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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Aug 02. 2024

Pomposo Roma 2.

2023 이탈리아 여행기 20-04042023

역사와 문명의 힘을 로마에서 느끼다

# 유럽에서 공중화장실 찾기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도 같다 

다들 유럽 여행 중 화장실 문제로 곤경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럽을 다녀오고 나면 곳곳에 공중화장실이 널려 있는 한국이 이런 면에선 참 살기 좋은 곳이란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이 날은 로마 시내 가이드 투어가 예약되어 있는 날이었고 아침 8시에 지하철 COLOSSEO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가이드님과 일행들이 다 모여서 기본적인 브리핑을 시작하는데 그 순간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여긴 유럽, 이탈리아, 로마 그리고 콜로세움 앞이다, 공중화장실 따위 있을 리가 없다... 가이드님께 물어봐도 근처 화장실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제 어떡할 것인가. 구글맵을 열어 Toilet, Public Toilet을 검색해 보니 300여 미터 근방에 공중화장실이 있다고 나온다. 가이드님께 양해를 구하고 앱을 켠 채 알려주는 방향으로 뛰다시피 걸어갔다. 얼마나 갔을까. 분명 여기 근처에 있다고 했는데.... 없다. 아. 이런.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문 연 가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멘붕에 빠지기 직전 저 멀리 카페가 보인다. 다시 그쪽으로 직진, 다행히 카페는 영업 중이었고 내부로 돌진하다시피 들어가며 'Uno Espresso!'라고 외친 후 'Where is Toilet?'이라는 단말마와 함께 눈앞에 보이는 사막의 오아시스, 오 나의 구세주 같은 화장실로 직행했다. 이탈리아 로마 시내 한가운데서 당할뻔한 대참사를 모면하고 다시 일행이 있는 콜로세움 쪽으로 돌아오니 브리핑은 절반 넘게 진행이 되어 있었고, 투어 시작도 전에 진땀을 뺀 채 아침의 상쾌한 공기는 맡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투어에 참가했다. 


유럽에서 공중화장실을 찾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근대화되기 이전 유럽의 도시들에는 정화조 시설 내지 오물 처리 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지 않아 사람들이 오물을 그냥 길바닥에 버리고 노상 방뇨도 일반적이었기에 공중화장실에 대한 필요성이 덜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요즘은 공중화장실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공간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건 이 동네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 이렇게 부족한 공중화장실 시설에도 다들 평화로이 살아가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위급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잘 참고 견디는 것 같다는 게 늘 신기할 따름이다. 어쨌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고,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말을 다시 새긴 로마의 아침이었다.   

위급 상황을 가까스로 넘기고 정신을 차린 후 찍어 본 콜로세움의 위용.

# 하루는 너무 짧다 

이 날의 투어는 중간중간 소형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로마 시내 명소들을 돌아보는 투어였는데, 다양한 구성의 한국인들이 함께 모여 투어를 진행했다. 코스는 콜로세움/콘스탄티누스개선문->성바오로성당->캄피돌리오 광장->포로로마노->트레비분수->나보나광장->판테온으로 이어졌다. 5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이곳들을 다 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속도전일 수 있는데 그걸 해내는 이들이 한국인들 아니겠는가. 사실 이 모든 방문지들은 로마를 여행한다면 누구나 가보는 명소인지라 이에 대한 정보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리고, 이 투어 코스 말고도 로마에 갈 곳은 너무나 많고 하루는 로마를 돌아보기에 너무나 짧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로마에 대한 기초 학습이라 할 수 있는 이 투어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곳은 성바오로 성당과 포로로마노, 그리고 판테온이었다. 

콜로세움 옆에 위치한 로마의 개선문.

# 나도 있다, 성밖의 성바오로 성당 

성밖의 성바오로 성당(Basilica di San Paolo fuori le mura)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사도 성바오로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성당으로, 바오로 사도의 유해로 추정되는 관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 4세기 무렵 처음 지어진 성당이나 19세기 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유실되고 이후 100여 년에 걸쳐 새로 지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로마에 있는 4대 성당 중 하나로 성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당이나,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로마 시내로부터 약간 벗어나 있어 조금은 한적하게 관람이 가능한 곳이었다.  

성당 정원 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바오로 사도의 동상. 성인의 상징인 칼을 들고 있다.

이 성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직사각형의 공간 구조였다. 물론 엄청나게 높고 넓은 성당의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양쪽 가장자리에 늘어서 있는 거대한 기둥들의 행렬과 그 옆으로 보이던 회랑도 눈길을 끌었다. 유럽의 성당들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기둥, 회랑과 별개로 돔형이 아닌 직선의 천장면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직사각형의 구조는 마치 현대의 컨벤션 센터 같은 공간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제대 위 돔형 천장에는 예수와 베드로, 바오로, 안드레아, 루카 성인의 초상화 및 12 사도의 초상화로 구성되어 있는 천장화가 눈길을 끌었는데 고딕양식이나 바로크 양식이 아닌 마치 고대 로마 그리스 시대의 신전을 연상케 하는 성당이라 더욱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물론, 이 성당도 어마무시하게 화려한 장식과 성화, 유물 등으로 가득 차 있는데 다음날 만나게 될 성 베드로 대성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도였다. 


성바오로라는 인물은 예수의 12제자에 포함되지 않는 성인으로 소위 평신도로서 순교에 이른 신실한 신심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는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닌 평신도의 모범으로 많이 언급되고 따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러한 성바오로의 특성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성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신에게 닿기 위해 높이 치솟아 올린 고딕 양식의 첨탑 등이 아닌 넓고 평평한 직사각형의 구조가 저 높이 있는 신이 아닌 땅에 두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임을 위한 공간 같은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조금은 다르고 인상적이었던 성바오로 성당을 만난 이후 다시 로마 시내로 향했다. 

성바오로 성당의 전경.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제대 위의 웅장한 천장화.
벽면 상단부에는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성바오로 사도의 무덤 위에 전시되어 있는 바오로 사도를 묶었다는 쇠사슬.
아름다운 기둥과 회랑으로 둘러싸인 성당의 외부 공간. 

# 무너지고 버려진 돌더미로 남을 수 있었다. 포로 로마노. 

성바오로 성당을 떠나 캄피돌리오 광장을 둘러본 후 우린 팔라티노 언덕으로 향했다. 바로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만나기 위한 것.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포로 로마노는 과거 로마제국 시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지역으로, 로마의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기원전부터 조성된 이곳은 고대 로마제국의 믿기지 않는 건축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신전과 각종 건물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로마제국의 전성기가 이미 천년도 더 전이었으므로 제국의 흥망과 함께 포로 로마노의 건축물들도 쇠락해 간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한때 그저 오래된 건축물들이 무너진 잔해들만 가득했던 이곳을 1800년대 이후부터 재발굴하여 지금은 로마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오랜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현장으로 만들어놓았다. 


방문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면적이나 남아 있는 건축물의 높이 등 그 규모가 압도적인데, 이를 통해 고대 로마제국의 권세가 어떠했는지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흥미로운 건 섣불리 재건축 따위 하지 않았다는 것. 무너지면 무너져 있는 대로, 부서지면 부서진 대로 잔해들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는 로마가 아닌 다른 이탈리아의 유적지도 비슷한 모습들이 많았다.) 어찌 보면, 부서지고 깨어진 쓸모없는 돌덩이들로 가득한 폐허로 볼 수도 있지만 원형의 모습을 통해 포로 로마노가 견뎌온 시간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고, 과거의 영광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여행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시간'이 아닐까 싶을 만큼 로마와 이탈리아는 나에게 시간의 무게, 시간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사투르누스 신전의 모습. 무려 기원전 497년에 세워진 건물. 
거대한 유적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 로마를 관통하는 중심도로였던 성스러운 길(Via Sacra). 

# 모든 돔(Dome) 건축의 원형, 판테온 

팔라티노 언덕에서 포로 로마노의 위용을 만난 후 너무나 유명한 트레비 분수와 나보나 광장을 지나 마지막 방문지 판테온으로 향했다. 판테온 역시 로마를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찾아가는 명소라 할 수 있는데, 그 명성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판테온 주변과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기원전 27년에 최초 건축되었으나 이후 서기 125년 경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진 판테온의 유래와 속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기독교를 인정하기 이전 본래 다신교를 믿던 로마제국 시대의 신전으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건 거의 2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완벽한 모습으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나지 않은가. 


판테온 천장의 돔은 후대 건축물에 많은 영향을 끼친 중요한 구조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만난 돔 형태의 천장은 정교하면서도 엄격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현존하는 철근이 들어 있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콘크리트 돔을 마주하면서 2천 년 전에 이러한 구조를 설계하고 시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돔 중앙의 개구부를 통해 쏟아져 내리는 빛은 마치 신의 영광과 은혜를 상징하는 듯 찬란하게 판테온 내부의 벽면을 비추고 있었고,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무덤과 기념비들은 판테온이 가진 역사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판테온 하나만으로도 사실 로마라는 도시가 가진 세계적 명성과 권위는 충분하다. 도시의 상징이자 관광명소로써의 가치뿐 아니라 인류 문명에 대한 연구 대상으로써의 가치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근데, 로마엔 판테온만 있는 게 아니다. 삽으로 땅을 파는 순간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도시가 로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찬란한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겐 이러한 면이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의 인류에겐 이런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문명과 문화의 가치, 역사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세계적인 역사문화유산이자 관광도시, 바로 로마였다. 

"루시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라는 뜻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돔 최상부의 개구부. 라틴어로 눈이라는 뜻의 Oculus라 불린다고 한다. 
Oculus에서 내려온 빛이 닿는 벽면의 모습. 마치 누군가 정조준해서 비춰주는 조명과 같은 느낌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라파엘로의 무덤과 벽면의 흉상.
투어를 마친 후 늦은 점심으로 먹은 이탈리아식 소꼬리찜 Osso Buco와 여행 기간 내내 소울 드링크 같았던 아페롤.
로마의 오렌지 정원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사벨로 공원에서 바라본 로마의 일몰. 아름다운 하루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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