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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글] 6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주제 : 이별, 할머니

by 연두씨앗 김세정


아파트 화단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을 보며

쪽진 할머니의 머리가 생각이 났다.

언제인지도 모르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고 어린 시절

어렴풋이 남아있는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꼬부랑 할머니였던 나의 할머니

우리 엄마의 할머니, 우리 외할아버지의 어머니인 나의 할머니


6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전화를 받은 엄마의 목소리에서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느꼈다.

하늘이 너무도 맑은 일요일 오후였다.

교회 종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는 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너무 슬플 거라고 미리 너무 울어서였을까?

눈물을 흘리고 싶은데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너무도 냉정한 나 자신이 싫었지만 눈물이 정말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짜내려 해도 나오지 않는 눈물이 야속할 정도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 전에 엄마와 함께 할머니가 계신 엄마의 고향인 진안에 간 적이 있었다.

자리에 누워계신 할머니의 모습은 이전에는 본 적 없는 늙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우리 삼 남매를 알아보시곤 눈물을 흘리셨다.

이미 피부는 오래전 말라버린 것처럼 주글주글했고 무척 차가웠다. 동공은 탁해질 대로 탁해져서 회색빛에 가까웠고, 살갗이 겨우 붙어있는 굽어있는 손가락은 화석처럼 딱딱했다.


할머니는 있는 힘껏 우리의 손을 꽉 끌어 잡고 있었다.

누워서 눈물만 흘리는 할머니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허리가 넘어질 대로 구부러진 할머니는 이제 혀까지 돌돌 말려 구부러져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어린 우리들에게 작은할아버지께서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죽기 전엔 혀가 말려 목구멍을 막아 기도가 막혀서 죽는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정말 끝을 향해 달려가고 계셨다.


며칠 째 생사를 헤매며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할머니는 우리 삼 남매가 도착하자 정신을 차리셨다. 누워계신 채로 우리 손을 잡고 아주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셨다.


그렇게 할머니를 만나고 온 지 3일이 지났을 때였다.

이미 그때의 할머니는 나의 기억 속의 할머니가 아니었다.

장판에 용돈을 숨겼다가 과자를 사주시고, 동생의 분유를 퍼서 언니와 나의 입에 나눠 주시던 할머니, 밥맛이 없다고 투정 부리면 물에 밥을 말아서 씻은 김치를 올려 주던 할머니의 기억들이 너무 흐려져 있었다.

할머니를 잊지 않고 평생 사랑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자라면서 퇴색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날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문득 떠올려보니 나에게 가장 편안함을 준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나는 내가 박 씨가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할머니의 6명의 자식들 중 장남의 6명의 손주 중 둘째 딸의 3남매의 둘째 딸인 나는 할머니와 너무 멀었다.

할머니가 묻힌 가족묘지에 나는 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


살아오며 종종 할머니를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임신을 하고, 우연한 기회로 할머니의 묘소가 있는 곳을 찾았다.

그리운 할머니에게 그 작았던 소녀가 이제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인사를 전했다.

무덤가의 하얀 나비가 날아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렸다.

지나가는 소나기였을까? 정말 잠깐 잠시 거짓말처럼 내린 뒤 그쳐버렸다

같이 간 작은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네가 니가 와서 너무 좋은가보다. "

흰나비가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 할머니가 보고 있는 듯,

하늘은 울다 웃다를 반복했고,

무덤가의 흰나비들이 나에게 몰려들었다.

맨드라미와 함께 찍던 할머니

맨드라미 앞에 무표정하게 있던 할머니의 사진이 기억난다.

빨간 맨드라미 앞의 할머니는 이미 팔순을 넘긴 나이였지만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그 모습마저 곱고 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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