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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이 할무니 Nov 03. 2021

엄마의 마음

람쥐와 보우네 - 다묘 가정의 시작, 람쥐 (2)

집사 혹은 엄마


유명한 냥이 유튜브 채널의 영상에 댓글로 달렸던 해외 구독자 간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반려인을 집사(Butler)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재미있다는 댓글이 달리자, 다른 구독자가 한국인은 집사라는 호칭 외에도 반려묘의 엄마, 아빠라는 호칭도 자주 쓴다고 답글을 달았다.


흠. 그러면 다른 나라에선 어떤 단어를 쓰는 것일까? Cat owner, cat person 아니면 독일처럼 can opener? HiNative 사이트에 영어권 사용자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남긴 cat slave라는 답변을 보면, 반려인의 애환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고양이) 집사'라는 호칭이 한국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고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기에, 나도 글이나 대화에서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어 나를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면? 나는 '집사'가 아닌 '엄마'라고 불리고 싶다. 고양이와 반려인의 관계가 고용주와 집사라는 비즈니스적 관계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분주했던 기다림의 시간


입양을 결정하고 람쥐가 집에 오기까지 약 보름의 시간이 걸렸다. 조심성 많은 람쥐를 구조하느라 며칠, 중성화 수술 일정이 늦춰지면서 다시 며칠, 방묘문 등 집의 준비상황과 도시 간 이동 일정을 잡다 보니 다시 며칠. 구조와 입양까지 수일 내로 완료될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며칠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엄마, 아빠는 예쁜 아기방을 꾸며 놓고 설렘의 시간을 보낸다. 의례 등장하는 클리셰려니 생각하며 별 감흥 없이 흘려보던 그 장면들. 그런데 이번엔 내가 그 클리셰의 주인공이지 않은가? 사람만 살던 집을 고양이와 함께 살 공간으로 바꾸던 그 시간은, 사람의 아기처럼 9달이 아닌 단 보름이었기에, 입양 당일까지 설렘과 함께 분주함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지금은 보람랜드, 냥이랜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거실은 고양이 용품으로 가득하다.  엄마의 성향이 그대로 담긴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사는 혹은 고양이에게 사람이 얹혀사는 거실인데, 사람만 살던 그때를 회상해봐도 여전히 복작복작 잔짐으로 가득했다.

 

복잡한 거실에 이젠 고양이 물건까지 들여야 한다. 원래 쓰던 책상과 원목 5단 선반은 부피가 커서 이동이 쉽지 않으니 거실에 그대로 둔 채로 사람의 짐을 빼고, 방석을 깔고 가리개 역할을 해 줄 천을 씌워서 고양이가 쉬거나 숨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를 준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고양이 화장실, 모래, 밥그릇 등이 속속 도착하면서 공간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꿔 본다.


'이 정도면 거실에 다 들어가겠는 걸' 안도하고 있을 때 도착한 캣폴. 아뿔싸. 캣폴은 예상보다 꽤나 크고 튼튼하다. 고양이가 점프해서 발판 위에 오르거나 날다람쥐처럼 기둥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감안하면, 당연히 크고 튼튼해야 하는 고양이 용품이 맞다. 구매평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뚱냥이가 사용해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상품을 구매한 터였으니, 초보 집사가 용케 구매는 잘했으나 튼튼한 캣폴의 크기에 대한 감이 없었던지라 택배 포장을 뜯고 놀라고 만다. 묵직한 나무 발판, 그 발판보다 더 크고 무거운 나무 숨숨집, 튼실한 기둥 덩어리들.


하. 이걸 다 거실에 구겨 넣을 수도 없고, 반품을 해야 하나 어쩌나.   


구조 당시 람쥐의 몸무게는 5kg. 남자 성묘이니 평범한 몸무게인데, 나는 5kg 성묘의 체구가 어느 정도 되는지에 대한 감도 없었다. 캣폴 기둥이 쓰러져 고양이든 집사든 다칠 뻔했다는 구매평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에게 아직 감이 없으니, 뚱냥이도 거뜬하다는 구매평을 믿어 보기로 한다.


거실 한편을 차지하던 사람의 책장을 치우기로 마음먹은 후 책을 다 빼내고, 그래도 여전히 무거운 책장을 조금씩 밀어서 다른 방으로 보낸다. 바닥에 빼놓은 책을 책장이 있는 방으로 옮겨서 다시 꽂는 작업까지 한 참을 하고 나니, 드디어 거실에 캣폴을 설치할 공간이 생겼다.


크고 튼튼한 캣폴은 설치 과정도 만만치 않다. 맞춤 상품은 아니지만, 집집마다 천장 높이가 제각각 일 테니 기다란 철막대 나사를 이용하여 최대한 조정이 가능하도록 상품이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장 높이에 맞추기 위해 몇 번을 조립했다 풀었다를 반복하고야 만다. 둘이서 하면 훨씬 더 수월한 작업이었겠지만 혼자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할 뿐. 책장을 옮기고 캣폴까지 설치하니 큰 난관 하나가 해결된 듯 괜히 혼자서 뿌듯하다.


다음으로 넘어야 할 관문은 캣폴만큼이나 힘겨운, 하지만 중문이 없는 우리 집에 꼭 필요한 방묘문 설치. 아파트 현관 도어록 조차 식은 죽 먹기로 열고 나가는 고양이 때문에 고민하는 집사님도 있지 않던가. 람쥐는 생 야생의 산냥이지만 신통한 능력이 있어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면? 혹은 내가 현관문을 열자 쏜 살 같이 달려 나와 열린 문 틈으로 도망친다면? 람쥐를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입양 때문에 본인의 영역을 한참 벗어나 다른 도시로 데려 왔으니 밖으로 나가면 적응도 쉽지 않을 것이고. 행복한 묘생을 위한 입양인데 악몽이 되어선 안 될 일이다.


구조 당시에도 꽤나 애를 태웠던 람쥐였기에 무겐님(인스타그램 @mugen_s)도 신신당부를 하셨다. '람쥐는 절대로 절대로 잃어버리시면 안 돼요. 이미 통덫에 대한 의심이 생겼기 때문에 누구도 다시 잡을 수 없을 겁니다.' 무겐님의 당부뿐만 아니라 랜선 집사 1년 차인 나는 가출 냥이에 대한 영상도 많이 접한 터라 방묘문, 방묘창은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랜선 집사 생활을 하는 동안 귀여운 영상에만 빠져 있었나 싶었는데 알게 모르게 상식이 쌓여가고 있었나 보다.   


방묘문 설치를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인친님들 소식에서도, 방묘문을 직접 만드시는 금손들이 계시다. 경첩과 바퀴와 네트망 등 부품을 일일이 구입하고 조립하여 수제 방묘문을 만드는 실력은 맥가이버가 따로 없다. 물론 귀차니스트는 절대 시도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직감한 나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돈을 쓰기로 한다.


방묘문은 꽤나 비싸다. 직구를 한다면 몇만 원을 절약할 수는 있겠으나, 람쥐가 수일 내로 올 거라 예상하다가 늦어진 경우라서 긴 배송 기간을 기다릴 수 없어 국내 구매를 택했다. 참고로, 람쥐와 달리 입양까지 보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니 직구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수제 방묘문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나는 방묘문의 조립과 설치에도 진땀이 난다. 그 무거운 철문을 붙였다 떼었다를 여러 번 반복하고, 다행히 반복을 통해 점점 요령이 생기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만족할 만큼 빈틈없이 방묘문을 설치한다.


현관에 방묘문을 설치하니 이번엔 창고방이 걱정이다. 방 하나를 창고방으로 사용 중인데 원래 쟁여 놓은 짐, 거실에서 뺀 짐과 책장, 추가로 구매한 각종 고양이 물품이 빈 공간을 비집고 쌓이고 쌓이다 보니 무질서한 미로가 따로 없다.


람쥐가 들어갔다가 물건이라도 떨어지는 날엔 다치지 않을까, 그리고 람쥐가 그 안에 숨어 있겠다 마음먹으면 찾지도 못 할 텐데.


현관에 이미 방묘문을 설치해본 뒤라서 하나 더 설치하는 것쯤 일도 아닐 테고, 창고방을 람쥐한테 개방하지 않을 계획이라면 방묘문을 더 설치해야 한다. 환기를 시킬 때 거실 큰 창문과 창고방 방문, 창문을 열어서 집안 전체의 공기가 순환되도록 하기 때문에 창고방 방문을 내내 닫고 살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비용 부담을 무릅쓰고 방묘문을 하나 더 주문한다.


그런데 일도 아닐 줄 알았던 두 번째 방묘문 설치는 사실 또 다른 난관이었다. 현관 문의 크기나 공간과 창고방 방문의 크기가 다르니 결국 이번에도 한 번에 방묘문을 설치하지 못하고 무거운 방묘문을 붙였다 떼었다를 여러 번 반복한다.


방묘문이 끝이 아니다. 이젠 방묘창을 달아야 한다. 열린 창문의 방충망을 부수고 탈출한 고양이는 또 얼마나 많은지. 동물농장에서도 블로그에서도 물론 인스타그램에서도 그런 경험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방묘문을 구매하느라 지출이 컸기에 이번엔 네트망과 케이블 타이를 구매해서 창문 별 크기에 맞추어 수제 방묘창을 만들어 본다.


방묘창을 만드는 것까지는 쉬운데 고정시키는 방법이 고민이다. 실리콘, 글루건, 네트망 고정 캡 등의 방법이 있는데, 처음엔 실리콘으로 네트망을 방충망 창에 고정하려고 시도하다가 네트망과 창문이 여전히 들뜨는 것을 확인하고 하얀 실리콘이 굳기 전에 다 닦아내는 바보짓도 해본다. 이럴 땐 나도 진정 맥가이버이고 싶다.


결국 네트망 고정 캡을 사서 고정을 하였는데, 이 또한 단점이 있다. 처음 부착 시에는 단단하게 고정이 되지만, 네트망 너머 창문을 수시로 열고 닫으면서 네트망을 살짝살짝 건드리게 되므로, 몇 달이 지나면 고정 캡 부착이 헐거워진다. 고양이가 이 사실을 눈치채고 탈출이라도 하는 날엔? 결국 필요한 건 엄마의 세심함이다. 방묘창이 헐거워지지 않게, 캣폴이 무너지지 않게, 엄마의 정성으로 수시로 방묘창의 고정 캡을 단단하게 고정하고 캣폴의 나사를 조여야 한다.

  

작은 집에 사는 엄마의 선택, 캣티오


야생성이 강한 성묘를 입양하는 다른 집사님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만 지내야 하는 람쥐가 얼마나 답답해할까 고민이 되었다. 입양일까지 무겐님과 간간이 통화를 하면서 그런 나의 마음을 읽으셨는지, '여름엔 더위, 장마, 벌레와 싸워야 하며, 겨울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 하고, 무서운 질병에도 쉽게 노출되며, 동물 학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길아이들의 삶'을 이야기해주셨다. 속된 말로 '길냥이에게 입양은 로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한다.


내가 애청하는 수의사 선생님의 유튜브에서는 입양으로 인해 이동의 자유는 제한될지언정 질병, 두려움, 배고픔 등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므로 길냥이 입양을 찬성하신다는 학구적인 설명을 해주셔서 귀가 솔깃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집이라서 미안하고 조금이라도 공간을 넓혀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다. 지금 사는 집은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철 구조물 형태의 발코니가 있다. 절반 정도는 실외기가 차지하고 있으니 나머지 절반을 활용하면 람쥐가 신선한 공기도 쐬고 바깥 구경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무 판 같은 것을 바닥에 깔고 그물망으로 둘러쳐야 하나? 방충망도 뚫고 나가는 마당에 그물망이 튼튼하지 않으면 자르고 가출할 텐데, 어설프면 안 될 일이다.


결국 다시 무겐님께 우리 집에 이런 공간이 있는데 비슷하게라도 활용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지 문의드렸다. 다행히 무겐님이 그런 사례를 찾아서 보내주셨는데, 그 이름은 캣티오(catio = cat + patio). 창문 크기에 맞추어 제작하는 고양이를 위한 탁 트인 휴식 공간. 집을 연장한 듯, 집 안에 있으면서 바깥으로 연결되는 공간이다.


안방 창문이 작기 때문에 그 크기로 제작했다면 좀 더 저렴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실이 람쥐의 주요 활동 공간이 될 텐데, 람쥐가 방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안방의 캣티오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리고 캣티오를 설치하려면 설치자가 집안에 들어와야 하고, 창문 크기의 캣티오 설치 부품을 집안 내부로 들이느라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어야 하는데, 람쥐 입양 후에 설치하기엔 람쥐를 잃어버릴까 우려가 되었다. 그러니 람쥐의 중성화 수술이 미뤄지면서 입양까지 단 며칠만 여유가 생긴 상황이라 마냥 늦어져서도 안된다.


거실의 큰 창문 크기로 제작하는 캣티오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나중에라도 설치할 요량이라면 람쥐가 입양 오기 전에 서둘러 설치를 마치는 편이 낫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지만 제작을 서둘러야 하므로, 거실 큰 창문에 매달려 가로, 세로, 높이를 줄자로 재고(이때 정확히 하려면 테이프를 이용해서 줄자를 창틀에 밀착하도록 부착해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크기를 재야 오차가 줄어든다), 캣티오를 제작하시는 사장님(@bisangkoo)과 상담을 한 후 다음날 오전에 제작을 결정하였다.


캣티오 설치 후로 입양일을 정하면서 람쥐는 무게님네 쉼터에서 며칠 더 머무르게 되고, 결국 엄마에게 오기까지 보름의 시간이 걸렸다.


평소에 소소하고 쓸데없는 소비를 자주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편인데, 람쥐 덕에 캣티오 주문 제작이라는 제법 간 큰 소비를 하고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잘한 일이겠지? 자가도 아닌데 괜한 짓일까?

2021년 5월 22일 - 캣티오에 나가 엄마가 재배한 캣그라스 귀리를 먹으며 바깥 구경을 하는 람쥐


반려묘 집사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마음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는 말이 남의 일이 아니다. 그렇게 '람쥐의 사료와 병원비는 책임질 수 있다'에서 시작해서 캣폴, 방묘문, 캣티오까지. 야금야금 소비가 늘어가고 있다.

2021년 10월 11일 - 엄마표 캣타워에서 휴식 중인 람쥐

참고로, 람쥐와 보우네 식구들이 아직도 잘 사용 중인 '엄마표 캣타워'는 최애 잠자리이자 아깽이들 놀이터로써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얄팍한 엄마의 주머니 사정에도 좋고 여느 캣타워보다 튼튼하고 활용도가 좋아, 람쥐와 보우네 인스타그램(@larmgee.bow)을 지켜보신 인친님들이 가끔 구매처를 물어보시기도 한다. 원래 사용하던 가구인 원목 5단 선반에다가 높이나 면적이 가장 유사한 3단 선반을 추가로 구매해서 연결하고 푹신한 방석과 알록달록한 장식을 더하니, 튼튼하고 귀여운 엄마표 캣타워가 완성되었다.


처음엔 캣타워도 구매할 요량으로 폭풍 검색을 하면서 캣폴만큼이나 흔들림 때문에 고민하는 수많은 제품 후기를 접했다. 자연스럽게 뚱냥이도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캣타워를 찾다 보니, 기존에 사용하던 5단 선반과 유사한 모양의 캣타워를 찾게 되었다. 이걸 구매할 바에야 기존 가구를 활용해서 엄마표 캣타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생겼다. 결과는 대만족.


만일 사용 중인 책장이나 가구가 고양이가 점프해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거나 붙박이 가구라면, 나처럼 가구를 이동하는 수고로움 없이 발판을 몇 개 부착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수직 공간인 캣로드가 탄생한다. 고양이를 위해 꼭 모든 걸 새로 구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나와 같은 초보 집사에게 참고가 되면 좋겠다.


'가을'이가 될뻔했던 '람쥐'


사람이 사는 공간을 고양이와 함께 사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느라 분주했던 나는 사실 그전에 한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람쥐' 이름을 '가을'이로 바꾸는 일이었다. 귀여운 람쥐 외모와 뒹굴 애교에 반해서 영상을 접한 당일에 입양을 결정한 나에게 '람쥐'라는 이름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눈과 낙엽이 쌓인 겨울산에서 뒹굴던 람쥐, 그 낙엽과 비슷한 람쥐의 털 색상이 인상에 남아 '가을'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입양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미련 없이 가을이로 개명했을 터였다. 그런데 입양이 하루 이틀 늦어지면서 결국 보름의 시간을 보내게 되고, 람쥐를 맞이 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틈틈이 그간의 람쥐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아, 이래서 람쥐라고 하셨구나' 싶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에 밥셔틀을 나오신 무겐님을 만나자 신이 나서, 통통통 혹은 깡총깡총 달려 나가는 람쥐의 동그란 뒷모습.


가을이라는 이름을 포기한 결정적 계기는 무겐님네 쉼터 격리장에서 찌그러져 있던 람쥐가 날다람쥐처럼 튀어 오르던 영상이었다. 람쥐라는 이름과 찰떡이라는 감탄을 쏟아내는 인친님들의 댓글을 보면서, 나도 저절로 수긍이 되었다.


격리장 안의 구석에 숨어 있는 뾰로통한 람쥐의 표정에, 무겐님께 날리는 람쥐의 하악에, 화는 나지만 밥을 보고 저절로 군침을 삼키는 람쥐의 모습에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는 걸 지켜보면서, 예상보다 람쥐가 인기가 많구나 싶었다. 이미 이렇게 팬이 많고 람쥐라는 이름도 나름 특색이 있는데 굳이 새 이름으로 바꿔야 하나 스스로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가을이가 아닌 람쥐로 남기로 (엄마 맘대로ㅎ) 정하자, 아직 인스타그램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당연히 아이디 변경은 불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디도 변경이 가능하다고 DM으로 친절하게 알려주신 인친님 덕에 람쥐 이름에 맞게 인스타그램 계정 명도 Larmgee(한글 이름 '람쥐'의 음차, @larmgee.bow)로 변경하였다.


람쥐가 쓰던 겨울집 앞 끈끈이 테러


귀여운 뒹굴뒹굴 람쥐. 그런 람쥐를 아들내미로 곁에 두고 이뻐해주고 싶은 바람으로 입양을 결정한 나.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이 동기가 되어 람쥐의 입양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무겐님과 무겐님을 팔로우하는 인친님들 중에서도 본인의 시간과 돈을 들여서 여러 길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아픈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고, 중성화 수술 후 방사(TNR)하거나, 심각하게 아픈 아이들은 구조해서 쉼터나 집에서 돌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내가 반려하는 아이들을 매일 같이 돌보는 일을 직접 경험해보니 매우 부지런해야 하는 일임을 새삼 느낀다. 하물며 쉼터나 길에서 생활하는 많은 아이들을 돌보시는 분들이 감내해야 하는 희생은 감히 상상이 안된다.


람쥐가 입양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람쥐가 사용하던 겨울집 앞에 쥐잡이용 끈끈이가 발견되었다. 주택가에서 끈끈이가 발견되었더라도, 굳이 그렇게 생명을 해치면서까지 고양이를 배척해야 하나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동물농장에서도 보았다. 고양이가 싫어 끈끈이와 가시 철망을 담장에 설치한 집주인과 그 끈끈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어린 고양이.


그런데 람쥐 겨울집 앞의 끈끈이는 더욱 의아스럽다. 굳이 끈끈이를 챙겨 들고, 인적이 드문 산길에 숨겨 놓은 고양이의 겨울집을 찾아내서, 쥐잡이용 끈끈이를 두고 가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 우리 이웃에 있는 것이다.


람쥐가 쓰던 겨울집이다 보니 나도 다른 많은 인친님들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구조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어쩌면 람쥐는 끈끈이 테러에 한참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온 정성을 다해 생명을 살리느라 애쓰고, 다른 한편에서는 생명을 해치느라 수고롭다. 무엇 때문에 다른 한 편의 그들은 애써 생명을 해치고 있는 것일까?


람쥐길


람쥐가 무겐님의 밥셔틀을 기다리던 산길을 '람쥐길'로 불러 주시는 인친님들이 계신다.. 람쥐의 좋은 기운을 받아 뉴페이스 고양이도 입양 갈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한 영역에 살던 고양이가 이동을 하게 되면 그 영역으로 새로운 고양이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다. 람쥐가 나타나기 전에 산에서 지내던 깜희 대장, 초바비, 얀이가 모두 입양을 가면서, 캣초딩 람쥐가 그 산에 정착을 하였듯이, 람쥐가 입양 오면서 주인 잃은 람쥐길에, 무겐님 말마따나 어디에 '고양이 나무'라도 있는 것인지, 새로운 고양이들이 들어오고 사라진다.


인적 드문 산길에 조차 끈끈이 테러를 하더라도, 산속에 버려진 유기묘를 더한 폭력으로 다시 상처를 주거나 생명을 앗아가는 악인이 있더라도, 작고 귀한 우리의 이웃은 ‘고양이 나무'에 새 생명의 싹을 틔울 것이다.


무럭무럭 자란 어린 생명 중 독립한 아이는 한창 아름다운 단풍을 배경 삼아 뛰어놀고, 겨울의 추위도 씩씩하게 이겨낼 것이며, 다시 파릇파릇한 새봄을 맞이할 것이다. 더러는 무겐님과 같은 동물 보호 활동가분들이 쏟는 길아빠, 길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그 아이도 람쥐처럼 건강하게 길생활을 버텨낼 것이다. 생명을 지켜내고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는 분들이 있는 한.


#함께살아요

#길냥이가이렇게사랑스럽습니다

#사지말고입양하세요


2021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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