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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Dec 15. 2023

Firenze dei gioielli 3.

2023 이탈리아 여행기 13 - 03292023

명작의 향연, 그리고 ZTL의 공포

#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며 

양과 맛 모두 만족스러웠던 점심식사를 마친 후 미리 예약을 해놓았던 우피치 박물관 투어를 기다리며 피렌체 시내 곳곳을 여유롭게 걸어 다녔다. 여느 유럽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피렌체에도 곳곳에 광장이 있다.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lca),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 등이 널리 알려져 있는 광장들이다. 

이러한 광장들을 지나다 보면 버스킹 연주를 하고 있는 음악가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이 날 레푸블리카 광장에서 만난 할아버지 연주팀의 연주가 상당히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어쩌면 이탈리아 여행 중 만난 버스커들 중 가장 좋았던 팀이 아니었을까 싶은) 본인들이 펼쳐놓은 현수막에 적힌 팀명은 'The Old Florence Jazz Band'였고 평균 연령은 충분히 70대를 넘어 보이는 듯한 외모의 노년의 음악가들이었다. 그리고, 소위 딕시랜드(Dixieland)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1920~30년대 경에 유행한 초기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연주력도 수준급이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연주를 즐기는 듯한 여유로운 모습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레푸블리카 광장에서 만난 멋진 노신사 음악가들. 나도 나중에 이런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메디치 가문의 유산,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를 여행해 봤거나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메디치(Medici)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메디치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가문의 명칭이다. 이 가문에서 네 명의 교황을 배출했을 만큼 그 권세가 대단했었는데 특히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르네상스 예술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한 때 피렌체를 넘어 전 유럽에 권세를 떨쳤던 메디치 가문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대신 피렌체에는 그들의 업적과 유산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 유명한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이다. 

이탈리아 전역에 수많은 중요한 미술관들이 존재하지만 우피치는 특히 르네상스 시기의 주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가 작품들의 시외 반출 금지를 조건으로 피렌체시에 기부하여 만들어진 미술관이라고 한다. 이 미술관의 명칭인 우피치(Uffizi)는 영어로 Office에 해당하는 단어로 바로 메디치 가문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공간이었고, 이러한 명칭만 봐도 메디치 가문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알 수가 있다. 

사전에 예약한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약속장소인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피치의 명작들을 설명해 줄 가이드님, 그리고 한 팀의 가족을 만나 함께 우피치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렌체의 명소 중 한 곳인 베키오 궁전이 자리 잡고 있는 시뇨리아 광장의 전경.

 # 역사의 증언자, 미술관과 박물관

한국으로 돌아온 후 만난 미술을 전공한 지인에게 이탈리아에서 방문한 미술관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니, 대단하긴 한데 다 오래된 과거의 유산들이라 본인들은 정작 별 흥미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전공자들은 그럴 수 있다. 그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창작자로 과거의 유산보다 지금 여기에서의 트렌드가 더 중요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 같은 비 전문가이자 애송이 애호가 같은 이에겐 유럽의 수많은 박물관, 미술관과 소장품들에 대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작품들의 명성과 함께 더욱 놀라운 것은 소장품, 전시품의 엄청난 양이다. 굳이 이름난 곳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상당한 양의 작품을 보유, 전시하고 있고 이를 통해 그 국가, 지역의 파워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즉, 예술의 부흥과 유산의 보전 또한 과거 국가 내지 왕조의 흥성을 드러내는 반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한국의 박물관,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서구에 비해 상대적인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박물관, 미술관이 서구 국가들에 비해 빈약한 전시와 소장품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역사와 이어져 있다. 과거 우리에겐 숱한 침략과 전쟁, 점령을 겪으며 유산을 남길 수 있을만한 힘이 없었고, 근현대로 넘어와서도 기록과 보전의 중요성에 대해 낮은 인식 수준을 갖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언제나 문화적 가치를 가진 유산은 만들어진다. 지금이라도 기록을 남기고 문화적 유산을 남기는 데 힘을 쏟을 수 있는 한국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명작의 향연

우피치 미술관의 명성이야 워낙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더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을 터. 작품과 공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하나하나 감상을 하다 보니 투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조토(Giotto), 보티첼리(Botticelli), 티치아노(Tiziano), 카라바조(Caravaggio), 레오나르도 다 빈치(Da Vinci) 등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명작들을 연속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문화적 발전과 연관된 르네상스로의 변화는 인간에게 문화와 예술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일깨우게 되었다. 신을 숭배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예술이 인간의 서사를 다루게 되고, 이는 왕정이 아닌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 이런 역사적 흐름과 배경을 이해한다면 우린 예술이 세상과 유리되고 단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투어의 설명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메디치가문의 전용 비밀통로 역할을 했다고 하는 바사리 회랑이었다. 이 회랑은 우피치에서 시작해서 피티 궁전을 연결하는 1km가량의 고가 통로로 베키오 궁전에서 시작해서 우피치와 베키오 다리를 거쳐 피티 궁전까지 연결되는 통로라 하며, 가히 메디치가의 권세가 어떠했는지를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공간이었다. 엄청난 특권과 지역과 예술에 대한 기여가 상존했던 메디치가의 스토리는  인류 역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와 양면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메디치 가문의 주요 소장품을 한데 모아놓은 Tribune, 가장 유명한 보티첼리의 '봄', 조토의 마에스타.
보티첼리의 '봄'앞에 몰려 있던 관람객들과 또 하나의 유명한 작품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
베키오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바사리 회랑의 전경 

Zona Traffico Limitato

우피치 투어를 마친 늦은 오후, 예약해 놓은 렌터카를 찾으러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의 첫 로드 트립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가 받은 차는 소형 승용차로 르노에서 생산한 모델이었고, 두 명이서 여행 다니기에 충분한 크기와 성능의 차량으로 생각되었다. 내비게이션 연결도 어렵지 않았고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찾기 어려운 자동변속기 차량을 구해 운전 또한 어려움이 전혀 없었으나,,,, 문제는 바로 ZTL이었다. 한국어로 통행 제한 구역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탈리아 곳곳에 ZTL이 정해져 있다. 특히, 유적이 많은 유명 관광 도시일수록 ZTL이 많고 구역에 잘못 진입했을 경우 벌금 또한 매우 고액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Hong이 예전 이탈리아 여행 때 ZTL 위반으로 인한 벌금을 부과받은 적이 있어서 강한 경각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차를 몰고 출발하자마자 일방통행 도로에서 역주행을 시전 하고,,,, 한국 라면을 파는 슈퍼마켓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서 내비게이션에 그 상점을 찍고 출발하였는데,,, 어느 순간 낮에 우리가 거닐었던 오래된 유명 건축물이 즐비한 광장이 나오는 게 아닌가. 엇, 여긴 분명 ZTL인데? 앗, 어찌 된 일이지? 순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만 목표로 삼고 차를 몰아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처음 내비게이션으로 구글맵을 썼었는데 구글맵에서 알아서 ZTL을 피해 길 안내를 해준다고 알고 있었으나 안내 옵션을 추가해야 하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 게 원인이었다. 이미 해가 넘어간 어두운 밤길에 다음 행선지인 토스카나의 시에나로 향하면서 이탈리아에서의 안전운행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부랴부랴 찾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소름 돋던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녁으로 먹었던 빅맥과 숙소에 도착해서 숨을 돌리며 욱여넣은 맥주, 소주, 파니니, 그리고 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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