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바빴다는 핑계....
"제가 좀 바빴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내가 평소에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는지 관심이 없다.
내가 엄청나게 바쁘게 사느라고 정신이 없었노라 한다면 아마 끄덕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바빴다. 정확히는 마음이 바빴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바빴다.
늘 바쁜데... 일상은 항상 비슷했고, 똑같았다.
내 시간을 갉아먹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늘 뭔가를 하는데, 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팔, 다리가 멀쩡한 데, 묶여있는 듯한 답답함이 있다.
그렇다고 어딜 나가거나 누굴 만나거나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지독한 무기력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하는 것은 넘쳐나고
해야 할 일들은 쌓여가는데 그럴수록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한 때는 즐거웠다.
하루하루가 즐거운 적이 있었고, 세상이 아름다운 날도 있었다.
그래도 좋은 거라고 복 받은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
도대체 왜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잉여인간'이 혹시 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쉬고 있는데, 쉬고 싶은 느낌이다.
계속 쉬고 있는데, 계속 돌아가는 느낌이다.
누군가 텅 빈 공장에 기계만 켜 놓고 퇴근한 기분이랄까?
혼자 쉬엄쉬엄 돌아갈 수도 있고, 자동으로 꺼질 수도 있을 법 한데...
무기력하게 돌아가고 있다.
날 off하지 않은 나의 관리인에게 항의하듯이
굉음을 내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헛돌고 있다.
이제 좀 열심히 살아볼까 했는데..
너무 게으름을 부린 탓일까
할 일은 쌓였고, 고민은 넘쳐나는데...
미쳐 돌리지 못한 빨랫감 위에 빨래가 얹힌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