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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이 할무니 Oct 22. 2021

묘연

람쥐와 보우네 - 다묘 가정의 시작, 람쥐 (1)

폴짝폴짝 그래서 ‘(다)람쥐’


사람에게 인연이 있듯이, 고양이에게는 묘연이 있다.


집 근처에 캣맘님이 관리하시는 고양이 밥자리가 있음에도, 이사 온 지 몇 년이 되도록 동네 고양이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던 나. 그런 나에게 람쥐와 보우의 묘연이 닿았다. 유명한 고양이 유튜브 채널과 달리 우리의 만남에는 대단한 서사가 없다. 대신에, 고양이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사람이 갑자기 다묘 집사가 되어 매일 좌충우돌하는 일상 자체가 서사가 되어버린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의 만남에서 의미를 찾는다.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던, 그런 묘연이지 않았을까' 하는...


힘들게 '코시국'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유튜브 영상 속의 귀여운 동물들이 위안이 되기 시작한 즈음, 유튜브 알고리즘은 성실히 관련 영상을 추천해주고 있었다. 개통령 강 훈련사님의 개 행동 교정, 집안일도 인테리어도 수준급인 도시의 다묘/다견 가정의 일상, 시골 마당냥의 일상 등.


집콕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간이 어느덧 일 년이 훌쩍 지난 어느 봄날, 눈과 낙엽으로 뒤덮인 겨울 산길을 깡총깡총 뛰다가 갑자기 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애교를 부리는 귀여운 산냥이 '람쥐'가 눈에 들어왔다. 


출처 : 무겐의 냥다큐 '좋아한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몸하고 마음하고 따로 놀아요 - 람쥐편'

지금은 냥이계 수호신으로 통하는 대단하신 분이라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던 유튜버 '무겐'님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저런 뒹굴뒹굴 애교냥이라면 벌써 입양을 갔겠지 싶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영상이 마무리되자,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입양 문의는 인스타그램 DM으로'라는 안내 글까지 확인하면서도 선뜻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일 벌일 궁리나 하고...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이긍.   


귀여운 동물 영상을 더 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집 안 청소를 시작하고 설거지를 해보지만, '연락해볼까?' '아니야' 내 마음속엔 엎치락 뒤치락이 한창이다. 설거지하면서, 이번엔 주제를 바꾸어 영화 관련 영상의 바다를 헤매 본다. 그러다 클릭한, 90년대 할리우드 흥행작 '스피드'의 여주인공 '산드라 블록'의 인생 이야기.


결혼 실패로 상심한 그녀는 새 생명을 책임지는 부모가 되리라 결심한 후 갓난아이를 입양하고, 아이로 인해 새롭게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그런 이야기이지 않은가? 흠. 그렇게 다시 내 머릿속은 나도 귀여운 생명체 '람쥐'를 아들로 맞이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으로 채워졌다. 결국, 계정은 있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던 인스타그램에 오랜만에 로그인하고, 무겐님 인스타그램(@mugen_s)에 들어가 보았다.   


나름 무겐님 밥셔틀의 고정 멤버였던 람쥐 소식이 다른 길아이들 소식과 함께 많이 올라와 있었다. 약간 늦은 저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난 무겐님께 DM을 보내고, 밥셔틀을 마치신 무겐님과 늦은 시간에 긴 통화를 하게 되었다. 람쥐의 야생성으로 인해 집 생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고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음, 람쥐에게 건강상의 문제 발생 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음, 한 생명의 평생을 책임지는 일이기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함 등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고양이를 키워 보지 않은 랜선 집사 1년 차가 '저는 다 잘해 낼 수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무의미하기에 선뜻 그런 답을 드리진 못했다. 무겐님의 설명과 소심한 나의 질문이 이어지던 기나긴 통화였다. 통화가 끝날 즈음엔, '나도 고양이 아들이 생기는구나'하는 설렘과 ' '람쥐의 평생을 지켜야 하는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며, 그렇게 입양을 확정 지었다.  

 

무겐님과 통화를 마치고,  유튜브에서 람쥐가 나오는 영상을 다시 찾아보고 무겐님 인스타그램에 그간 올라온 람쥐 소식도 섭렵하기 시작했다. 사실 입양을 결정하기 전에 해야 했을 과정인데, 완벽주의인 듯하면서도 알고 보면 허당인 나. 그렇게 뒷북으로나마 람쥐 영상을 보면서 '뒹굴 람쥐' '하악 람쥐'의 매력에 더욱 빠져드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오랜 시간 람쥐를 지켜보면서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 신중함은 부족했고, 귀여운 람쥐의 외모와 애교스러운 행동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몇 달간 랜선 집사로 지내면서 다양한 고양이 채널을 전전하다 보니, 야생 고양이와도 가족처럼 교감하며 지내시는 집사님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접한 것이 영향을 주었나 싶다.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저런 애교냥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그런 막연한 자신감이 들었다.


혼자가 편한 고양이, 람쥐


사람처럼 고양이도 성격이 제각각이다. 아마도 람쥐는 다른 야생의 아기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캣초딩 시절에 어미로부터 독립을 당한 후 무겐님이 밥셔틀 다니시는 산에서 홀로 지내게 된 것 같다. 2020년 1~2월경 겨울, 산에서 무겐님과 람쥐가 처음 만난 후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겐님은 람쥐에게 밥과 집을 챙겨주는 길아빠가 되어 주셨다. SNS상에서 유명하신 고양이 수호신, 무겐님을 길아빠로 둔 덕에 람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SNS 팬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여러 친구와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고양이. 그래서 무겐님은 람쥐를 위해 다묘 가정이 아닌 외동묘 자리를 찾고 계셨다. 외동묘 자리가 되려면 이전에 고양이를 키워봤지만 사별 등으로 지금은 키우지 않는 집사님이거나 나처럼 왕초보 집사여야 하는 상황. 겁도 많고 조심성도 많은 람쥐를 위해서는 고양이를 키워보신 집사님네 외동묘로 가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야생의 성묘가 집냥이로 입양될 기회란 쉽게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저런 상황이 맞물려, 감사하게도 초보 집사인 나에게 람쥐를 입양할 기회가 온 것이다.


람쥐는 구조도 쉽지 않았다. 오해가 없도록 우선 말씀드리자면, 성묘 구조가 모두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무겐님이 구조하신 애교냥 중에는 그냥 번쩍 안아서 이동 가방에 넣는 것으로 구조가 마무리된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겁 많고 조심성 많은 람쥐는 통덫을 놓고 스스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마침 무겐님이 돌보던 길아이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한 상황에서 안 그래도 무리한 일정을 소화 중이신 무겐님은 산에서 몇 시간씩 잠복하며 람쥐를 구조하기 위해 몇 번이나 헛걸음을 하셔야 했다. 한 번은 통덫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 한 번은 갑자기 나타난 여냥친 '보우'를 따라 가버려서... 람쥐 구조를 거듭 실패하게 된 것이다.


출처 :  무겐의 냥다큐 '뒹굴뒹굴 굴러서 통덫으로 들어가자 람쥐야~ 람쥐에게 가족이 생겼어요!'


3차 구조 시도에서 드디어 철통덫에 들어가 준 람쥐. 겁 많은 성격에 얼마나 놀랐을지… 입양을 위해 필요한 과정인 만큼 무겐님과 람쥐의 팬분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해주셨다. 중성화 수술과 건강 검진을 위해 병원으로 이동해서도, 람쥐는 무겐님 손을 물기도 하고, 구석에 몸을 숨기는 고양이 습성상 투명한 문이 달린 병원장 안에서 더욱 겁에 질려 계속 예민하게 행동했다.


'사나움 + 튐'


구조 다음 날, 무겐님이 병원 면회를 하러 가서 전해주신 람쥐 영상을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람쥐가 들어가 있는 투명한 병원장 위에 떡하니 쓰여있던 문구 '사나움 + 튐.' 무겐님 앞에서 뒹굴뒹굴하던 애교냥은 간데없고, 겁에 질린 람쥐는 병원 간호사분들이 기피하는 사나운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나 또한 앞으로 필요할 수도 있기에, 그날 가죽 장갑을 주문했으니. 지금도 람쥐가 입원했던 병원에서는 고양이의 야생성을 논할 때 람쥐가 화자 된다고 한다.


'람쥐급'이에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마침 병원 선생님 중에 인원 변동도 있고, 수술 일정이 가득 잡혀 있던 터라 람쥐 중성화 수술이 며칠 미뤄지게 되었다. 사나운 람쥐 때문에 간호사분들이 힘들어하셔서, 람쥐는 병원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무겐님이 운영하시는 '무겐의 냥쉼터'로 잠시 이동하게 되었다. 예민해진 람쥐가 장소를 계속 이동하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에, 중성화 수술 후 바로 집으로 입양 올 예정이었는데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내심, 람쥐가 무겐님네 임보처에서 친구를 사귀어서 친구랑 동반 입양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싶었다. 혼자가 편한 고양이라면 나중에 아기 고양이를 둘째로 입양할 때 실패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둘째로 아기 고양이를 맞이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랜선 집사로 지내면서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친한 고양이와 동반 입양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사람도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는 성격이더라도 마음이 통하는 누군가는 빠르게 가까워지지 않던가. 조용한 성격의 사람도 마음을 터놓을 누군가는 필요하지 않던가. 사람인 내가 보호자로서 해줄 수 있는 일과 마음이 통하는 고양이 친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은 다를 것이란 생각에 동반 입양을 조심스럽게 무겐님께 상의드렸다.


람쥐를 일 년 넘게 지켜보신 무겐님이 람쥐를 나보다 잘 알고 계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람쥐는 무겐님 예상대로 쉼터의 새로운 환경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쉼터 고양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게 부담스러워 구석에 숨어서, 무겐님과 쉼터 친구들에게 화를 내던 람쥐. 그곳에서 지낸 짧은 기간에 람쥐가 새로운 친구와 마음이 통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성화 수술을 받고 집으로 오기 전에 쉼터에서 며칠 더 대기하는 동안에도 예민한 람쥐의 행동은 계속되었다. 몸부림치다가 수술 부위에서 피가 나기도 하고, 밥을 챙겨주시는 무겐님께 삐진 얼굴로 하악을 시전하고, 격리장을 가린 담요를 조금 걷어 두니 구석에 더욱 몸을 숨기고. 한마음으로 응원하던 팬분들 중에는 왕초보 집사가 과연 야생성이 강한 성묘인 '람쥐'를 다룰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나도 가죽 장갑을 구매한 마당이니, 어떤 마음에서 걱정해주신 것인지 이해가 갔다.


반려동물 입양 결정은 신중하게


앞뒤를 너무 따지다 보면, 실행의 타이밍을 놓친다. 하지만 앞뒤 분간 없이 뛰어들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놓은 덫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살면서 어디선가 들어 보았을 식상한 잔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어느 정도 신중한 것이 적당한 것인지' '실행 타이밍은 언제가 좋은지'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문제마다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많은 인생의 난관처럼 반려묘 입양 결정도 그러하다. 고민이 길어지면 묘연을 놓칠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나의 입양 결정은 충분히 신중했을까? 뒤돌아 생각해보면, 람쥐 입양을 결정하는 데 너무 즉흥적이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람쥐와 생활하면서, '야생성을 지닌 성묘 고양이를 입양한다는 것은 심사숙고가 필요한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의 선택을 자신 있게 다른 분에게 추천할 수 없는 마음인 것도 사실이고, 어렵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는 람쥐의 변화에 가슴 벅차게 감동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람쥐 덕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후 SNS에서 많은 고양이 입양 홍보를 접한다. 몇 주된 아깽이부터 람쥐보다 나이가 많은 성묘까지. 귀여운 사진과 단 몇 줄의 홍보 문구로는 사실 아이의 성격까지 파악하기 힘들다.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무겐님 같은 동물 보호 활동가나 입양을 위해 구조자가 개설한 SNS 계정을 팔로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무겐님의 인스타그램 계정(@mugen_s)에는 돌보시는 쉼터의 아이들과 길아이들 소식까지 짧게나마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구조자가 운영하는 입양 홍보 계정에는 입양 대상인 고양이의 다양한 모습들이 영상과 사진으로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그렇게 지켜본 아이의 작은 행동이 마음에 와닿을 수 있고, 그런 과정을 거쳐 입양을 결정하였다면 입양자가 더 단단한 마음으로 반려묘를 보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달콤 쌉싸름한 초보 집사의 일상

집냥이로 변신한, 한때 산냥이 '람쥐'

람쥐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새로 시작한 인스타그램 계정(@larmgee.bow)은 람쥐의 행동을 매일같이 관찰하고 일희일비하는 왕초보 집사의 일상과 하소연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물론 오랜 시간 람쥐를 지켜보던 무겐님과 람쥐의 팬분들이 초보 집사에게 주시는 꿀팁과 응원과 동병상련의 마음이 담긴 댓글도 가득하다.


동물 애호가도 아니었고, 동물 보호 활동가는 더더욱 아니었던, 그저 귀여운 고양이 영상이 좋았던 랜선 집사가 몇 번의 묘연 끝에 갑자기 다묘 집사가 되었다. 그것도 야생성이 강한 두 마리 성묘를 포함한 고양이 가족이다. 성묘 순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고민하는 초보 집사의 일상을, 영상으로 담아낼 수 없던 이야기까지 포함하여, 글로 풀어내 보고자 한다.


무겐님 말씀처럼 '한 아이의 평생을 책임져야 하는, 반려동물 입양이라는 중요한 선택'을 앞둔 누군가에게 '이런 어려움도 있구나'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될 수도 있구나'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 사는 행복감은 이런 느낌이구나'하는 사례로 작은 참고가 되면 좋겠다.


2021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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