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무엇 때문이다 라고 콕 찝어 열거할 수 없이 구체성 없는 바쁜 날들의 연속이다. 육아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 아마 분리불안 증세가 있는 두 명의 가족(남편과 아기) 때문에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도 일이라 그럴 수도.
누군가 팔과 다리를 묶고 있을 때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책읽기이다. 소설책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데 진짜 수십년(단어 그대로 수십년)만에 소설책이라는 걸 읽어본 것 같다. 아무래도 매스컴 영향이겠지.
보건교사 안은영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 시대의 직업상을 반영한 약간 사회적인 내용이 들어간 감성을 터치하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되어 책도 드라마도 보지 않았다(82년생 김지영스러운).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몇 가지 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손에 잡혔는데, 책 표지 디자인을 유심히 보는 나로서는 당췌 이해가 안되는 표지였다. 만화스럽고 형광색이 뒤섞인 생뚱맞은 그림이라고나 할까(책을 조금 읽어나가자 바로 이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약간은 아쉽다).
긴 시간 짬이 잘 안나기 때문에 책을 들어도 한 챕터를 연속해서 읽기가 어려운 최근의 일상인데 이 책은 이틀을 두고 다 읽어내려갔다.
젤리같은 만화책을 읽는 기분이기도 한데 작가의 문체도 가벼운 듯 가볍지 않고 말을 쉽게 술술 풀어내는 편안한 글이라 정말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몇몇 문창과 출신들의 꾸밈체가 내 취향에 정말 맞지 않는데 이 글은 눈에 거슬림이 없었고, 뭔가 작가의 학창시절이 아른거리듯 보여지는 것 같았다. 만화책부터 소설책 역사책너머까지 모든 서적을 좋아하는 사람(이상하게 약간 일본소설 문체스러운 부분들이 종종 보였다), 아무래도 공부를 좀 잘 했던 것 같은 사람, 소위 노는 학생도 아닌데 딱히 앗싸도 아닌, 자기만의 뚜렷한 색을 드러내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
뭐 실제가 어땠는지는 알 수는 없다. 다만 인물검색 프로필 란을 보면서 공부 잘 했던 사람이네 정도를 확인했을 뿐.
그러면서 내 학창시절을 돌이키게 되었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나는 어떻게든 내 성향을 보이고 싶지 않아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물은 인싸도 아싸도 아닌 어정쩡하고 불편한 모습이었다. 8시 등교에 야간 자율학습까지 있던 시절이라 사람들 속에서 많은 시간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저녁 도시락을 까먹은 뒤에는 대부분 운동장에 나가 있거나 학교 도서관을 가곤 했다. 당시의 도서관은 학생들이 책을 보거나 빌리러 오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창가에서 새어나오는 노을 밑에서 책 냄새를 맡는 것은 심신을 정화하기에 충분했던 나만의 아지트였다.
이 책은 각자 다른 선생님과 학생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나를 비롯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몇몇 다른 학급동료들을 그 캐릭터 위이 입혀보는 재미가 있더랬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캐릭터들인데 당시에는 왜 그렇게 그게 이상하게 보이던지.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너희들의 세계에 나도 있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애썼던 내 과거의 모습에게 그냥 너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을 전해주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너무 티나지 않는 미지근함에 가까운 따뜻함으로.
아주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 글을 남긴다. 드라마 캐스팅은 내가 생각한 인물들과는 딱히 싱크로율이 높지 않아 약간 아쉬움이 들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