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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1학년은 몇 시에 끝나지?

뭔가 느낌(?)이 온다면, 알림장을 열어보라!

by 연두씨앗 김세정
1학년 교실 풍경

<새 학기, 우리는 1학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

우리 집 귀염둥이 둘째가 드디어 학교에 입학했다.

첫째가 입학할 때는 밤잠을 제대로 못 잔 거 같다.

이 어린 녀석(?)을 어찌 혼자(?) 학교에 보낼까?

마음 같아서는 투명인간(?)이 되어서라도 따라가고 싶었다.

'친구들과 잘 지낼까? 학교에 적응은 잘할 수 있을까?'

그나마 병설유치원을 나온 첫째는 제법 학교생활에 익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유치원이 아닌, 초등학생으로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12월생 느린 첫째에 비해, 2월 빠른 둘째라 그런지 둘째의 일에는 난 늘 느긋했던 것 같다.

첫째가 말이 느릴 때는 바로 언어센터로 쫓아가서 치료를 알아봤다면

둘째가 말이 느릴 때는 언젠가 할 테니깐 조금 더 기다려보자라는 생각으로 변해있었다.


아이가 자란 만큼, 엄마인 나도 자라서 일까?

아이 키우는 데, 아주 조금의 노하우도 쌓여갔다.

다른 첫째 아이의 엄마들보다 둘째 아이인 나는 조금 더 여유로웠던 것이 사실이다.

첫째 아이 가방을 전년도 10월부터 보기 시작했다면, 둘째 아이 가방은 입학 전 2월에 구입했다.

대략적인 1학년 생활을 알아서 인지 걱정도 별로 없는 편이었던 것 같다.


실시간으로 알림장을 체크하던 첫째 때와 달리, 그날 하루가 가기 전에만 느긋하게 알림장을 체크하는 여유만만(?) 둘째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느긋하게 마음을 먹으려 해도, 1학년 엄마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1학년 입학을 두 번째 경험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첫 번째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로 그동안 학교가 많이 변한 것도 큰 차이점 중 하나였다.

입학식 패션~


멋진 입학식을 했던 언니와 달리 둘째의 입학식은 제대로 구경도 못했다.

강당을 짝꿍과 함께 행진하던 첫째의 모습을 보며 감격에 마음이 벅차오르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둘째는 우르르 교문 앞에서 이름 순서대로 줄을 지어 학교로 들어가서 그 뒷모습이 끝이었다.


그래도 둘째라서 안심이었다.

둘째라서 잘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변덕쟁이 날씨처럼 내 정신도 오락가락>


작년의 거의 절반을, 방학 내내 나와 함께하던 첫째가 개학과 동시에 학교로 갔다.

유치원에서 하루를 보내던 둘째도 입학과 동시에 학교로 갔다.

갑자기 생긴 나의 시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이도 피곤했지만, 새 학기의 엄마도 너무 피곤했다.


아이들을 위해 백신도 미리 맞았다. 엄마라도 맞아야 아이들이 걸릴 확률을 줄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신 후유증으로 며칠을 앓고 나니 머리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몸이 회복되는 대로 1학년과 4학년의 학사 일정을 체크하고 새 학기 준비에 바빴다.

남편은 일이 더 많아졌고, 아이들 돌봄은 오롯이 엄마인 내 몫이었다.


혼자 보내는 오전 시간은 늘 그렇듯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계를 보며 아이의 하교 시간을 체크했다.

초등학교 1학년, 첫 적응기간에는 점심을 먹고 바로 하교를 했다. 점심 전 후, 먹는 순서대로 오니 급식을 빨리 먹는 아이는 11시 50분에 오고,

급식을 천천히 먹으면 12시 20분에도 나왔다.


"엄마, 다음엔 11시 50분에 와서 기다려."

등교를 하며 둘째가 신신당부를 했다.

"밥을 11시 반부터 먹는데, 11시 50분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12시부터 기다리면 안 될까?"


엄마에게도 10분의 시간은 소중했다.

하지만 둘째는 단호했다.

"엄마가 먼저 와서 기다려야지. 내가 먼저 나오면 어떻게 해."


머리를 말리다가 지각한 날, 둘째가 혼자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주변에 아는 엄마가 둘째를 발견하고 내게 전화를 걸어 그 길로 달려갔었다.

집과 학교까지 거리는 5분이었다.

학교에서 보면 집이 보이고, 우리 둘째는 3살 때 학교 놀이터에서 집에 가겠다며 혼자 집으로 가버린 그런 당돌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엄마에게 데리러 오라는 것은 '집에 가는 길을 몰라서'가 아니다.


1학년의 특권인가? 1학년의 횡포인가?

너무도 당당하게 시간까지 정해서 데리러 오라는 명령(?)에 고개를 끄덕여준다.


'저번 주에는 내가 좀 늦었으니 오늘은 좀 여유롭게 미리 가서 기다려볼까? '


아마 내가 아이였어도 엄마에게 똑같은 요구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우리 엄마가 학교 앞에서 기다려줬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교시간인데 왜 아무도 없지?

아침에 잠시 비가 내린 뒤라 그런지 학교 앞에 사람이 없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엄마들은 참 부지런하다. 나처럼 느린 엄마도 별로 없고, 아는 것도 많고, 다들 뭔가 고수(?)의 스멜이 느껴진다.

나는 그 노하우를 슬그머니 배우며 성장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부지런한 엄마들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을 보니 12시가 넘어 1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보통 빨리 밥을 먹는 밥은 나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이상했다.

시간을 본 뒤 느낌이 왔다.

'아, 이럴 리가 없는데.... 뭔가가 있다.'


주변을 살펴보니, 손자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50대에서 60대의 어르신 한 분만 교문을 바라보고 계셨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알림장을 확인한다.


'다음 주부터는 5교시를 실시합니다. 점심 먹고 1시 30분에 귀가하겠습니다.'


'아뿔싸. 그다음 주가 바로 오늘이구나. 그럼 그렇지. 엄마들이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

머리를 쥐어박고 싶지만, 다행스럽게 아무도 나를 본 사람이 없다. 내가 잘못 알고 있던 시간에 혼자 나와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없었다.

웃음이 나왔다.

'모처럼 일찍 나왔는데... 그것도 잘못 알고 있다니, 아이고 내 정신이야.'


슬그머니 도망을 가려다가 팔짱을 끼고 교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어르신이 보인다.

'어쩌지? 말씀을 드려야 하나? 저분도 아마 나랑 같은 생각으로 오셨겠지?'


초면에 다짜고짜 가서 말을 건넸다.

"혹시 1학년 아이를 기다리시나요? 오늘부터 5교시라서 하원 시간이 1시 30분이라고 하네요. 알림장 확인해보고 다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내 말에 놀란 듯 어르신은 전화기부터 꺼내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오늘부터 5교시라는 데, 너 알림 좀 확인해봐."

전화통화 내용으로 보아 아이의 외할아버지 같았다. 아이의 엄마가 알림장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확인을 제대로 했어야지."

어르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괜히 전화를 받고 있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어르신께 인사를 하고 황급하게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너,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남의 일 같지 않은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백신 3차를 맞고 꼬박 앓았다고, 학기 초고 아이가 둘이라서 정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고, 아무도 듣지 않는데, 나 혼자 중얼거렸다.



새 학기다.

아이보다 더 정신이 없던 엄마는 그렇게 지나가는 불호령(?)에도 움찔거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또 그렇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늦은 거 아니잖아? 집에서 쉬다가 다시 나가면 되지.

혼자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우스워졌다.


우리 아이는 지금 1학년, 그러니까 나도 1학년

1학년인데 실수할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착각할 수도 있지.

아이에게 '괜찮다'라고 말했듯이 오늘 실수한 나에게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진짜 하교시간이 되자 우산부대가 교문을 꽉 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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