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위로는 상처가 됐다.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됐다.
난 아프지 않은데...
몸에 병이 있다고 하니 환자가 되었다.
환자가 되었다고 하니
정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니까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아무런 위로도 받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재촉하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서둘러"
"힘들지? 괜찮니? 잘 될 거야"
어떤 위로는 따뜻했고, 어떤 위로는 짜증이 났다.
그 순간, 알았다.
내가 평소에 이 사람을 불편해했었는지, 편했던 것인 지...
누군가의 위로는 괜찮았고, 누군가의 위로는 거북했다.
애초에 멋진 위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아직 나는 사람들의 위로를 받아들일 마음이 준비가 안되었으니 말이다.
위로를 하는 사람들 중엔 위로가 서툰 사람들도 있었다.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컸지만 위로의 방법이나 말이 서툴렀다.
머리로는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는데, 문자 그대로 날아와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괜찮을 거야. 요즘 의술이 좋아져서 괜찮대"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다, 감사해라" "우울해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이겨낼 수 있다" "수술만 하면 다 괜찮아진다, 별거 아니다. 너무 겁먹지 마라."
모두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저마다 위로를 건넸다.
위로를 마친 사람들은 자신의 도리를 다 한 채,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고,
마음을 담은 위로를 받은 나는 너덜너덜, 갈기갈기, 시퍼렇게 마음에 멍이 들었다.
그들에게 받은 위로는 내가 듣고 싶은 위로가 아니었다.
자기가 궁금한 것을 묻고, 상태를 묻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돌아간 것은 위로가 아니다.
교통사고로 도로 위에 쓰러진 환자가 있다고 치자.
"아휴 아프겠네. 어쩌다 저랬을까.. 저 차가 잘못했네. 그래도 안 죽어서 다행이네. 피가 많이 나는데 아프겠다. 구급차는 불렀나? 그래도 헬맷은 써서 다행이네."
피 흘리며 고통 속에 있는 환자 앞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다고 치자
당신이 그 상황이면 '이 사람들이 지나치지 않고 나를 걱정해주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까?
그 상황의 나라면 아마 '당장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싶다'는 생각뿐일 것이다.
나의 아픔이 누군가의 가십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누구 씨, 소식 들었어? 요즘 아프대."
누군가의 입의 입을 통해 나의 건강상태가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서 평소에 연락조차 없는 사람이 안부전화라도 온다면?
조용히, 그냥 혼자 가만히 있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 마음은 그랬다.
하지만 어른들이 걱정할 수 있으니, 걱정하는 위로의 전화도 받아야 된다는 강요를 받았다.
아픈 사람은 난 데...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마음이 불편하든 말든 다른 사람의 걱정을 고맙게 받으라는 것도 폭력처럼 느껴졌다.
엄마에게는 화를 냈고, 남편에게는 눈물로 호소했다.
"아무의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아, 그냥 다들 모른 척하며 평소대로 살아가면 안 돼?"
"너는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해 봐. 모른 척할 거야? 가만히 있을 거야?"
우리나라 사회가 그런 거라 했다. 우리 문화가 그런 거란다.
고마워하며 받아야 한다는 데 이미 예민하고 날카로워졌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투명인간처럼 사라지거나,
잠수함을 타고 바다 끝 심해 속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고
사람들의 서툰 위로, 도리로써의 위로를 받아내야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서툰 위로, 어설픈 위로로 상처를 준 적이 있지 않았나?'
'그게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나? 그래서 그게 이렇게 돌아오는 건가?'
저 혼자 찢어진 마음의 상처를 꿰매며 생각했다.
아무리 말을, 생각을 조심한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았다 자신할 수 없었다.
어떤 날은 위로하고 싶어도 내가 그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그것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까 다가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어설픈 위로에 반가워해주고, 화답해 준 적도 있었다.
나는 내가 꽤 긍정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내가 꽤 배려가 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프고 난 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마음도 좁고, 이해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나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점점 변했다.
'아픈 건 난데, 왜 내가 다른 들의 마음까지 신경 써줘야 하나?
그건 아픈 사람의 투정이었고, 바닥 밑에 꼭꼭 숨겨뒀던 속마음이었다.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당분간이라도
아주 타이밍 좋게 그에 걸맞은 환자가 되었다.
1년... 아니면 더 길어질지도 모르지만
잠시만 아주 잠시만
할 수 있다면 가능한 내 생각만 하기로 했다.
202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