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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그림자 May 20. 2024

ᴇᴘ. 86 창가의 소녀

[존재와 부재]



눈에 보이는 겉들 속에서 나는 공허한 맘으로 이 세계를 맴돌았다 끊임없이 그 둘레를 돌아다녔다 텅 빈 세계에선 내 영혼이 부식되어 시체가 모래로 변해 사라진 것처럼 증발한 채 없었다 껍데기는 남았지만 껍데기가 없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모든 것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재한다


모든 가식과 이중과 역설의 목소리에 속이 울렁거렸다 돌아가는 길은 암흑에 가려졌고 얼룩졌으며 동시에 내 마음도 그을렸고 악취로 가득 찼다 가로등이 있었지만 그 빛은 미약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는 반짝였고 소음에 뒤덮여 있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공간들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지 내 혼의 빛을 이 어둠으로부터 지켜내야지 하고 다짐했으나 여전히 세계의 유혹은 강렬했으며 또한 반짝였으며 동시에 그늘져 있었다 마치 빛을 빨아들이고 있는 블랙홀처럼 밖은 반짝였으나 안은 어두웠고 또한 모든 시간과 공간은 형체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좇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둘의 깊이가 막연히 어쩌면 확연히 다르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혼을 세계에 바친 채 세상의 노예가 되어 보이지 않는 죄수복과 쇠고랑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과 혼을 빨아들이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누리는 자유가 분명 다른 의미로 달랐다


무엇이 진정한 자유인가 나는 멀리서 빛나는 가로등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생각해 보았다 그 빛이 희미해질 때까지 또한 선명해질 때까지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또다시 고개를 숙인 채 어두운 바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서로는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고 저 세계와 이 세계의 갈림길에서 흔들리는 나는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았기에 정체성을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어쩌면 나를 더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 공허한 감정과 자욱한 상실감과 어둠과 악취와 소음과 멀리서 흔들리는 작은 불빛과 기다랗게 이어진 길 위에서 앞으로의 내 발길이 어느 곳을 향하게 될지를 상상해 보다가 결국 다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란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발길을 옮기 게 되어있으니까 그 발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뜻이 간절히 있기를 나는 바랐다


세계를 둘러싼 수많은 반짝임과 화려함과 겉치레와 돈과 허영과 욕망과 오만과 탐욕이 주는 자유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였으나 보이지 않는 꿈과 진심과 너를 향한 걱정과 사랑과 다정함과 살아온 발자취와 추억과 그 안의 성장과 아픔과 아픔이 주는 의미와 경험의 가치와 그래서 깊어진 내면과 단단히 뿌리내린 마음이 주는 자유는 바깥의 것들이 어떠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로서 존재하며 꿋꿋이 행복할 수 있는 자유였기에 수많은 유혹과 갈등 사이에서도 나는 내가 반듯한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더욱이 진정 자유로울 수 있기를 간곡히 기도했다


결국 나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마음의 진심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며 받아들여가며 그렇게 조금씩 그러다 찬란히 자유로운 내면의 뿌리를 단단히 내린 내 존재가 꿋꿋하여 흔들림 없는 튼튼한 나무로 자라나기를 그러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천진난만한 미소를 간직할 수 있는 순수함으로 남길 소망하며 천천히 자유에 가까이 닿아가길 말이다,


_ Edvard Munch The Girl by the Window Date:1893 사진 출처는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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