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인간관계, 벽을 치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에 관하여
그냥 느낌적인 느낌!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보고 만나며 살아간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친해졌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알아서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고
불편한 사람 같았는데, 막상 그 속을 알고 다가가고 싶어 하면서도 주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어릴 때 사람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정한 도덕적, 정의라고 생각하는 기준을 정해놓고 그것이 아니면 마음 한 구석에서
스스로 멀어졌던 것 같다.
결국 내게 남은 사람은 몇 없었고, 스스로 떠나는 습관처럼 남들도 그럴까 봐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나를 좋아해서 다가오는 사람들은 내게 쉽게 흥미를 느끼고, 쉽게 흥미를 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랑 비슷해서 서로 주저주저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주저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일 경우에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 같다.
나는 사람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함께하는 어울리는 사람, 불편한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따뜻하거나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기 때문에 그들과 가까워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그들과 굳이 가까워지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한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 적도 있지만, 이젠 그걸 바라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이 인간적으로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도 포함된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내가 어떻든 대부분의 사람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준다. 그래, 그것이면 족하다.
별이 빛난다고, 꽃이 아름답다고 내가 가지고 싶다고, 내 곁에만 둘 수 없는 노릇이다.
반짝이는 별과 아름다운 꽃은 내가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편안함을 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 중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불편한 사람도 있다.
불편하다고 하여 무조건 싫은 것은 아니다. 어느 때는 그 사람이 너무 좋아 보여서 불편한 사람들도 있다.
그저 내 마음이 조금 불편해하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뚜렷하게 밀어내지는 않지만, 조금 더 선을 명확하게 할 때는 있다.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나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일 경우도 있다.
나는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항상 정자세, 바른 정신으로 꼿꼿하게 예의를 지킨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에게까지 나의 약한 모습,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런데 간혹 그런 불편한 사람들 중에는 내 마음이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서 스스로 벽을 만든 사람도 꽤 많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과연 내가 마음의 선이 없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무수한 선이 있고, 벽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만들어준 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 만든 벽 안에 내 발로 들어가 내 몸을 굳이 거기에 맞춰서
아무도 못 찾기를 바라면서 누군가가 찾아주기를 바라는 아주 모순적인 마음이다.
그러다가 정말 말도 안 되게 기적적으로 나를 발견해주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가 사람들을 피해 산속에 들어가 얼음성을 짓듯이
나 역시 마음에 얼음성을 지어놓고 혼자 지내는 느낌이었다.
엘사의 마음이 조금 더 뻔뻔했다면 엘사는 굳이 산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의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 엘사의 마음이 스스로를 성에 가두었다.
엘사의 피곤한 성격을 보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사람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나는 사람을 겉을 보고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친절하다 하여, 웃고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저 사람을 느낀다.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무뚝뚝해도 된다.
그 사람의 표정을, 그 사람의 말을, 그 사람의 글을, 그리고 그 사람이 즐겨 보는 것들,
그리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들을 보고 그 사람을 느낀다.
누군가를 만나면 보는 것 자체로 얼굴에 웃음을 띄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럼 그 사람을 찾아간다.
누군가를 보면 이유도 모르게 주눅이 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은 되도록이면 피한다.
그 사람의 기운을 찾아간다. 밝은 사람, 긍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나를 밝게 해 준다.
나는 그 밝은 기운을 닮고 싶다.
가끔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것이고, 그 사람의 본질은 모른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대해 쉽게 속단할 수도 없다.
그러나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버리는 내 감정 때문에, 스스로 다른 사람에 대해 오해할 때가 가끔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정답은 '나'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외로운 게 아니라... 내가 외로운 거였다.
그 사람이 슬픈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슬픈 거였다.
그래서 그 사람의 감정이 나에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을 모르겠다.
내 마음에 벽이 많아서 남들에게도 벽을 잘 느낀다.
그래서 조금만 벽이 느껴지면 그 벽 앞에서 돌아서버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벽을 지닌 사람들은 사실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벽을 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 곁을 자주 기웃거린다.
벽을 만들었다는 것은 상처가 많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상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내어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안에 있는 마음이 따뜻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성이, 그 벽이 견고할수록, 그 마음의 깊이는 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의 깊이가 다르다.
그 깊이가 얕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 깊이가 깊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저 깊이는 다르고, 저 마다 자신에게 맞는 깊이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은 그냥 외롭다.
누가 다가와도 외롭고, 누가 없어도 외롭다.
외로운 게 꼭 괴로운 것도 아니고, 외로운 건 그냥 외로운 거다.
누가 온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그 외로움에 들어간 건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내가 나올 때까지 아무도 나를 밖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그냥 누군가가 외롭게 느껴진다는 게
나 자신이 외로워서인지
그 사람이 외로워서인지 잘 모르겠다.
가끔 느껴지는 다른 사람의 감정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나는 나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근데 왜 그런 생각이 자꾸 들까?
몰라도 되는 마음까지 느껴지는 이상하게 예민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