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다이애나에게...
빨간 머리 앤은 13살 소녀예요.
취미는 그림 그리기와 공상하기랍니다.
그녀는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그림 그리거나 멍하니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고 늘 메모지에 편지를 쓰곤 해요.
앤은 하굣길에 항상 우체국을 지나갑니다.
그 길이 지름길도 아닌데도 말이에요.
우체국 앞의 빨간 우체통을 바라보더니 이내 앤의 발걸음이 멈춥니다.
앤은 가방에 넣어뒀던 편지봉투를 꺼내 우체통에 넣으려다가 그 자리에서 편지를 찢어버립니다.
집으로 돌아온 앤은 침대 위에 생각에 잠깁니다.
잠시 후 침대에서 일어난 앤은 책상에 앉아서 다시 편지를 씁니다.
앤은 계속 계속 편지를 씁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 길버트와 다이애나에게 요.
하지만 앤은 편지를 이 편지들을 붙이지 않아요.
앤은 편지를 읽고, 편지를 물에 띄워 보내거나, 찢어서 버려요.
13살 앤은 도대체 무슨 편지를 쓰고 싶었던 걸까요?
to. 다이애나
안녕, 잘 지내니?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것 같아.
오늘 아침 문득 창문을 열어보니 벌써 찬바람이 부네. 이제 가을이 왔나 봐.
그곳을 떠나온 지도 이제 1년이 넘었어.
너와 길버트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잘 지내는지 무척 궁금해.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고, 새로운 취미로 악기도 배우기 시작했어.
너에게 멋진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어제도 열심히 연습했어.
하지만 아직 너에게 보여주긴 부끄러울 것 같아.
다이애나. 그곳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겠지?
여기서 생활도 물론 즐겁지만 나는 종종 너와 길버트와 함께한 그곳에 생활을 그리워.
느티나무 아래에서 우리 셋이 함께 네 잎 클로버도 찾고,
우리들을 놀리던 길버트를 잡기 위해 함께 뛰어다녔던 기억들 말이야.
사실 다이애나 나는 너에게 고백하고 싶은 게 있어.
네가 예전에 나에게 비밀 이야기라며 길버트에 대한 너의 마음을 고백했던 적 있지?
그때 난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거짓말이었어.
사실 나도 그때 길버트를 좋아하고 있었거든.
나에겐 길버트도 다이애나 너도 모두 소중한 친구였어.
그때 기억나니?
길버트가 하얀 너의 얼굴을 보며 '밀가루 반죽'이라고 놀렸을 때 말이야.
난 그때 너무 화가 났었어.
내가 아는 길버트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장난은 심하긴 했지만 친구의 콤플렉스를 약점 잡아 놀리는 비겁한 아이는 아니라고 말이야.
길버트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울고 있는 너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어.
나는 너 대신 길버트를 쫒아 가 외쳤었어.
"너, 다이애나에게 당장 사과해!"
"내가 왜? 못해."
"당장 사과하래도..."
"절대 못해. 내가 너한테 뭐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길버트는 씩씩거리며 얼굴이 빨개졌지. 화가 난 길버트의 얼굴은 매우 무서웠어.
나는 길버트가 너에게 얼른 사과하고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친한 친구들로 지내길 바랬어.
하지만 길버트는 고집을 꺾지 않았어. 물론 나도 질 수 없었지.
홧김에 나도 길버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버렸어.
"너같이 못된 아이와는 다시는 놀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게 길버트와 나의 마지막이 될지는 몰랐어.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엄마 아빠를 따라 낯선 도시로 이사 왔고,
나는 제대로 된 사과도 못한 채 길버트와 헤어지게 됐지.
너와 길버트는 그 뒤에 서로 화해를 했을까?
사실 종종 그곳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길버트의 소식이 살짝 궁금하긴 해.
길버트는 아직도 나에게 화가 많이 나 있겠지?
물론 나는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의 소중한 친구 다이애나,
너를 울린 길버트에게 화를 낼 거고, 너에게 상처를 준 길버트를 혼내줄 거야.
다이애나, 너의 솔직한 고백에도 나는 거짓말로 답한 거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 순간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라고 할 순 없었어.
늦게나마 너에게 고백하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어.
그런데 다이애나. 벌써 1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어린 '앤' 그대로인가 봐.
아마 이번에도 난 이 편지를 부치진 못할 것 같아.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너와 길버트가 있는 그곳으로 놀러 갈게.
한 해가 더 지나고 내가 조금 더 자라면
나의 지금 이런 고백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다이애나, 보고 싶어.
언제나 내 편이었던 고마운 내 친구에게
13살 빨간 머리 앤은 늘 편지를 씁니다.
1년 전 떠나온 고향에 있는 친구 다이애나에게 말입니다.
1년 전 그 날, 빨간 머리 앤과 다이애나, 길버트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3살 소녀 빨간 머리 앤의 보내지 못한 수줍은 고백 편지를 살짝 들여다볼까요?
To. 길버트에게
안녕, 길버트. 나 앤이야. 잘지내지...?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지금 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모르겠어.
길버트, 우선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할게. 미안해.
사실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