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호텔에 가야만 하는 이유
여행과 호캉스를 사랑하는 그 남자는 시시때때로 나를 졸라댄다.
날씨가 좋아서, 아니면 날씨가 좋지 않아서
날씨가 너무 더워서, 아니면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날씨는 기본이고, 누군가의 생일 기념, 오픈 기념, 초특가기념, 마지막 기념...
그 남자가 호텔에 가야 할 이유는 넘치고 넘쳤다.
작년 말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여행은커녕 호캉스도 못 갔던 그 남자였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아지자마자 몇몇 호캉스를 다녀왔다.
그런데, 이 남자는 도대체 적당히가 없다.
“그래서 이번엔 또 이유가 뭔데?”
호텔을 가자며 눈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남편을 흘겨봤다.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고 팔에 매달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여기 가서 꼭 봐야 할 사람이 있어”
“누구?”
“여기 호텔 직원인데....”
“호텔 직원????! 이제 하다 하다 별 이유가 다 있네.”
남편은 극노(극한분노?) 중인 아내를 달래려 애를 썼다.
아내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귀여운 애교자세(?)를 보이며 호텔에 가자고 졸라댔다.
올해 42살의 남자어린이의 애교폭격(?) 마음이 살짝 풀렸다.
“그 언니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뭔데?”
“한국에선 경험해보지 못한 친절한 서비스래....”
남편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카페에서 읽은 후기를 나에게 들려줬다.
“그냥 가고 싶다고 하면 안 돼? 뭔 이유가 이렇게 다양해~ 이 호텔은 이래서 가야 해! 저 호텔은 저래서 가야 해!”
남편의 눈동자를 보니 이번에도 가기로 마음먹은 거 같았다.
‘강원도도 아니고, 제주도도 아니고, 뭐 그까짓 거 인천인데... 가지 뭐...’
호텔에 도착한우리 가족은 입구에서 만난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객실로 향했다.
“아빠, 거기 아니에요. 이쪽 엘리베이터를 타야 해요”
아이들이 아빠를 불러 세웠다.
“너희가 어떻게 알아?”
“여기 전에 와 본 호텔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로비가 익숙하다. 체크인하는 모습도 익숙하다.
생각났다. 작년 여름 발리 여행 끝나고 무슨 빙수를 먹어야 된다며 호텔에 가야 한다고 졸랐었다.
“여보, 여기 여름에 망고빙수였나? 그거 먹으러 왔던데 아니야? 사람 많아서 그때 그냥 갔던..?”
“어...!!! 맞아!!! 안 사줬잖아”
42살 남자어른이 투정을 부렸다.
31층 객실로 올라가 남편과 아이들은 수영복을 갈아입었다.
나는 호텔 라운지로 이동해 유일한 취미활동인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저녁에 라운지에 가서
오매불망 그리던 친절한 김ㄱㅁ매니저를 만났다.
안 그래도 친절한 매니저는 '친절하다는 리뷰를 보고 왔다'는 남편의 말에 더욱 반가운 기색이었다.
“이 호텔에 정말 매니저님 보러 오겠다고 해서 제가 뭐라고 했다니까요.”
나도 한술 거들었다.
야경을 보며 와인을 마시는 이 남자, 쫌 행복해 보인다.
“여보, 나 결심했어.”
우수에 찬 눈빛으로 남편이 입을 열었다.
“다음엔 ***여행 갈 거야.”
“또 여행? 그다음은 호텔이고? ”
나는 괜스레 남편을 쏘아 보았다.
술 기운으로 볼이 발개진 채로 연신 웃음을 짓는 그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