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이 읊조리는 말로, 이 소설에선 모두가 감시당한다.
조지오웰의 소설에선 모두가 감시당한다. 모두가 나 자신(혹은 개인)에게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의 삶의 방식이 똑같아야 하고, 개인은 비슷비슷해야만 한다.
하지만 모두의 삶이 똑같을 순 없다. 왜냐면 우리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 다름이라는 요소는 타자를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전까지의 역사에서는 타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생각해보자. 조선시대의 공동체생활에서 농번기에 누군가가 빠지는 것을 생각할 수나 있었을까?
근대를 보는 가장 핵심적인 시선은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개인적인 나"이다.
캔버스라는 감옥
근대의 그림들을 보면 감옥을 그린 그림들이 굉장히 많다. 호가스, 피라네시, 고갱, 세잔, 마티스 등등 쟁쟁한
화가들은 감옥이라는 요소를 생각하거나 감옥을 그려내었다.
왜 화가들 스스로 감옥이라는 매개체에서 흥미를 느낄 수 밖에 없었을까?
당시 근대 초만 하더라도 감옥이라는 공간은 매우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개인을 억압하는 감옥한다는 현대적인 시선과 달리 근대에서 감옥이라는 상징은, 이전의 단순한 처벌이 아닌 교화를 통한 인간이성의 존중이었다.
또한 당시 근대에서는 화가가 그릴, 소재의 자유라는 개념이 들어왔다. 고대,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그림의 소재라는 것은 신화화, 역사화 혹은 풍경화 등의 사실과 다른 것들을 그리는 일 뿐이었다.
이런 화가의 상상력의 제약은 근대에 들어오고 개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조금씩 나오게 된다.
감옥을 그리다
고흐의 생애 내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남은 것은 고생과 가난이었다.
그런 고통을 바라보는 동생 테오도 그런 형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테오의 권고를 받아 생레미의 한 요양원에 가게 된다.
그러나 근대의 요양원은 매우 좋지 않은 시설, 부족한 식사, 이동의 부자유등으로 악평이 자자했다.
고흐는 그런 생활 속에서 불만을 품으면서도 여러 걸작들을 남겼는데, 그 중 흥미로운 그림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 'The Prison Courtyard'(감옥의 뜰), 캔버스에 유채, 1890,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그림을 보면 죄수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감옥의 제자리만을 돌고 있다. 세 간수는 그들을 감시하고 있고,
그림의 배경의 세 벽면은 높디 높은 벽으로 "이 감옥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죄수들의 표정을 보면 모두가 희망이 없어하는 느낌이다. 절망, 피로, 무표정한 얼굴, 축 늘어진 팔,
힘들게 움직이는 다리, 말라버린 다리와 팔뚝들은 죄수들의 고통을 더욱 잘 형상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모자를 쓰지 않고 응시하는 듯한 사람은 바로 고흐이다. 다른 죄수들이 쓴 모자를 거부하는 모습을 통해서 화가의단호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희망이 없고 감시당하는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희망이 존재하는 부분은 바로 두 마리의 나비이다.
매우 가늘게 채색되어있어 보이지 않는 두 마리의 나비는 화가인 고흐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감옥에 희망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고흐가 테오에게 하는 편지에서 '희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느님. 벽을 통해 스며드는 빛은 고통 속에서 발버둥치는 제가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는 절규입니다. 온 세상을 뒤흔드는 절규이지만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저의 울부짖음은 더욱더 하늘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울부짖는 영혼이 교도소의 안마당과 벽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저의 절규에 답하여 오직 밝은 빛만이 비추어줍니다.
나의 사랑하는 동생, 테오야.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너에게 항상 말해왔지만, 사실 너는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영원한 동반자란다. 내가 항상 너의 의견과 생각을 나의 그림에 반영했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야. 아무튼 나는 그림에 내 운명을 걸었으며, 이제 그 반은 성취한 느낌이란다. 나머지 반은 어쩌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같이 인정 많고 사랑 많은 사람은 나에게는 없다. 나는 항상 너와 같이할 것이며, 결국 내 그림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줄 것이야.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 (반 고흐, 영혼의편지, 예담출판사, 신성림 편역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매우 쓸쓸한 느낌뿐이다. 어쩌면 그에게 희망이란 가혹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으리라. 그의 작품과 편지를 보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자신의 그림이 알려질 것임을 확신하고, 모든 것을 그림에 쏟았던 점. 그 점이 바로 사람들을 아직도 찬탄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앞서 말했다시피 감옥이라는 소재는 많은 화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어 왔습니다. 여러 화가들은 감옥이라는 소재에 대해 자기만의 화풍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피라네시, 상상의 감옥, 1750,
피라네시가 그린 상상의 감옥은 매우 특이하다. 이 공간은 척 보기에도 건설이 가능할 것만 같은 공간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그러나 이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리를 받치는 기둥은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해 다리 혼자 붕 떠있는 모습을 취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현불가능한 감옥의 모습은 그림안에서는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