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통증을 마주했을 때...
<밤의 여왕>.
똑딱똑딱 어둠이 깊어지자
그녀의 구두굽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그녀가 온다
그녀의 돌멩이가 툭 날아와 골반뼈에 박혔다
우지끈 불편함에 몸을 비틀어본다
그녀가 미소 짓는다
툭툭, 도르르
그녀는 다소곳이 침대 옆에 앉아
잠들어있는 발등 위에 돌덩이를 올려두고는 사근사근 긁어댄다
미운 돌멩이 하나가 발등 위를 데굴데굴 날카롭게 굴러다닌다
괴로움에 오른쪽 발을 들어 그녀를 향해 날려본다
그녀는 살짝 몸을 틀어 피해버렸다
조용히 미소 짓던 그녀가 이번에 입김을 불어댄다
그녀의 뜨겁고 비릿한 입김을 따라
그녀의 돌멩이 군대가 행진하기 시작한다
달려라 달려, 달달달
돌멩이 군대가 몸속을 굴러다닌다
덜덜덜, 달려라 달려
겨우 잠들었던 연골들이 깨어나 울부짖는다
통증은 폭죽처럼 터지더니 살갗에 부딪쳐 튕겨나간다
새벽 3시 반
이제 저녁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침도 아닌 이 시간에
그녀는 오돌토돌 돌멩이들을 굴리며 미소 짓는다
그녀를 피해 방을 박차고 거실로 나간다
그녀가 다가오지 못하게 팔과 다리와 목을 베개 위에 빙글빙글 감아본다
그녀가 비집고 오지 못하게 온몸을 의자 위에 결박시키고 숨을 죽인다
창밖이 희미하게 밝아오지만 아직 아침은 아니다
턱을 괴며 웃고 있는 그녀의 빨간 입술
치렁치렁 길게 늘어트린 검정 머리카락을 꽉 잡아당겨본다
노끈처럼 단단한 그녀의 머리카락은 잡히지 않고 허공에서 미끄러진다
그녀는 떨어진 돌멩이를 다시 주워 나를 향해 여기저기로 툭툭 던져댄다
돌멩이 하나는 왼쪽 허벅지로 들어와 콕하고 박혔다
또 다른 돌멩이 하나는 오른쪽 종아리로, 그 보다 작은 돌멩이는 발가락 사이사이로 숨어들었다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빠져나갈 수가 없다
허공에 다리를 들어 발을 굴려보지만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차라리 일어나자 싶어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나머지 돌멩이를 몸 위에 흩뿌려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가버려."
그녀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그녀는 마지막 선물이라도 주듯이
등 뼈마디 사이사이에 작은 돌멩이를 콕콕 찔러 넣는다
똑 각 똑 각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그녀가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고 사라진다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6시 반, 이제는 잘 시간이다.
2022.11.19
- 1차 항암 5일째 밤
환우들 카페에서 읽은 글 중에 가장 무서웠던 글은 '너무 괴로워서 살고 싶지 않았다.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나 극심한 고통이길래 그런 생각까지 하는 걸까? 하는 의문과는 동시에 '그래도 살아야지.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하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아직 갈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더 오래 살기 위해 항암을 선택했는데 '죽을듯한 고통' 속에 오히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 끔찍할 일이었다.
첫 항암은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생각했다.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주사쫄보, 주사겁보는 주사만 안 아프게 놔주신다면 항암 몇 차라도 달게 받을 수 있을 거라 안이하게 생각했었다.
첫 항암을 마치고, 호중구(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맞았다. 부작용약을 먹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원래 건강했던 터라서? 생각보다 담담했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골반뼈 부근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지 이게 첫 신호인가?'
가만히 눈을 감고 몸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통증들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찌릿', '찌리릿', 통증은 골반뼈를 넘어 종아리로, 그리고 발끝에 가서 멈췄다. 통증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극심한 허리통증에 잠에서 깼다. 쇄골뼈에 박아놓은 캐모포트 때문에 불편해서였을까? 몸을 뒤쳤였다. 잠이 오지 않았다. 다리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고, 저리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앉아 얼얼해지는 다리를 주물러댔다. 주무르다가 손이 아파와서 이번에는 다리를 퉁퉁 가볍게 쳤다. 침대가 살짝 울렸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었다. 방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베개를 들고 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에서는 남편이 자고 있었다. 새벽 출근을 하는 남편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옆에 누웠다. 허리에 누가 깨진 유리파편을 찌르듯 '찌릿'한 통증이 찾아왔다. 침대에 누워 굼벵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계속 웅크리고 있으니 몸에 쥐가 날 것 같았다. 남편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베란다로 가서 각도가 조절되는 캠핑의자를 꺼내서 소파에 마주 보게 붙였다. 창밖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분명한 밤은 지났으나 아침이 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거실에 앉아 숨을 고르고 양팔에 베개와 쿠션을 두어 각도를 맞춰줬다. 허리가 편안해졌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리가 저려서 눈을 떴다. 채 20분도 자지 못했다. 다시 시계를 봤다. 남편의 기상까지는 1시간 반이 남았다. 버텨야 한다. 문득 창문을 바라봤다.
'이런 느낌이었을까?' 나는 창가로 뛰어갔다는 그녀를 떠올려봤다. 눕지도, 앉지도, 서 있기도 힘든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나도 그녀처럼 창가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고통이 계속되지 않으리라 믿었다. 허리가 아픈 날도 많았지만 최근에 허리는 많이 회복되었다. 이것은 분명한 약의 효과였다.
약인 지, 독인 지 모르는 화학물질이 내 몸 구석구석을 떠돌아다니며 내 세포들을 마구 공격하고 있었다. 평소 건강했기에 더 많은 세포들이 있는 것일까? 나는 몸속에서 '허락받지 않은 손님'들에 당황해하고 있을, 또는 그들과 피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내 세포들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디서 어떤 실수를 했던 걸까? 그냥 운이 나쁘다고 하기엔 너무 억울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눈물이 나왔다. 울다가 마음을 바로 잡았다. 이 순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눈물 나는 순간을 하느님이 내게 주신 것은 어쩌면 '뭐라도 좀 써봐. 고통의 순간이라도 기록해 봐.'라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내 멋대로 해봤다. 너무 힘든 고통스러운 순간을 눈을 감고 차근차근 집중한다. 통증이 시작된 순간, 그리고 통증이 지나가는 길목을 하나하나 글로 내려간다. 이런 우스운 내 모습을 보고 있을 누군가가 떠오른다. 한없이 나약하고 연약한 나라는 존재를 보고 비웃을 누군가...
그녀를 위해 허공에 발길질을 해본다. 존재하지 않는 그녀가 맞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새벽을 한참을 통증과 시름하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남편과 마주쳤다.
"아침부터 거기서 뭐 해?"
"나 한 숨도 못 잤어."
다음 진통제 투약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식탁 위에 놓아둔 '진통제'를 한 알 입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 남편이 나가고 덩그러니 홀로 있는 안방 침대로 다이빙하듯 뛰어든다. 그리고 양다리와 양팔을 벌린 채 허공을 향해 마구 발길질을 해본다. 쿠션을 안은 채로 몸을 좌우로 마구 굴러본다. 혼자 '으~~~~~~~'소리를 내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가 폈다를 반복해본다. 통증이 허리부터 엉덩이, 종아리, 발 끝으로 서서히 내려간다. 그리고 발끝에 걸린 통증을 발을 탈탈 떨어트린다. 몸이 편안해졌다. 이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