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매운 세상의 순한 맛은 아닐까?
옛날 옛날에...
출처도 지은이도 명확하지 않지만
꼼꼼히 생각하면 잔혹하고 끔찍하고 때로는 슬픈 이야기들이 많다.
가난에 시달리던 부모가 자식을 산속에 두고 오고, 그 어린 자식들은 집에 돌아갈 방법을 생각해 내며 가는 길마다 빵조각을 뿌리고 왔건만 참새가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마녀의 과자의 숲에 들어가 잡아먹힐 뻔했다는 이야기.. (헨젤과 그레텔)
말 안 듣는 청개구리가 엄마 말 안 듣고 반대로만 하며 돌아다니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고, 그걸 발견한 엄마가 청개구리 대신 다치고 엄마가 죽기 전 청개구리에게 개울가에 묻어달라고 반대로 유언을 남기는데, 매번 말을 안 듣던 청개구리가 이번엔 오히려 엄마의 말을 듣고 엄마의 시신을 냇가에 묻고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의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슬피 울었다는 이야기. (청개구리)
세상에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만 있으면 안 될까?
나는 항상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만을 꿈꿔왔던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엔 슬프거나 눈물 나는 사연이 있었다.
'그 뒤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나는 두려움에 참으며 이야기를 견뎌냈던 것 같다.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만 써야지.'
엄마가 가끔 들려주는 무시무시한 동화가 아니라
꿈과 희망이 가득한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막상 자라면서 살아보니 세상은 내가 생각한 만큼 참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아름답지 않은 냉혹한 세상을 아직은 순수한 내 아이들에게 그대로 알려주기도 싫었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알게 되는 세상의 짠맛, 쓴 맛을 어릴 때부터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낭만적인 꿈만 꾸며 아무것도 모른 채 상처투성이가 되며 세상을 깨닫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동화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동화는 세상의 매운맛을 이야기에 담아 살짝 순화시켜서 보여주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신맛, 짠맛, 매운맛, 쓴맛처럼
단맛의 달콤함보다는 맛이 좋진 않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괴로운 어느 날
아주아주 무서운 잔혹동화를 생각해냈다.
이걸 동화로 한 번 써볼까?
그럼 아이들이 말을 좀 들으려나?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엔 너무 무섭거나 슬프지 않을까?
세상엔 무서운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 이해할 수 없었던 잔혹하고 슬픈 동화가 이해가 되는 날
어쩔 수 없이 나도 결국 똑같은 어른이 되었다는 뜻은 아닐까.
어린 시절 엄마는 청개구리 이야기를 늘 들려주었다.
엄마는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같은 우리 삼 남매가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청개구리처럼 개울가에 묻을 거라고 하셨다. 살아서도 말을 안 들었으니 죽을 때도 말을 안들을 거라고
나는 슬픈 마음으로 '절대 개울가에 묻지 않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겠노라' 약속을 했었다.
그 말에 엄마는 뻥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엄마 죽고 말 잘 들을 생각 말고, 살아있을 때 말 잘 들어야 하는 거라고 알려주셨다.
동화는 그런 것이었다.
22.10.09
병원에 큰 수술을 잡아놓고 아이들을 돌보는 데 여느 때처럼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턱턱 막혔다. 엄마가 몸이 건강할 때는 충분히 해줄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엄마인 내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었다.
"엄마가 이제 건강이 안 좋아졌으니, 너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만 도와줬으면 좋겠어."
아이들에게 사정을 했지만 아이들은 똑같았다. 엄마의 몸 상태를 사실대로 얘기해주면 아이들이 너무 슬플 거 같고, 얘기를 안 하고 두리뭉실하고 둘러댔더니 말을 안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주 무시무시한 동화를 생각해 냈다.
'이걸 써 볼까?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줘 볼까?'
생각하다가 어릴 적 내가 생각이 났다.
어린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게 그런 슬프거나 무서운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적에는 왜 그런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를 어른들이 만들어 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인 내 속은 타들어가고, 아이들은 늘 천진난만했다.
엄마가 어릴 때 청개구리 이야기를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이유가 문득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계획대로 수술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예전에 쓰려고 생각해 두었던 무섭고 잔혹한 동화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안타까워해야 하나?
슬픈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는 싫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내 삶에도 이제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 대신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2022.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