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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쉼표] 수상한 놈, 기분나쁜 놈, 결국나쁜놈

가슴에 빨간불이 켜졌다.

by 연두씨앗 김세정
수상한 놈! 기분 나쁜 놈은 결국 나쁜 놈이었다.


작년 8월, 느닷없이 암선고를 받았다.


암(; cancer), 악성 신생물(; malignant neoplasm) 또는 악성 종양(; malignant tumor)[4]은 세포가 사멸 주기를 무시하고 비정상적으로 증식하여 인체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병을 말한다.

살다 보면 나도 어쩌면 암이라는 무서운 질병에 걸릴 수는 있다고 생각은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50대, 40대도 아닌 30대 후반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20대도, 더 나아가 10대에도 힘든 투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나는 건강했으니까 적어도 50은 넘어서 아플 줄 알았다. 건강에 대한 자만심은 혹독한 결과를 내게 선물해 주었다.


결혼 후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아 왔었고, 그때마다 누구보다 건강한 편이었다. 가슴에 빨간불이 들어온 건 한 3~4년 전쯤이었다. 건강검진 결과 미세석회화가 보이고 유방의 양성종양도 있고 하니 자세한 유방검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친정어머니가 10년 전 유방암을 앓은 이력이 있었기에 그 두려움은 더 컸던 것 같았다.

지역맘카페를 뒤지고 뒤져서 여러 곳의 유방외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과잉진료가 없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원장님이 계신 곳이라는 평을 듣고 집에서 좀 떨어진 곳의 유방외과에 방문했다.


결혼 전, 임신 전 후, 건강검진 때 간혹 유방검사를 한 적이 있었지만 이때만큼 떨리진 않았던 것 같다. 미세석회화는 암 전 단계일 수도 있으니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렵게 예약을 하고, 검사를 받고 원장님을 만났다. 원장님은 듣던 대로 쿨하셨다. 가슴에 있는 수십 개의 종양들의 개수를 세고 모양을 보고 판별하셨다.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식은땀이 흐르고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원장님은 쿨하게 말씀하셨다.

드라마<질투의 화신> 중에서

"개수가 많다고 그게 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문제가 있는 것만 제거하면 되는데... 혹이라고 다 겁먹고 제거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선생님의 말에 조금은 안도했던 거 같다. 그러면서 미세석회화는 유방 조직에 칼슘 성분의 석회질이 침착되어 생기는 것으로 분비물이나 찌꺼기들이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농축되고 딱딱해지는 것이라, 모유수유 후에 간혹 찌꺼기들이 남아 미세석회화로 남는 경우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두 아이의 모유수유를 했던 나는 그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1~2년 정도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꾸준히 했던 거 같다. 그러다 어느 날 오른쪽 가슴에 이상한 뾰루지가 올라왔다. 가슴에 빨갛게 올라온 것이 아주 거슬렸는데... 쉽게 낫지도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다시 병원에 예약을 하고 원장님을 찾아갔다.

뾰루지는 점점 커져서 염증이 생겼는지 크고 딱딱해졌다.

"한 번 봅시다."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쿨하게 말씀하시고, 초음파를 보며 가슴의 혹들을 점검하셨다.

"이건 별 거 아니에요. 염증이고, 약 먹으면 금방 좋아질 거예요. 오른쪽에는 뭐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한 가지 혹을 클로즈업해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계셨다.

"왼쪽에 하나가 안 보이던 게 생겼는데... 이게 조금 수상하기는 하네요."

"네? 그럼... 암일까요?"

정신이 아득해졌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놀란 나를 진정시키듯 의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유관상 보기에는 조금 의심스럽긴 한데 모양이 썩 나쁘지는 않고, 크기도 아직은 0.6센티 정도로 작아요. 우리가 알고 있는 암이라는 게 한 달 만에 몇 달 만에 훅 크는 게 아니에요. 작은 덩어리가 1센티 정도로 크려면 몇 년씩 걸려요. 그리고 이게 행여 불행하게도 암이라고 해도 다음 점검 때 더 커지면 그때 가서 검사하고 수술해도 1기가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에요. 걱정되면 조직검사를 해봐도 되고, 아니면 다음 검진 때 크기나 모양이 변하는지 보고 그때 조직검사를 해도 되고요. 어떻게 할까요?"

조직검사를 받던 지, 다음에 받던 지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겁쟁이 쫄보였던 나는 그 수상한 양성종양에 대해 고민했다. 조직검사는 굵은 주사 바늘로 구멍을 뚫어서 조직을 채취하는 데, 생각보다 많이 아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무서웠다. 나의 고민이 길어지자, 선생님께서는 일단은 6개월 정도 더 지켜봐도 문제는 없으니 너무 겁나면 다음에 검사해도 된다고 하셨다. 6개월 후에 모양이 변하면 암일 확률이 높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여느 종양과 같은 양성종양이니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무거운 마음은 6개월 뒤로 미루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C2~C3 어디쯤이었던 거 같다.

수상한 놈, 기분 나쁜 놈은 결국 나쁜 놈이었거늘...

그땐 몰랐다. 혹시라도 내가 오해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가 아니라 '방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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