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입문 희망자(a.k.a.바린이)들이 알아야 할 현실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지만, 역설적으로 버킷 리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취미 모터사이클. 코로나19 확산 이후 실내 활동에 많은 제약이 생기면서 입문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배달용 이륜차도 늘었고, 특히 취미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은 껑충 성장했죠.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먹보와 털보’를 접한 사람들이 바이크 라이딩에 관심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대중적 시선이 조금이나마 좋아지는 계기일까 기대하며 그 프로그램의 몇 개 에피소드를 저도 보았는데요. 라이더 입장에서 우려되는 점이 몇 개 있어서 글을 적어봅니다.
프로그램에서 노홍철-정지훈 님이 탑승하는 바이크는 모두 해외 브랜드의 고가 제품들입니다. 저는 BMW R18을 타는 부분까지만 봤는데, 중후반부 에피소드에서는 할리데이비슨이나 트라이엄프의 바이크로 바꿔타나보더라고 요. 모두 2~3천만 원대 고가 제품들입니다. ‘차만큼 비싼’ 바이크들이지만, 영상에 등장한 브랜드들의 판매고나 인지도는 들썩들썩 대겠죠?
자, 이제 본론을 이야기합니다.
‘오토바이 값이랑 헬멧, 보험료 정도 준비하면 대형 모터사이클에 입문할수있나요?’라고 묻는 예비 바린이(바이크 어린이, 입문자를 뜻하는 줄임말)들을 위한 현실 자각 타임.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챙겨야 할 것이 많고 크고 작은 돈이 제법 드는 취미라는 걸 알려드릴게요.
125cc 미만 원동기로 분류되는 모터사이클은 자동차 운전면허로도 몰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의 배기량을 운전하려면 2종 소형 운전면허가 필요하죠. 이륜차 경험이 전무하다면 이걸 면허 시험장에서 바로 취득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습니다. 줄줄이 낙방하는 영상은 유튜브에 흔하고 흔하니 한번 찾아보시고요. 그렇다면 운전 학원을 대안으로 삼을 수 있겠는데요. 최소 35만 원 정도의 학원비가 필요합니다. 학원에서는 10시간 이상 주행 실습을 거쳐야 응시 자격이 주어져요.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하셨나요? 이제 바이크 구입에 앞서 각종 안전 장구와 편의 장비를 구입해야겠네요. 헬멧은 20~100만 원, 라이딩 재킷도 그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테고요, 라이딩 진은 15~30만 원, 글러브 10~20만 원, 부츠는 20~40만 원 정도 예산을 책정해두세요. 함께 탈 동료들과의 통신을 위해 인터콤도 필요하겠네요. 저렴한 것은 15만 원, SENA 50S 같은 고급 제품은 45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안전 장구류는 계절에 따라 바꿔 쓰기도 해야 하니 두 개 정도씩 갖고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도합 300만 원 정도 필요해요.
신차와 중고차 중에서 골라야 하죠. 양자 모두 차량 가액의 5% 수준의 취등록세를 별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신차의 경우 소비자 가격이 아닌 수입면장에 적힌 가격을 기준으로 하고, 중고차라면 각 지자체에 구비된 연식별 차량 시가 표준액이 기준이 됩니다. 먹보와 털보 초반에 나온 R18의 차량가액이 3천만 원을 넘어가니 150만 원 정도를 세금으로 내겠네요.
새 바이크를 샀다면 한동안 돈 쓸 일은 없겠지만, 누적 운행거리 5천 km를 넘어서면 브랜드가 제공하는 무료 엔진오일 쿠폰도 소진되어 슬슬 돈이 들기 시작합니다. 보통 5천 km마다 교체하는 합성유 기준 1회 비용이 13~15만 원 정도가 들고, 만 km 정도마다 바꾸는 타이어 하나의 가격이 20만 원 이상이죠. 브레이크 패드나 에어필터, 냉각수, 점화플러그 등 각종 소모품들도 자동차 대비 교체 주기가 짧고 단가는 더 비쌉니다. 자동차 타이어는 3~4만 km까지 타는 게 보통이고 네 짝을 모두 바꿔도 60~70만 원 정도 소요되잖아요. ‘가성비’만 보면 대형 바이크 타이어는 개당 네 배 이상 비싸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적산 거리가 많고 전 주인이 꼼꼼하게 소모품을 교환해놓지 않은 바이크를 중고로 구입한 경우라면, 돈 쓸 일은 훨씬 더 많아져요. 타 차량과의 추돌, 혹은 본인의 과실로 인한 슬립이나 제꿍(제자리에서 넘어뜨리는 것을 뜻함) 등을 겪을 때 적게는 수십, 많게는 몇백만 원이 털릴 각오도 하셔야 해요.
일반 휘발유를 쓰는 바이크도 많지만, 대형 바이크는 고급유 권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 주유할 때 13리터~17리터 정도 넣을 텐데요, 리터당 연비는 15km 내외로 가정할 수 있어요. “바다 한번 보러 가자!” 라며 서울에서 속초를 다녀온다면, 고급휘발유 비용만 6만 원 정도 쓰겠네요. 움직이는 경로에 있는 맛집에 들르고 차도 한잔 한다면 몇만 원 또 수월하게 나가겠죠. 이륜차 경력이 전무한 입문 자라면 책임보험만 들어도 수십만 원 지출은 각오해야 합니다. 종합보험으로 업그레이드한다면 두 배 이상을 쓸 수도 있고요.
가장 중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체계적으로 배우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예를 들어 후륜과 전륜을 골고루 섞는 안전한 브레이킹 요령이나 체중과 시선의 이동, 사륜차의 사각지대 인지 및 돌발상황 예측 같은 것들이요. 겉만 번지르르한 무늬만 안전장구를 가려내는 방법도 정말 중요한데요. 먹보와 털보를 보면서 내내 불편한 지점이 이것이었습니다. 안면을 노출시키는 데다가 고속에서 머리를 거의 보호해주지 못할 것 같은 얇은 오픈페이스 헬멧 착용, 휘날리는 멋을 위해 착용한 긴 머플러와 롱코트 같은 것들이요. 바이크 사고 상황에 관해 잘 모르는 분들, 혹은 알고도 외면하는 분들은 ‘간지’ 때문에 소두 핏 오픈페이스 헬멧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건 정말 안 쓰는 것만 못한 단속 회피용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가급적 얼굴과 머리를 다 가려주는 풀 페이스를 쓰거나, 안면이 드러나는 헬멧을 쓰더라도 안전 인증을 획득한 제품으로 써주세요. 그리고 긴 머플러나 코트, 핸들 장식용으로 치렁치렁 매단 긴 술 같은 것들이 요. 자기 바이크나 타인의 바이크 휠이나 구동계에 휘말려 들어가면 대형 사고로 이어져요. 자동차 사고긴 하지만, 이사도라 던컨이 긴 머플러가 바퀴에 휘말리며 유명을 달리했어요.
바이크를 딱 타기 좋은 시기는 3월 중순부터 7월 초순, 그리고 8월 하순부터 11월까지. 8개월 정도입니다. 한겨울이나 한여름에는 타기가 힘들고, 타더라도 아주 제한적인 운행만을 하게 되죠. 그리고 타기 좋은 시즌에도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짙은 날이면 주행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동차와 달리 오픈 에어링을 하는 것은 특권이기도 하지만 족쇠가 되기도 합니다.
자, 이 모든 걸 감수하면서 바이크를 타시겠습니까? 참, 제가 언급 안 한 게 있네요. 튜닝 파츠에 맛이 들린다거나 기변병이 온다거나 하면 지출 규모는 훨씬 커질 거거든요.
**커버사진 출처 : 먹보와 털보 넷플릭스 공식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