걸 그랬나 후회가 약간 들었지만 피곤한 금요일이니 그냥 넘기기로 했다.

 저녁을 다 먹고 나니 또 걱정이 됐다.

"주말엔 뭐 먹지?"

아.. 저녁 한 끼만 차리면 되는 평일에 비해 주말 3끼씩 6끼를 뭘로 먹어야 하나?


저녁 고민을 하고 있다가 피식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다. 갑자기 내일 아침 메뉴가 생각이 났다.

금요일 저녁, 남편이 투자하던 미국 주식이 수익을 냈다. 남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보... 수익 났어요? 좋겠네. 기분 좋아요?"

"당연히 좋죠."


남편에게 달려가 아까 생각해 뒀던  준비된 동작과 함께 큰 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내일은 토요일~ 내일 아침은 여보가 쏜다!!!!"


사랑의 총알~♡   사진출처 : 러블리즈 이미주

  남편은 한 발과 양 손을 모으고 괴상한 포즈로 사랑의 총알을 날리는 의 행동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남편의 웃는 얼굴을 보니 잘하면 성공할 거 같았다.


아이들과 놀다가 기회를 보고 이번에 아이들과 함께 외쳐본다.

"내일 아침은 아빠가 쏜다!!!!!"

"내일 아침은 아빠가 쏜다!!!!"

딸 둘과 동작을 맞춰 침대 누워있는 아빠에게 내일 아침을 강력하게 어필해본다.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한번 더 웃는다.

'한 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남편이 핸드폰을 보다가 웃는다.

"뭐 좋은 일 있어요?"

남편은 왜 웃는지 나에게 설명한다. 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잘 안 들린다.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큰 소리로 외친다.

"기분 좋으니깐 내일 아침은 여보가 쏜다!!!!"

"내일 아침은 내가 쏜다!!!"

아빠가 사랑의 총알을 받으면 성공!!!      사진 : 영탁


세 번째 주문만에 드디어 성공~ 새로 만든 마법주문(?)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이것으로 고민스러웠던 주말 아침은 해결이 됐다.


저녇시간 잠자리에 누우며 둘째가 남편에게 얘기한다.

"아빠 샐러드는 no!"

"Ok.. 샐러드 접수!!"

 둘의 대화가 왠지 이상하다. 남편에게 살짝 귀띔해준다.

"여보 방금 윤이 말 들었죠?"

"들었지~ 그래서 얘기했잖아요. 샐러드도 준다고~"

"샐러드도~ 가 아니라 샐러드 노!!라고 했어요"

"어?? 내일 아침 샐러든데..."

"치킨 있는 거 같이 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되겠네"


슬금슬금 불금을 즐겨본다. 주말 아침~ 남편의 서비스로 시작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굽신굽신 거리면 남편에게 깍듯하게 90도 폴더 인사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토요일 아침, 약속한 시간이 되자 늦잠 자는 세 모녀를 깨우러 아빠가 들어온다.

"일어나요. 아침 먹어요. 빨리빨리"

 피곤한 몸을 벌떡 일으켜 식탁 앞에 1번으로 앉는다.

"우리 여보가 최고예요~"

어설픈 강원도 사투리로 신랑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아빠표 주말 아침들...

딸내미들이 좋아하는 맞춤 음악까지 서비스로 깔아주는 센스...

밥 먹다가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는 딸들...

어쨌든 엄마는 기분이 좋다.

오늘도 가장 맛있다는 '남이 차려준  밥'을 먹었다.


일요일 저녁,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먼저 말을 꺼낸다.

"우리 뼈찜 먹으러 갈까? 코로나 터지고 한 번도 안 갔네."

"뼈찜? 나는 뼈찜 좋아하지~"

 코로나 전에는 주말에 아이들과 감자탕 집에 가서 종종 감자탕이나 뼈짐을 먹었다. 코로나로 놀이방도 문 닫고 사람 많은 곳을 피하다 보니 감자탕집은 오래간만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뼈찜은 여전히 맛있다.

"여보 오늘은 진짜 최고의 주말이에요"

"최고의 주말?? 왜??"

"나 주말에 밥 안 했잖아. 완전 최고지~ "

밥 안 하는 게 좋은 나는 불량주부였지만 이번 주 나는 행복한 아내였다.


 

남이 차려준 밥 =외식?

 불량주부의 최고의 주말 끝!

내일부터는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자!!


"주말 아침은 아빠가 쏜다"

마법의 주문을 쓰기 전에 주의사항

1. 기분이 좋은 지 확인한다.

2. 어이없게라도 무조건 웃겨라!

3. 부탁한다고 해 줄 사람(?)인지 확인한다.



매번 뭘 차려야 할지 고민하는 엄마는

아빠가 차려준 밥이 먹고 싶다.

아니 아빠가 차려준 밥이 아니라도

밥 하기 싫을 땐 외식도 좋다.

아니 밥을 준비했을 때

맛있게 잘 먹어주기만 해도 좋다.


다시 주말이다.

남편은 내가 아직 자고 있는 줄 알고 있다.

나는 남편이 틀어놓은 음악과 남편의 움직임을 듣고 브런치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고맙다. 본인도 피곤할 텐데 가족을 위해 음식 하기 어렵다며 투정 부리는 아내를 위해 아침 샐러드를 준비하는 남편이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뿜뿜 뿜어낼 것이다. 주말 아침 값을 하기 위해 이제  침대에서 일어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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