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퀸(Queen) 노래를 나이 육십이 넘어서 듣게 되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이다.
퀸 노래 중에 내가 들어본 노래라고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하나였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이다. 젊었을 때 언제 어디에서인지 잠깐 들었는데 그게 귀에 꽂혀 내내 떠나질 않았다.
그러던 차에 딸애가 그 노래를 찾아주었다. 요즘 애들은 정보 검색에 도가 터서 약간의 노래 소절만 가지고도 노래를 찾을 수 있다.
딸이 내친김에 제대로 듣자며 핫트랙스에서 음반도 사 왔다. 그때부터 꽂혀서 퀸 노래만 듣는다.
내 휴대폰 벨소리도 퀸의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다. 이 노래는 정말 사람이 만든 노래 맞아?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딸이 퀸을 찾아줘서 마르고 닳도록 노래를 듣는다. 듣는 것만으로 만족이 안 돼서 퀸 노래 가사와 해석을 받아 적어 보고, 따라 부르고 한 게 벌써 1년이 됐다. 그리하여 이제는 퀸 하면 모르는 노래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자신 있게 따라 부르는 노래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썸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다.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년생. 나에게는 열 살 위 오빠다. 지금까지 살아 있었으면 콘서트에 가서 얼굴 한 번 봤을 텐데. 요즘은 100세 시대가 아닌가. 사람 성질도 급하게 빨리도 갔다.
이 양반이 동성애자이고 마약에 빠져서 살기도 했다지만, 그거야 개인 사생활이고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프레디가 살인이나 사회에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게 아니면 그가 작사한 노랫말마따나 ‘난 노래하는 가수(I'm just a singer with a song, <인 마이 디펜스(In My Defence)>)’일 뿐이다.
프레디가 사생활 관련해서 사랑받은 만큼 욕도 많이 먹었다고 하니 안타깝다. 그냥 가수 개인의 사생활로 봐주고 그의 노래를 사랑하면 안 되는 건가?
엘튼 존(Elton John)이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The Freddie Mercury Tribute Concert)》에서 프레디가 영국인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본 적 있다. 추모 콘서트에 참여했던 가수 중에 엘튼 존과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도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 알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확실히 프레디만큼 시달리지는 않은 것 같다.
잘은 몰라도 프레디의 음악 세계가 다양해지는 데 토대가 된 것은 인도에서 영국으로, 아프리카로 다니면서 받은 여러 문화 영향과 그의 사생활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겠는가.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프레디의 노래는 열 곡이든 스무 곡이든 하루 종일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노래를 맛깔나게 부른다.
외국 가수들 중에 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노래를 들어 봐도 몇 곡 들으면 금세 싫증이 난다. 그런데 프레디의 노래는 그런 일이 없다.
<아이 워즈 본 투 러브(I Was Born to Love You)>를 들으면 파아란 하늘 저 높이 날아가는 행글라이더가 떠오른다. <위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은 당장이라도 경기장에 달려가서 응원을 해야 할 것 같고. 슬플 때는 지독히 슬프면서, 신나고, 무엇보다 장르도 다양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져든다.
딸애는 노래 하나하나가 ‘뮤지컬’ 같다는 느낌이 든단다.
이렇게 좋은 노래를 쓰고 부른 건 프레디 본인이 노래에 흠뻑 빠져서 즐겼기 때문이리라.
그야말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다. 그것이 같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부럽다. 본인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걸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이니까.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건 축복이다.
죽기 바로 전까지 노래를 만들고 녹음하고, 또 부르고 병이 깊어져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마른 모습으로 노래하는 프레디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측은하다기보다는 아름답게 느껴진다.
영국인들은 참 좋았겠다. 프레디가 영국으로 건너오는 바람에 늘 가까이 언제든 볼 수 있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