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신 더러운 일 좀 해야겠어
"누가 내 젤리 먹었어?"
잔뜩 심술이 난 둘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젤리? 내가 먹었는데..."
아침부터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젤리의 주인은 둘째였던 모양이었다.
오며 가며 온 식구들이 하나씩 먹었을 테지만, 가장 화를 덜 낼 사람은 엄마인 나였다.
그래서 순순히 내가 범인이라고 자백 아닌 자백을 해버렸다.
내 대답에 잔뜩 화난 표정을 잠시 누그러뜨린 둘째가 곁으로 다가왔다.
"엄마~~! 내 젤리 왜 먹었어? 먹고 싶어서 그런 거야?"
"으응... 먹고 싶어서? 그래 먹고 싶어서 먹었어. 봐주세요~"
둘째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좋아. 엄마는 용서해줄게. 그 대신! 부탁이 있어."
"부탁? 뭔데?"
둘째는 아주 잠시 망설이더니 가까이 다가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음.... 좀 더러운 일을 나 대신해줘야겠어."
"뭐? 더러운 일이라고?"
"응... 아주 아주~ 더러운 일이야."
"더러운 일이 뭔데?"
둘째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마음을 먹은 듯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내... 오줌을 좀 받아줘야겠어."
"뭐? 니 오줌을 받아달라고??!"
아이의 말에 얼마 전 학교 통지표에 '건강검진'에 대한 알림이 떴던 게 기억났다.
'소변 검사한다는 거구나?'
아이의 부탁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았지만, 일부러 더 크게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어머~어떻게 쉬를 받아달라는 거야~ 못해! 나는 못해~"
"아니~ 내가 그러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선생님이 엄마들한테 받으라고 했단 말이야."
엄마의 호들갑스러운 대꾸에 아이의 표정이 울그락불그락 변해갔다.
더 놀렸다간 울어버릴 것 같아 장난은 거기서 그만하기로 하고는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엄마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아이가 어떤 식으로 설명할지가 무척 궁금해졌다.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오줌을 싸면 엄마가 그걸 받아서 학교에서 준 통에 담아주면 내가 학교 선생님에게 내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지?"
아이의 표정은 진지했고, 혹시라도 엄마가 제대로 못 알아 들어서 실수할까 봐 천천히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아이의 표정을 보니 또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어... 그래... 그런데 말이야. 쉬를 어떻게 받아! 더러워~"
"엄마~~~ 너무해!"
아이는 일부러 호들갑을 떠는 엄마에게 버럭 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장난이 심했던 걸까. 미안한 마음에 바로 둘째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아이는 이불속에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불속으로 들어가 둘째를 껴안고, 부비부비를 하니 금세 화가 풀렸다.
"고마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한테 자세하게 알려줘서..."
아이는 스스로도 대견하다는 뿌듯한 표정으로 아래 위로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의 경우, 아이도 처음, 엄마도 처음이었던 터라 항상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 이외에는 크게 관심 없는 첫째는 준비물이든, 학교 전달사항이든 곧잘 잊어버리곤 했다. 엄마가 챙기지 않으면 안 챙기는 첫째를 위해 항상 모든 준비물과 계획을 엄마인 내가 달달 외우고 있어야 했다.
물론 고학년이 되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첫째는 엄마인 나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그에 비해서 둘째는 나이는 어려도 스스로 자기 물건을 챙기고 어린이집 일정, 유치원 준비물도 척척 챙겨 다녔다.
아마 첫째였으면 검사가 있다는 것도 안 알려줬을지도 모른다.
소변검사가 뭔 지도 모르는 1학년 아이가 학교 선생님의 지시로 오줌을 받아오라는 미션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찌 됐든 엄마에게 설명하기 성공! 소변 받아서 학교로 가져가기 OK!
매해 봄, 가을에 있는 건강검진.
수업을 안 하고 놀 수 있다고 해서 기다렸던 기억도 있고, 반 친구들에게 몸무게가 공개되는 게 싫어서 걱정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코로나 이후로 뜸했던 학교가 다시 움직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코로나로 2년이 날아간 것 같아 아쉽지만, 아이들의 창창한 인생에서 보면 2년이란 시간은 어쩌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