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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Mar 26. 2018

엄마, 아빠!
좋아하는 것들은 잠시 내려놓으세요.

[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삶의 변화 받아들이기

한 방송에서 유재석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요즘이네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참 많습니다. 그림 그리기, 노래 녹음, 기타 연주, 바이올린 연습, 글쓰기,  독서, 영어공부, 영화보기 등등 참 많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제 책상에서 이루어집니다. 고유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죠. 나라는 실존이 책상이라는 공간과 만나 나의 정체성을 생성합니다. 아주 창조적인 곳이죠. 그런데 이제 이런 것들을 접어두고, 돌아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고 계신가요? 


불편함

기타를 연주할 수 없다. 녀석의 차지가 되어 버린다. ⓒ문선종

아이들이 점점 크다 보니 어느덧 제 삶의 영역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귀여운 두 녀석은 가끔 저에게 신선한 스트레스를 선물하죠. 저는 정리정돈을 좋아합니다. 워낙 깨끗한 부모님 아래에 자라 어질러진 걸 보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늘 정리하죠. 신혼 때 이것 때문에 아내와 여러 번 다투었습니다. 지금은 서로 양보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제가 딱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부디 제 책상만은 지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나를 존중해주었고, 저만의 작은 공간에서 평화로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군대나 대학생활, 단체생활을 하면서도 그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죠.

이건 귀여운 수준이다. ⓒ문선종

그런데 제 삶에 찾아온 두 딸은 처참히 저의 공간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절망적이었죠. 늘 정리하고, 돌아서면 어질러지는 악순환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책상을 정리하면 아이들은 파괴하죠. 한 때 저와 풍류를 즐기던 기타는 현재 목이 날아가 명을 다했습니다. 수리를 맡겼지만 폐기처분 진단을 받았죠. 그래서 한동안 책상이 있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금지 조치를 했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에 제 삶의 영역은 추풍낙엽처럼 무너졌고, 예전의 모습을 만들기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적응

책상에 앉아 뭘 해야 하는데 그럴 때면 녀석은 자기도 앉아야 한다며 의자를 가져와 아빠의 책상을 차지합니다. 자구책으로 놀이방에 책상을 마련해줬지만 무섭다는 핑계로 아빠 옆에 있어야 한다며 제 책상 한편을 끝내 차지하고 맙니다. 그래서 선 긋고 니 땅 내 땅 싸우는 짝꿍처럼 쪼잔한 아빠가 되기도 했습니다. 불편하지만 그렇게 책상 위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제의 방과 아이들의 놀이방 두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놀이방의 물건들이 제 방으로 오게 되고, 제 방의 물건들이 놀이방에 가있습니다.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급하게 사용해야 할 문구류들이 장난감 서랍에 꼭꼭 숨어 있습니다. 저도 놀이방에 가서 누워 책을 보거나 악기를 연주합니다. 


내려놓음


쪼잔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문선종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이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걸 못한다고 탓하기도 했습니다. 제 삶의 변화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죠. 저는 두꺼운 옷을 입고, 혼자 땀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포항지진피혜로 3월 초 이사를 하면서 제 고유의 공간은 없어졌습니다. 책상은 공동의 공간이 되었고, 아이들의 색칠공부나 책, 아내가 보는 책과 문제집, 제 업무 서류와 책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한 공간에서 살을 부딪히며 서로의 존재를 존중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족의 발달단계에 따라 서로의 공간이 분리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오히려 녀석들이 자신의 고유의 공간을 창조하고, 제가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요. 


개그맨 유재석의 말처럼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책임과 과업이 따르기에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꿈을 양보할 순 없죠. 포기라는 말보다는 내려놓는다는 말이 더 미래지향적으로 보입니다. 잠시 내려놓는 것일 뿐, 우리는 언젠가 다시 내려놓은 펜을 들 수도 있고, 악기를 다시 잡을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험기간 동안 공부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하나의 큰 산을 넘고 있는 것이죠. 대한민국 모든 엄마와 아빠들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입사해 포항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며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된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현장에서 녹여내는 지역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유쾌한 모험을 기대해 볼 만한 아빠 유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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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문선종(moonsj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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