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2월이 지나간다.

by sunshine

지금쯤 계획대로라면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만 현실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아빠의 생사가 오가는 문제였으니 비행기 캔슬 비용이 발생한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싶었지만 그런 위중한 문제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간사한 마음이 올라오며 내심 아쉬웠다. 언제쯤 다시 장기간의 호주 방문을 계획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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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수술도 시술도 어려워 한달을 중환자실 준중환자실에 계시다 그냥 퇴원을 하셨다. 수술대 위에서 아빠 얼굴도 보지 못하고 큰 일이 발생하는 것 보다는 단 한끼를 먹더라도 집에서 서로 얼굴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의 오로지 내가 밀어부친 결정이다. 의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읊어줄 뿐 결국 선택은 당사자와 보호자의 몫이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도 감수를 해야 한다.

입원생활은 멀쩡한 사람도 아프게 만든다더니 한달여간의 입원 후 아빠는 몸에 있는 근육이 다 빠져버린 것 같았다. 살아 생전 처음으로 아빠가 스스로 걷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는 되려 슬픔 보다는 아빠를 지켜주겠다는 강한 마음이 올라왔다.

2주도 어렵지 않을까 했지만 이래저래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있고 겉모습만 봐선 말끔한 아빠 얼굴을 보면 때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심장 기능이 20% 정도의 기능만 하고 있고 두개의 심장 혈관도 그대로 막힌 상태이기 때문에 평온한 일상 뒤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안함이 늘 도사리고 있다.


나도 아이도 일이고 어린이집이고 모든 일상을 다 제쳐놓고 친정에서 지냈더니 한 달이 그냥 사라진 것 같다.

당장 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계획 조차도 세우지 못해 부랴부랴 3-4일 전에 티니핑 캐릭터 옷과 신발을 주문하고 최근에 유행하는 엄마 숙제인 산타가 방문하는 영상도 만들어서 상황을 모면했다.

회사에서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급한 불은 끈 것 같지만 나름 자영업자 형태의 근로이다보니 한달을 그냥 수입이 없는 상태로 보내게 되었다. 보조기구라든지 환자용 음식이라든지 급하게 이것저것 사느라 돈도 많이 썼는데 바닥을 향해가던 나의 비상금도 정말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다시 기존의 생활로 돌아가려니 나의 체력이 진짜 이제 바닥을 치기도 하고 일정치 못한 수입의 현실이 갑자기 숨이 막히게 버겁게 느껴진다.


최근 불면증이 다시 도져서 어젯밤엔 갑자기 잠이 깨서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는데 그 긴 새벽동안 한 일은 사람인과 잡코리아를 뒤지는 것이었다. 작년까지만도 연봉 9천 정도를 버는 일적인 부분으로는 뭐 크게 어디 빠지지 않는 쉬지 않고 17여년간 충실히 일해온 직장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정작 회사를 나오니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단 하나도 찾기 어렵다. 내 성격에 맞지도 않는 영업을 해보겠다고 책도 팔아보고 학습지 교사도 해보았지만 평균 월200 버는게 쉽지 않다.

급여도 급여지만 오랜 기간 직장생활만 해 봐서인지 예측이 어렵고 변동성이 큰 자영업의 일이 그 자체로 나에게 너무 크나큰 두려움이자 스트레스이다. 이럴꺼면 그냥 회사를 다시 나가는게 맞는 것 아닌가?

나의 눈은 점차 낮아져서 이제는 집에서 멀지 않고 9-6만 보장해주고, 어떻게든 내가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게만 해 주는 회사라면 기본급만 받아도 괜찮겠다 하는 지경에 이르러 무역사무보조, 해외영업지원 등등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밀어넣었다.


대기업 다니는 남편이 있으니 그냥 일을 하지 말라는 주변의 권유도 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양가부모께 물려받을 것도 없고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까지 집 장만을 못했고 나와 아이의 나이차이가 40살이니 아이의 미래도 내 미래도 계속 준비해가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외벌이 가정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활하는건가 의아할 지경이다.


준비 과정을 거쳐 공부방을 차릴까 하던 원대한 25년의 꿈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26년을 맞이하는 지금 나는 다시 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노쇠하신 부모님, 아직 고작 5살인 아기, 점점 체력이 떨어져 가는 나 자신 - 원래도 걱정이 걱정을 낳는 나 이지만 최근은 정말 나의 불확실한 미래가 너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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