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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Jun 08. 2023

[일기] 치과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도 치과처럼 친절하면 어떨까?

"바람 좀 불 겁니다."

"조금 따끔할 겁니다."

"놀라지 마세요. 물이에요."


치과 치료는 무섭다.

물론 충치가 없으면 무서울 일도 없지만 치아 관리가 소홀했더라면 무서울 수밖에 없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의 마취주사, 뿌리까지 뽑힐 것 같은 치아 발치, 진정한 피맛을 맛보는 스케일링치료까지 어느 하나 쉬운 치료가 없다.

웹드라마 <세계미진리> 중에서

 자주 정기검진을 가다 보면 무서울 일이 없는데, 아이들도 그렇지만 어른인 나도 치과가 무섭다.

무섭다고 미루다 보면 작은 충치가 큰 충치가 되어 치료해야 할 지경이 되기도 한다.

치과치료도 무섭고, 치아 하나당 계산되는 치과 치료비도 무섭다.


오랜만에 치과에 가서 미뤄둔 충치 치료를 했다.

"따끔할 거예요."

숙련된 치과선생님의 말과 함께 뾰족한 주삿바늘이 잇몸을 통과했다. 묵직한 통증과 함께 눈물 한 방울이 툭하고 떨어진다.

 마취주사를 맞을 때마다 나오는 눈물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제대로 치아관리를 못한 내 죄를 아니 조용히 치료를 받는다.

눈을 가리고 입만 벌리고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른다.


"따끔할 겁니다. 마취 들어갑니다."


치과의 좋은 점은 '미리' 알려준다는 점이다.

 물론 미리 알아서 더 무서운 경우도 있지만 겁이 많은 나는 미리 해주는 경고(?)를 좋아한다.

 의사의 지시대로 따끔한다는 소리에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따끔'하니 아프다.


치아에 마취가 되면서 통증이 무뎌진다.

"이제 바람이에요. 놀라지 마세요."


얼마나 친절한가? 곧 바람이 불 거란다.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바람이 치아에 쏴악 하고 불어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생에서도 이렇게 친절하게 누가 삶의 방향표를 알려주면 조금 덜 무서울까?


아니 미리 걱정하길 좋아하는 나에겐 어쩌면 그건 형벌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 맞을 마취주사를 걱정하며 주말 저녁을 다 망쳐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실제의 치료를 그래도 참을만한 고통(?)으로 만든다.


내가 생각했던 고통이 너무 극심했기에 실제의 치료는 그 고통보다 조금 덜 심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실제보다 무서운 상상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는 조금 덤덤하게 조금 덜 당황하며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좋은 방법은 아니므로 추천하지 않는다.)

 내가 남들보다 그나마 통증을 잘 참고, 잘 견디는 비법은 미리 해본 무서운 상상(?) 덕분이었다.


당신의 인생에 곧 바람이 불 겁니다.

당신의 인생이 조금 따끔할 겁니다.

깊게 파인 틈을 방금 다 때웠어요. 이제 괜찮을 겁니다.


가끔, 인생도 치과 선생님들처럼 친절했으면 좋겠다.

물론 삶이라는 게 치과치료처럼 순서가 있고

체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불가능에 가깝지만 말이다.

“앞으로 당신의 인생에 비가 내릴 겁니다. 그러나 금방 그칠 겁니다. 당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오른쪽으로 조금 잡아당길 겁니다. 따라오지 말고 그대로 유지하세요. 비가 그치고 나면 잠깐 바람이 불 거예요. 조금 쿵쿵거릴 수도 있어요. 잠시만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거의 다 됐어요. 이제 곧 다 좋아질 거예요.”



가끔, 인생도 치과 치료처럼 해결이 잘됐으면 좋겠다.

상처도 충치처럼 때워서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 주고

재생 불가능해 보이는 치아도 임플란트로 새 삶을 살게 해 주고 말이다.


치과치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늘 그렇듯 다짐한다.

조금 더 열심히 치아관리를 해야겠다.

미루지 말고 정기점검을 잘 받아야겠다.

더 부지런해지자. 더 열심히 살아보자. 다시 새로 시작해 보자.


충치를 다 끝냈으니 오늘부터 새롭게! 올바르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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