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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일기] 송편과 만두

[명절 후기] 송편에 진심인 어머니와 만두에만 진심인 며느리

by 연두씨앗 김세정


시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신다.

며느리인 나는 요리를 싫어한다.

요리를 잘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요리 못하는 며느리인 나는 늘 주눅이 든다.


근 40년을 음식을 하시고, 음식 관련 일을 하셨던 어머니를 하룻강아지 며느리가 이길 턱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어머니의 전공은 '요리'인 셈이다.


요리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아들들과 손주들에게 이것저것 해주고 싶어 하시지만 365일 다이어트하겠다며 체중관리를 해야만 하는 며느리는 맛있는 요리도 사실 달갑지 않다.


어머니는 송편 만들기가 재미있다고 하셨다. 물론 맛도 모양도 좋은 편이라 모두가 맛있다고 칭찬했다.

그걸 아시는 어머니는 추석 때마다 자주 송편을 빚으셨다.


고백하건대, 며느리인 나는 송편 만들기를 싫어한다.

송편 만들기 싫은 이유는 일단 내가 송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송편 반죽을 동글동글하게 굴리면 손바닥에 배겨서 너무 아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편을 아무리 예쁘게 만들어도 인정도 못 받고 항상 비교당한다는 것이다.

손이 작고, 차가운 편인 내가 만든 송편은 옆구리가 잘 터지고 마른 논바닥처럼 반죽이 쩍쩍 갈라졌다.

(세게 덜 문질러서 그렇다고 하는데... 반죽하는 것부터가 손이 아프다.)


그런 나에 비해 어릴 때 할머니에게 송편 만드는 법을 배웠다는 남편은 손도 크고 따뜻해서인지 기계로 빚은 것처럼 예쁘게 송편을 빚는다.

남편이 송편을 빚으면 어머니가 감탄을 하신다. 처음 보신 것도 아닌데 매번 볼 때마다 감탄을 하신다.

"너는 어찌 송편도 이렇게 예쁘게 만드니? 꼭 기계로 찍어낸 거 같이 예쁘네."

남편과 시어머니는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송편을 빚는다.

그 사이에 손도 느리고 옆구리도 터지고, 반죽이 쩍쩍 갈라진 송편을 빚는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명절 때 유일하게 일하는 남자일꾼

그러나 처음부터 송편을 빚는 것이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송편 만들기는 매년 싫었지만 시집와서 첫해에는 처음 만드는 것치곤 예쁘게 빚는다며 내 송편을 보고

칭찬을 하셨었다. 하지만 딱 그때뿐이었다.

처음 첫해를 제외하고는 나는 늘 못난이 송편 대우를 받았다. 그러니 저절로 송편 만들기도 싫어졌다.

(시할머니에서 시어머니로 남편에게까지 이어진 송편은 피를 나눈 듯 꼭 닮아있었다.)

"여보, 우리 명절에 송편 안 만들고, 그 시간에 다른 집처럼 가족끼리 놀러도 다니고 하면 안 돼요? 나는 명절에 가서 전 부치고, 송편 만들고, 제사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너무 힘들어요. 우리도 다른 집처럼 음식이라도 덜 하면 추석 때 내려가는 게 덜 힘들 것 같은데요."


나의 볼멘소리에 남편은 맞장구 쳐주었고, 종종 의견을 같이한 도련님까지 나섰지만 명절 풍경은 늘 비슷했다.

더 늘지도 더 줄지도 않았다. 명절 하루 전에는 전을 부치고 방앗간에서 떡을 맞추고, 반죽을 해서 송편을 빚었다.


굳이 송편을 남들보다 더 예쁘고 더 잘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내가 만든 송편은 몇십 년 동안 송편을 만들어온 남편의 실력을 이길 수도 없었다.

다만 내가 열심히 만든 송편을 보며 못생겼네, 주름이 있네, 흉을 보며 놀리는 남편이 야속했다.


나는 매년 송편을 거의 먹지 않는다. 송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매번 송편을 만드는 일이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친언니와 친정엄마 모두 시어머니의 송편을 으뜸이라 여기며 좋아해서 매번 챙겨가긴 했던 거 같다)


아무도 내가 만든 송편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남편이 만든 송편과 어머니가 만든 송편...

가끔 어린 나이에도 제법 모양새를 갖춘 큰딸이 만든 송편만 인정받는다.


클레이를 좋아하는 딸은 송편 빚는 게 만들기인 줄 안다.

어찌 됐든 가루를 주물럭거려 예쁜 모양을 만들고, 또 먹을 수도 있다고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추석 명절에 다른 할 일도 많은데 굳이 송편을 만드는 것이 별로 달갑지가 않다.

남편이나 딸은 만들다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며느리인 나는 송편 만들기가 끝날 때까지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도 움직일 수가 없다.


어머니는 아들과 손녀와 송편 만들기를 좋아하신다.

이번엔 특별히 색깔별 송편을 만들겠다며 '보라색'과 '초록색' '노란색' 등 색깔이 들어가는 송편을 만드셨다.

마음이 불편한 건 송편을 좋아하지 않지만 일을 제일 많이 해야 하는 맏며느리인 내 차지였다.


언젠가 남편이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송편 만들 시간에 우리끼리 놀러도 가고 하자. 음식만 만들다가 명절 다 지나가잖아."

"뭐 잠깐 TV 보면서 만드는 건데.. 심심해서 만드는 건데,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누가 너한테 송편 만들라 했나?"


마음속으로 남편을 응원하던 나는 어머니의 말에 풀이 죽었다.

'시어머니에게는 재미있지만 며느리에겐 즐겁지 않은 송편 만들기'를 어머니는 계속할 생각이셨다.



<내 전공은 요리가 아닌데..>


작지만 알찬 딸의 송편..

쌍둥이처럼 닮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송편

만두처럼 생긴 내가 빚은 송편

나는 송편 빚는 게 싫다.

손이 아프다.


내 주전공은 요리가 아니다.

시어머니와 글쓰기 내기를 했다면 나도 이만큼의 주눅은 안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글쓰기 내기를 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굳이 인정받고 싶은 건 아닌데.. 너무 당연하게 내 송편은 못생긴 송편이 되는 게 싫다.


송편 몇 개를 만들다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엄마를 대신해 어린 두 딸이, 마누라를 대신해 송편 장인 남편이 송편을 빚는다.

다들 송편을 만드는데 며느리인 내가 빠져서 마음은 불편하지만 싫을 걸 하면서 계속 누굴 원망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닌 거 같았다.


송편 빚기 싫은 며느리와 송편을 재미로 빚는 시어머니와 신나서 만드는 딸내미와 묵묵히 송편을 빚는 남편과 송편이 싫은 추석 명절이 간다.

아들들과 손자 손녀와 송편 만들기 (며느리들은 쉬는 중)
딸이 만든 송편 / 딸이 만든 공룡 송편



<닮은 듯 다른 송편과 만두>

아이들과 만두 만들기


명절이 지나고 남편의 휴일을 맞아 만두 만들기를 했다.

아이들이 만들고, 엄마와 아빠가 재료를 준비했다.

만두피와 만두소가 있었고,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다양한 만두를 만들었다.


고기만두, 새우만두, 치즈 만두, 옥수수 피자만두

4가지 맛의 만두를 만들었다. 만두피가 있으니 손이 아프지도 않았다.

비록 송편은 못 만들지만 만두는 재미있었다. 집에서 만두 만들기를 하니 내가 제일 잘 만들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엄마 만두가 예쁘다며 칭찬일색이었다.


나는 만두를 좋아한다. 그래서 귀찮으면서도 만두를 만들어보자는 남편의 제안에 선뜻 응했던 것 같다.

만두를 만들면서도 어떤 것을 먼저 먹을지 생각해 본다.

만두에 주름도 잡아본다.


1차 기름에 튀긴 만두


아이들이 만든 만두를 신랑이 기름에 살짝 굽는다.

기름에 1차 구워진 만두를 나는 다시 에어프라이에서 구웠다.

만두가 바삭바삭하게 구워졌다.

고기만두도 새우만두도 치즈 만두도 옥수수 피자만두도 하나같이 다 맛있다.

하나씩 먹다 보니 배가 부르다.



만두나 송편이나 귀찮은 건 똑같은데

만두를 만들 땐 신나고 송편을 만들 때는 괴롭다.

만두는 내가 먹을 생각에 신나고, 송편은 내가 안 먹을 거라 괴롭다.

만두는 만두피를 이용하니 손이 안 아프고, 송편은 반죽으로 모양을 잡아야 하니 번거롭다.


시어머니에 송편은 나의 만두 같은 존재일까?

시어머니를 이해 못 하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도 싫으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시어머니의 말을 믿기로 했다.

'정말 송편을 재미로 만드시는 거라면, 만들기 싫은 사람은 안 만들어도 되는 건가?'

나는 이번 명절에 4개의 송편만 빚었다.


거실 한가운데서 모두가 함께 송편을 빚고 있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지만 송편을 빚는다고 시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어머니도 내가 송편을 빚지 않는 걸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2021.10.28일


추석이 벌써 돌아왔다.

올해는 건강상의 이유로 명절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추석을 맞아 1년 전 추석에 써놓은 며느리의 푸념 일기를 주섬주섬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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