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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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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Jun 26. 2023

고용 불안

노산일기

아기는 계속 잘 크고 있다.

알아서 크고 있고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팔할을 키워주고 있고,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넣고 회사를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아이를 재운다.


육휴의 후유증이 이 정도로 오래갈 줄은 솔직히 정말 몰랐다. 내 일은 갈갈이 찢어져 다른 이들의 업무가 되었고 내가 돌아왔다고 해서 그 일이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어느덧 복직한지 4개월에 접어드는데 나는 아직 뚜렷하게 맡은 업무가 없다. 급하게 떨어지는 일을 쳐 내고 나면 또 공허하게 모니터를 바라본다.


나름대로 그간 회사를 내 인생처럼 충실히 다녔고 부서의 업무 틀도 다 내 손을 거쳐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더 우수한 인재들은 있겠지만 나 정도로 성심성의껏 회사 일을 하는 직원은 찾기 힘들 것이라는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일을 했다. 최소한 밥값은 해 주는 직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루팡도 이런 루팡이 없다. 관성이라는게 있어 업무 시간에 딴 짓 거리를 마음편히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멍하니 시간을 흘려 보내는 하루가 내심 더 고역이다.


어린이집까지의, 집까지의 거리가 15-20분 거리 내에 회사가 위치한다는 놓칠 수 없는 최고의 이점때문에 쉽사리 이직 생각도 못하겠다. 이러다 하루아침에 짤려도 전혀 이상함이 없겠다 싶다. 11명에서 3명으로 팀 인원이 줄었는데 솔직히 한두명 더 줄인다고 사단이 날 것 같지도 않다.


최근의 나는 약간 돈에 눈이 돌아갔다 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돈이 정말 갖고 싶어졌다. 아기 때문이 아니고 그냥 돈이 많아서 경제적 자유를 빨리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돌이켜보니 고용의 불안감이 역으로 돈 욕심을 만드는 것 같다. 안정된 직장이 있을 때는 월급이 끊길 걱정 같은 우려가 없었기 때문에 딱히 돈 욕심이 없었던 가 보다.

나는 알고보니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쁜 짓 빼고는 돈 되는 일이라면 다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막상 회사에서 하던 일 빼고는 할 줄 아는게 없다. 기여할 것이 있어야 나를 받아주는 세계가 있다면 내가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 떠오르지를 않는다. 옷을 만들줄도 아이들을 가르칠 줄도 그럴 듯한 요리를 할 줄도 모른다. 그저 닥치는 대로 살 뿐.


내게 그림을 그리는 등의 예술활동은 생계가 보장된 상황에서의 고급 취미이다. 실력은 둘째치고 팔릴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애초부터 없는데 그것으로 무슨 생계를 꾸리겠나. 내가 좋아하는 일은 돈 버는 일이고 내 취미는 돈 버는 일이다. 그것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오늘 대국민 로또 청약을 했다. 하늘에서 내 입으로 감이 떨어지기를 기도한다. 남편이 로또가 되면 둘째를 바로 가지자기에 마치 로또가 이미 된 양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댄다.


그래서 앞으로 뭘 할껀데? 라는 질문 속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밤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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