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by sunshine


보전적 약물 치료를 하며 연명을 결정한 아빠는 한동안은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식사도 잘 하시고 집 안에서 왔다갔다 운동을 하실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으셨다. 마치 지난 일들이 꿈처럼 느껴지고 한켠으로 어쩌면 천운이 깃들어 이대로 오래 사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생겼다. 그러나 지난 주부터 갑자기 급격한 컨디션 저하가 보이더니 시시각각 몸의 상태가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었고 급기야 목요일에는 사지경직성 전신경련이 왔다. 마치 간질처럼 몇십초간 지속된 경련을 아빠는 기억하지 못했고, 부랴부랴 주변의 도움을 청해 응급실에 가려고 했으나 아빠의 강력한 거부로 응급실행은 무산되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응급조치라고는 심장혈관쪽 약 밖에 없었기에 비상 시 뿌리는 혈관확장제라도 긴급 투여하였는데 타이밍이 맞은 것인지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차츰 경련이 사그라 들었다. 아빠가 집안에서 걷다가 가끔씩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고 넘어질 듯 몸의 중심을 못 잡는 순간들이 있을 때에도 이건 근육의 문제가 아니다 싶었었는데 전신경직성 경련 얘기를 듣자 이건 분명 신경에 문제가 생겼다 싶었다. AI에게 물어보니 심장마비 시에 뇌에 산소가 전달되지 못한 후유증으로 저산소성 뇌신경질환 가능성과 부정맥 가능성을 알려준다. 어느 쪽이든 아빠의 상태는 나빠지고 있다. 나는 2월부터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기로 계획되어 있어서 마지막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의 전화를 받고 수업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바로 친정으로 향했다.


아이의 힘일까? 아빠가 유일하게 웃는 순간은 손녀의 재롱을 보는 때이다. 아빠가 언제 어느때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족들이 눈을 뗄 수가 없는데 그 대열에 손녀도 참여해서 외할비 화장실 갈때도 졸졸 따라 들어가더니 틀니를 세상 신기하게 관찰한다. 아빠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내기 때문에 일상이 무료할 터인데 손녀는 중간중간 할아버지의 잠을 깨우고 발을 간지럽히고 병원 놀이도 하고 반창고도 붙여준다. 내가 못다한 효도를 딸이 다 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 조부모가 같이 계시는 건 조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참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 같다.


금요일에는 심장혈관 쪽 외래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예약시간에 맞춰 병원을 향했다. 중증환자의 3-4시간의 외래진료는 고문에 가깝다. 더욱이 부산백병원은 병원은 좁고 환자는 미어터져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편안한 환경이 못된다. 신경과도 외래 예약을 하라고 했으나 병원 진료 받다가 병이 더 깊어질 것 같다.


담당 의사는 혹시 서울에서 진료를 받아보겠냐고 했다. 그 생각도 안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이라고 방법이 생기겠냐고 하니 시술은 별 차이가 없겠지만 그래도 수술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부산에서는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서울에서는 혹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한다. 어느 쪽이든 최악의 경우인 수술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처음에도 지금에도 아빠의 몸에 칼을 댈 생각이 없지만 아빠의 상태가 안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니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맞을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이라고 수술이나 시술면에서 기막힌 해답을 주지는 않더라도 좀 다른 시각에서의 치료법을 제안하지 않을까, 혹은 최소한 약을 쓰는 부분에서라도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울까지의 최소 4-5시간의 시간을 차 안에서 아빠가 잘 버티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다.


외래진료 당일까지도 아빠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는데 약을 좀 늘려서인지 좀 푹 쉬셔서인지 토요일엔 조금 상태를 회복하신 것도 같았다. 어쨌든 당사자인 아빠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아빠가 좀 괜찮으실때 의향을 여쭤보았다. 아빠는 응급실이든 중환자실이든 더 이상 병원 입원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그 긴 검사들과 병실에 갇혀 지내는 시간들을 견디기엔 지쳤다고 하셨다. 또한 그로 인해 엄마가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아빠에게 이야기 했다. 아빠, 지금 제일 힘든 건 당사자인 아빠야. 그럼에도 아빠는 이 모든 걸 가족들을 위해 너무 잘 이겨내고 있어. 가족은 그런 아빠를 지지하고 돕고 응원하는거야. 아픈 당사자가 나나 엄마였더라도 아빠가 온 힘을 다해 도와줬을꺼야. 가족이니까 각자 역할을 하고 있는거니까 그런 생각 하지마.


아이는 오늘 잠자리 책으로 심청전을 읽어달라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심청전 책을 읽기가 좀 힘이 든다. 아이에게 읽어줄땐 최대한 성우같이 감정을 실어 대사를 읽는데 심청전만큼은 그렇게 읽을 수가 없다. 나이가 들고 아이를 낳아 길러 보니 심봉사가 청이를 업고 젖동냥을 다니는 대목부터 목이 메인다. 딸이 늦자 앞도 안보이는 심봉사가 딸을 찾아 나선 대목도 마음이 아린다.


아산이나 삼성, 세브란스 같은 서울의 대형 병원들은 심장이식 수술도 꽤나 성공 사례가 많다고 한다. 아빠에게 나의 심장을 떼어드려도 아깝지 않지만 자식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만 봐도 가슴이 무너지는 것이 부모이니 인당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부모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놓지 않는 아빠의 의지를 잘 알고 있다. 나라면 눈이 안보이고 우울증도 오고 심장도 신장도 모든 장기가 힘에 부쳐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이 상황에서 저 정도의 의지를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온 우주를 다해 아빠를 응원하고, 아빠가 너무 아프지 않기를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한다. 아빠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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