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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May 17. 2024

Pomposo Roma 1.

2023 이탈리아 여행기 19-04032023

오만한 건 로마가 아니라 나였을 뿐

# 끝판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끝판왕이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마지막 판에 이르러 볼 수 있는 왕'이라고 풀이가 되어 있고, 최고 중에 최고를 뜻하는 말이 되겠다. 이탈리아 여정 중 내가 자주 했던 말이 "또 이렇게 멋있는 게 있어?", "또 끝내주네?", "또 있는 거야?"같은 말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압도적이고 충격적으로 아름답고 멋진 광경을 끊임없이 만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경험한 시각적 압도감은 후반부로 갈수록 피곤함이 더해질 정도로 느껴졌는데, 그 피로감의 시작은 로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로마에 대한 Hong의 끝없는 칭송을 들었었던지라 사실 약간의 반감이 있기도 했다. 철없는 중학생의 반항심 같은? 모두 다 좋다고 하는 것에 대해 심리적인 삐딱선을 타고 싶었던 것도 있다. 하지만, 직접 만난 로마는 명불허전 그 자체이자 끝판왕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압도감을 안겨다 주었다. 문명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을 남겨놓은 도시, 그리고 그 도시를 일구어낸 로마인들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들게 만들어준 도시가 로마였다. 공간이든 사람이든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 끝판왕의 시작,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로마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 숙소의 주인장이 커피타임을 제안하여 함께 주변의 카페로 향했다. 어느새 익숙해진 아침메뉴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을 함께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이 분이 이탈리아의 여정 중 거의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이었고, 로마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과 코로나 시절의 힘겨웠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아침 시간을 보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이 분 또한 로마 곳곳에 세워져 있는 성당들을 들러보라 권해왔고, 특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lica di Santa Maria Maggiore)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리고, 다른 도시와 달리 로마에 있는 성당들은 모두 무료입장이 가능한 것도 여행객들에겐 큰 메리트. 그렇게 우린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방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성당 중 가장 오래되었고, 또한 로마에 있는 성모 마리아 헌정 성당 중 가장 규모가 크기에 마조레(Maggiore, 영어로 하면 Major)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 성당은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 전인 5세기에 지어졌다는 게 정설인데, 놀랍게도 처음 건축되었을 당시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로마에서 기독교 박해를 멈추고 국교로 지정한 시기가 기원 후 4세기 경인 것을 감안하면 본 성당은 고대 로마 시대의 신전과 성당의 두 가지 양식에 걸쳐져 있는 건축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고딕 양식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양식으로 지어진 다른 유명 성당들과 달리 신전을 연상케 하는 정방형의 구조를 갖고 있다. 


본 성당 내부엔 중앙의 신도석과 그 양옆으로 대리석 기둥이 서 있는 회랑이 있고, 전면에는 엄청나게 화려한 제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제대는 기본적으로 교황만 사용할 수 있는데, 매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가 이 성당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특이했던 건 제대 아래의 고해성사석이었는데 무릎을 꿇고 기도와 고해를 할 수 있는 좌대 앞 전면에 화려한 구유상이 전시되어 있다. 고해성사석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성사석 내부와 제대석 지붕 내부 윗부분의 황금으로 도배되어 있는 엄청난 장식을 볼 수 있다. 이 성당 전체를 감싸고 있는 황금 장식은 중세 시대 스페인왕국이 잉카제국에서 약탈해 온 황금을 사용했다고 하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대 종교와 문명이 가진 권력과 기술력과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만들어낸 인류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식민지 수탈의 산물이기도 한 아이러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 세계의 많은 유적과 명소들에서 우린 이러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과연, 사회와 역사는 그저 강자만의 것일까.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또 한 번 문화와 문명에 대한 복잡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화려한 외벽. 다른 성당들과 마찬가지 성인들과 천사들을 상징하는 조각들이 배치되어 있다.
다른 고딕양식의 성당과 달리 정방형 모자이크 형태의 금박 장식으로 채워진 평평한 형태의 천장. 좌우 벽면의 창들이 예전 신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흔적이라고 한다.  
성당의 신도석과 전면 제대 모습.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화려한 제대. 모든 성당에 있어 가장 중심이 되고 힘을 주어 조성하는 공간은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제대일 수 밖에 없다.
화려함의 극치. 제대 아래 고해성사석에서 올려다본 상부 장식들.

# 여기가 거긴 가요, 스페인 광장, 핀초언덕, 포폴로 광장까지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나와 우린 그 유명한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로마에 오면 누구나 들러보는 곳 중에 하나인 스페인 광장은 고전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 스페인 계단에서의 장면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다들 영화의 주인공인 오드리 헵번처럼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관광명소다. 이곳이 스페인 광장으로 이름 붙여진 건 근처에 스페인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데 사실 누구도 이곳의 명칭에 왜 스페인이 붙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포인트. 


스페인 계단을 올라 이어진 길을 죽 걸어가다 보면 메디치 빌라를 지나 또 하나의 명소 핀초언덕을 만날 수 있다. 핀초언덕은 로마 곳곳에 존재하는 여러 언덕들 중 하나로 로마 시내와 포폴로 광장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는 공원도 하나의 즐길거리로 오래된 나무들과 한가로이 놓여 있는 벤치들이 전형적인 유럽의 오래된 공원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핀초언덕을 내려가면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오벨리스크가 시선을 사로잡는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을 만날 수 있다. 포폴로 광장은 테르미니역이 생기기 전까지 로마의 관문 역할을 하는 광장이었다고 하며, Popolo라는 단어가 People로 해석될 수 있기에 우리말로 하면 '민중의 광장'으로 해석되는 곳이다. 근데 광장 중앙에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는 BC 1300년 무렵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것을 로마시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로 가져왔다고 하니, 민중의 광장 한가운데에 약탈물이 세워져 있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 준다. 


넓디넓은 광장의 한쪽에는 또 하나의 명소 쌍둥이 성당,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i Miracoli)과 산타 마리아 인 몬테산토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Montesanto)이 보인다. 이 두 성당은 17세기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명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광장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일종의 랜드마크로서 건축된 것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완전히 똑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디테일이 있어 마치 똑같이 닮았지만 미세하게 다른 쌍둥이들의 외모를 연상케 한다. 그렇게 포폴로 광장을 둘러본 이후 다시 테르미니역으로 향해 역 내부의 푸드코트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이른 오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인파로 가득 차 있던 스페인 계단.
핀초 언덕에서 바라본 포폴로 광장과 로마 시내의 전경. 멀리 바티칸 시티가 보인다. 
언덕 위에서 보이던 건물 윗층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포폴로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오벨리스크. 정식 명칭은 오벨리스코 플라미노(Obelisco Flaminio).
세 개의 갈래길 가운데 서 있는 쌍둥이 마리아 성당들. 

# 헬창의 꿈은 이루어진다. 

로마 여행의 첫날이라 할 수 있는 이날은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들러보는 장소들을 가볍게 돌아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왜냐 하면 다음날부터 이틀 연속으로 로마의 명소와 바티칸을 돌아보는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 놓았고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피로감도 쌓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 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한 가지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바로 현지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것! 로마 이전 다른 도시에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긴 했으나 생각보다 여유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아해보지 못했던 것을 드디어 로마에서 경험해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현지에서 헬스장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구글맵에서 Fitness나 한글로 헬스장을 검색하면 리스트가 뜬다. 심지어 후기를 둘러보면 일일 입장 가능여부와 입장권 가격까지 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렇게 검색해 본 여러 헬스장 중 숙소와 가깝고 일일권 가격이 저렴한 한 군데를 찾아갔다. 


내가 방문한 곳은 Laboratorio Fitness(https://maps.app.goo.gl/hiU4MweevbMx5mLh8). 일일 패스 10유로니 웬만한 한국 헬스장보다 저렴한 입장료였기에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실내와 연식이 느껴지는 기구들이 새끈 하고 세련된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곳이라 하루 운동하는 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단지 약간 불안했던 건 탈의실 사물함에 잠금장치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내가 귀중품을 갖고 가지 않았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쇠질이라 간단하게 몇 가지만 한다고 시작한 운동 시간이 길어지고, 무게도 좀 더 올리다 보니 결국 서울에서 해오던 코스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운동을 하고 나와 숙소로 향했다. 당일엔 무리하지 않았다 생각했었으나 다음날부터 후폭풍이 몰려오기 시작했으니......  

잠금장치 없는 락커, 약간은 연식이 느껴지던 실내와 운동 기구들. 하지만 만족스러웠다.
헬스장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던 길. 로마 시내 어느 한적한 골목길에 세워져 있는 현대차 i10 모델에서 한국을 느꼈던 한국인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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