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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hot Feb 05. 2020

코리안 디자인 아이덴티티

크롬 도색과 형형색색 LED에 관한 단상

사물의 외관을 봤을 때 부연 설명 없이도

 ‘아, 이건 한국 것이구나’ 할 수 있는 요소는 어떤 게 있을까?


한옥의 처마와 문살, 한복, 놋그릇, 오방색, 불상. 혹은 그것들로부터 모티프를 차용한 현대의 어떤 물건들? 과거와 단절해 근현대의 사물들만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세계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높은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 같은걸 꼽아볼 수 있을지 몰라도, 온전히 한국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쌍둥이칼 Zwilling이나 독 3사 자동차(밴츠, BMW, 아우디)의 외관은 그 자체로 견고하고 군더더기 없는 독일 이미지를 뿜어낸다. 코카-콜라나 리바이스는 온전히 미국이다. 에르메스와 샤넬은 고상한(혹은 고상한 척하는) 프랑스의 상징이다.


슬프지만, 나는 한국의 근현대 디자인 아이덴티티 중 큰 흐름을 차지하는 게 크롬 도색과 형형색색 LED조명이라고 생각한다. 전국 어딜 가나 볼 수 있지만 좀 심하게 말하자면 천박하고 저질스럽다. 그 내면을 상상해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현대인의 물건 중 집 다음으로 비싸다고 꼽을 수 있는 자동차. 수입차가 흔한 시대라지만 여전히 국산차의 내수 점유율은 8할을 넘어선다. 나 역시 국산차를 타고 있지만, 구입 당시부터 너무 싫은 건 크롬 도색된 외장 부품이 많다는 점이다. 도로에서 마주치는 다른 국산 차종들 역시 크롬 칠을 한 것들이 많다. 엔트리 급부터 기함급 차량까지. 광을 뿜어내지 않으면 한국차가 아니라는 듯, 여기저기서 ‘날 좀 보소’를 외치는 것 같다. 라디에이터 그릴에서부터 라이트 주변, 필러, 트렁크 주변과 휀더까지. 꼼꼼하게도 발라놓은 그 성실함과 촌티가 너무 싫다. “엣지(Edge)가 없다”는 말이 찰떡같이 붙는다.


인간의 정서는 공간에 지배받는다. 나는 그래서 수도 서울부터 지방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박아 놓은 형광 빛깔 LED조명들이 싫다. 한강 다리 아래에도, 남산 타워에도, 지방 소도시의 랜드마크 격인 여러 장소에도 LED조명은 성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중앙공무원교육원에 LED 활용에 관한 필수 이수 과목이 있는 건지. 지자체 선출직들의 공약집에 LED 활성화에 관한 다짐이라도 있는 건지. 남한 전체를 '버닝 썬' 분위기로 꾸미고 싶은 건지, 노래방에서 못 다 부른 18번이 아쉬워 조명이나마 흉내 내고 싶은 건지, 있던 정신도 나가게 할 것 같은 LED 조명 장식들에 도무지 적응을 할 수 없다. 24/7을 상징하며 잠 못 드는 대한민국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온 나라가 불야성인 걸까? 자동차 크롬 도색과 다를 바 없이, ‘이렇게 하면 눈에 띄겠지?’라는 단세포 사고방식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해본다.


금세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눈이 아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LED는 그야말로 '눈뽕'이다. 프라하성이나 밀라노 두오모가 간접 조명으로 만들어내는 야경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만약 그곳에 LED조명을 감아놓았다고 생각해보자. 속된 말로 ‘극혐’ 아닌가.


취향 몰살의 공간에서 미분화된 취향을 갖고 살아가는 여러분의 수고가 참 많다.


https://news.v.daum.net/v/20170502030705176

↑ 자연이 만들어놓은 명작 단양 팔경. 그리고 그 가운데서 상진대교(상진교)의 싼티 인공미의 정점 LED 눈뽕을 맞았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대체 1200여 개의 조명으로 왜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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