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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버지의 책

아버지로 사는 일...

by 연두씨앗 김세정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더니

"아빠, 다음 생에는 자식도 낳지 마세요."

라는 문구가 있어서 급하게 들어가 봤다.


'다음 생에는 결혼도 하지 말고, 자식도 낳지 말고 아빠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아봐.'

평생 가장으로써 힘들게 일하신 아버지에 미안함과 고마움에 대한 글이었다.

"아빠 그럴 거면 자식은 왜 낳았어?"라는 투정을 했던 나로서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담긴 그 글을 보고 뭉클함과 함께 부끄러움이 생겼다.

평생 똑같이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가장의 일을 했음에도

가족들의 평가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하는....


그러다가 문득 얼마 전에 책 출간을 했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빠는 하고 싶은 걸 그래도 많이 하면서 사셨다.

우리 가족보다는 친구들, 동창모임, 학교 동문회, 지역 무슨 무슨 협회 등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사셨다.

아빠의 자리는 늘 엄마가 대신했고, 그래서 우리 삼 남매는 말은 하지 않지만 어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내가 커오면서 생각한 건데 아빠에 대한 미움은 엄마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엄마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바로 '아빠'였으니까..

조금만 더 잘해주고 조금만 더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도 보통이 아니고, 아빠는 눈치도 없고, 나는 어릴 때 늘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불안해했었다.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그리고 빨리 엄마의 화가 풀리기를 말이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화가 난 목소리로 누군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어느 정도껏 해야지. 누가 취미로 하는 거 뭐라고 하냐고! 얘들은 셋이나 되고 생활비는 쥐꼬리만큼 갖다 주고 살림은 뭘로 하라고!!"

엄마는 이모에게 아빠의 흉을 보고 계셨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주방에서 통화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몇 십만 원이면 말은 안 해.. 몇 백만 원을 그렇게 자기 맘대로 쓰고 다닌다니까! 집에다 쓰는 돈은 십원이 아까워서 덜덜덜 하면서 말이야."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아빠가 이번에는 어떤 사고를 치신 걸까?

어릴 때는 아빠가 참 커 보였는데... 내가 자랄수록 아빠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고 대단한 사람은 아닌 듯 보였다.

통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을 씩씩거리는 엄마에게 달려가 물었다.

"아빠가 뭐 사고 쳤어?"

"아니 뭔 시를 쓰겠다고 대학원에 가겠단다."

" 무슨 대학원? 대학원 공부하겠다고??"

"돈 주고 가는 대학원 있잖아."


아빠가 번 돈으로 아빠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데...

막는다는 것이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아빠가 쓰고자 하는 돈은 우리 다섯 식구의 몇 달치 생활비였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전화국에 다니셨다.

그 당시 여자 직장으로 꽤 좋은 편이었고 월급도 꽤 좋은 편이었다.

아빠는 엄마가 벌어서였는지... 엄마에게 생활비를 잘 챙겨주지 않으셨다.

경조사비, 기름값, 모임 회비 등등 각종 비용을 빼고 주면 다섯 식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엄마의 월급은 우리 가족의 식비와 은행 이자, 대출 등을 갚으며 살았다.


엄마는 어린 시절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들었다. 할아버지 댁이 큰 집이었고, 큰 아들인 외할아버지는 경찰서에서 근무하셨다고 했다. 잘생기고 운동신경도 좋고 성격도 호탕한 외할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며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어릴 때 바닥에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어. 할아버지 무릎에서만 밥을 먹었어. 다른 애들은 고무신 신고 다닐 때 나는 할아버지가 시장에서 구두 사 와서 신고 그랬어."

"옛날 시골에서는 TV가 몇 집 없어서 우리 집에 다 보러 오고 그랬어."

엄마의 무용담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칫. 그러면 뭐해. 지금은 안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않은데 그때 그러면 뭘 해..'


엄마의 친정은 엄마가 시집간 이후부터 급작스럽게 어려워졌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잠깐 동안 제주도에서 살다 오셨고, 그 뒤로는 서울로 가시는 바람에 외할아버지를 자주 뵐 수 없었다. 어쨌든 엄마에게는 그런 '멋진 아빠'가 있는데 엄마는 나에게 그런 '멋진 아빠'를 주지 못하셨다.

아빠는 우리 가족보다는 본가의 가족(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먼저 챙겼고, 우리 삼 남매의 보육과 양육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가 언젠가 한탄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뭘 하고는 싶은데 능력은 안되고, 배운 것도 없고... 그래도 하고는 싶으니까 자잘한 것들 한다고 저렇게 돌아다니는 거 아냐. 차라리 능력이 있음 큰 자리 하나 맡으면 되는데..."

그냥 하소연 같은 거였다.


시골의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아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했고, 엄마를 만나 결혼을 했다. 아빠 밑으로 나이 어린 고모들과 고모들보다 더 어린 삼촌들이 있었다.

엄마가 시집갔을 때 고모들은 초등학교만 졸업시켜서 일터로 나가야 할 판이었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설득해 둘째 고모의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왔고, 삼촌들이 학교에 다닐 때도 우리 집에 데리고 있었다. 맏며느리로써 꽤 큰 역할은 했던 것 같다.


엄마는 명절 전에 시골 할아버지 댁에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가서 음식 준비를 하고 아빠는 늦게 저녁에 오셔서 술을 드시거나 차려놓은 음식을 드셨고, 명절 때도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시고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짐을 챙겨서 아빠를 기다렸다. 그럼 점심 이후에 고주망태가 돼서 돌아온 아빠는 술을 깨야 한다며 낮잠을 주무셨다.

우린 풀어놓은 짐을 다시 풀고 아빠가 깰 때까지 할아버지 댁에서 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린 시절 나의 기억은 그랬다. 아빠는 자식들에겐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셨다. 한 때는 모든 아빠들이 다 그런 줄 알았다. 아빠는 원래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혼내는 역할만 하는 줄 말이다.


사춘기에 막 접어들 무렵 그런 아빠에게 우리 삼 남매는 반발심을 가졌다. 꼭 커서 이 집에서 독립하면 보란 듯이 잘살아준다고! 그리고 아빠는 하나도 안 도와주고 엄마만 챙겨주겠다고 말이다.

그때 엄마가 해준 말은

"나는 미워해도 너희는 아빠 미워하지 마라. 그래도 아빠가 회사 가서 돈 벌어온 걸로 너희들 밥도 먹고 학교도 가는 거니까."

아빠의 가장 큰 역할은 돈을 벌어오는 것이었다. 아빠가 우리가족에게 해준 것은 딱 그거 하나였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했다. 어쨌든 아빠가 벌어온 월급으로 우리 다섯 식구가 먹고 사니깐...


IMF가 터지고 엄마는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그렇게 회사 다니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던 엄마였다. 한 동안은 행복했었다. 제법 좋은 임대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었고, 엄마의 퇴직금으로 빚도 많이 정리했었다. 엄마는 이제야 살만하다고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꽃시장에 가서 어른 키만 한 커다란 나무도 사 오고 철쭉나무도 사 와서 베란다를 정원처럼 꾸몄다.

나는 엄마가 너무 헛돈을 많이 쓴다며 뭐라고 했지만 엄마는 평생 동안 일만 했으니 자기 보상이기에 그 정도는 써도 된다고 했다. 엄마가 큰 맘먹고 샀던 어른 키만 한 고무나무는 몇 십만 원짜리였다. 엄마는 그 고무나무 잎을 닦아주고, 식물들을 정성스럽게 키웠다. (어느 겨울날 환기하려다가 살짝 열어둔 창문 때문에 전부 죽어버리기 전까지 말이다.)


언니는 대학교 1학년이 되었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동생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엄마는 퇴직하고 집에 계셨고, 잠깐씩 장사를 하다가 몇 개월 만에 접었다. 장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손해를 보거나 하지는 않아서 경험으로 만족할 뿐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불현듯 시를 쓰겠다고 하셨고 국립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등록을 하셨다.

그리고 시를 쓰고, 수필을 쓰셨다. 엄마도 시를 가끔 쓰긴 하셨지만 그냥 습작으로만 끝났다.

어찌 됐든 아빠는 시화전도 하고, 가끔 지역문인협회를 통해 꾸준히 수필을 쓰셨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아빠의 첫 책이 나왔다.

일반 월간지나 모음집이 아닌 자기 이름을 건 자신의 첫 작품집이었다.

'이 책을 만들려고 돈을 또 얼마나 썼을까? 이것도 돈만 내면 만들어주는 그런 책 아닐까?'

나는 아빠의 작품을 의심부터 했다.

어쨌든 아빠는 꾸준히 작품을 썼고 그걸 묶어서 자신의 책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과연 그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수필 속 아빠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책을 읽어보기 전에 우리에게 '과제'가 생겼다.

바로 '오탈자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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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는 출판사에서 하는 거 아냐? 무료로 해주는 것도 아닌데 그걸 왜 우리가 해?"

나는 어이가 없었다.

엄마는 아빠 대신 궁색한 변명을 이어갔다.

'출판사에서 해준다고는 했는데 아빠가 급해서 그런다며...'


아빠는 700부나 되는 엄청난 책의 오탈자를 스스로 고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연말을 맞아 오랜만에 들른 친정에서 나와 신랑, 언니와 엄마는 아빠의 책 수정을 해야만 했다.

성인 5명이 붙어서 하자 책 오탈자 수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났다. 아빠는 그때서야 허허 호호 웃으셨다.

'저렇게 좋으실까...?'

나도 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그냥 마냥 좋았던 것이 생각났다.

아빠도 아마 그때의 내 기분일 것이다.

아빠의 첫 수필집이 나왔다.


아빠의 사랑 할머니의 이야기가 들어있을 것이고,

아빠의 돌아다닌 여행지에서의 이야기가 들어있을 것이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아빠의 수필집..

그곳에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하다.


기왕이면 평생 아빠와 함께 살며 고생했을 엄마의 대한 미안함과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있으면 좋을 텐데...

아빠가 과연 그 이야기를 쓰셨을지...

아마 그 이야기를 썼다한들 엄마가 거짓이라며 또 부정하시겠지만...

이제라도 엄마랑 사이좋게 그냥 편안하게 행복하게 노후생활을 하셨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그냥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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