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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Apr 03. 2019

딸에게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아내의 어린 시절을 만나다.

바보는 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 또한 2013년 첫째 딸이 태어나면서 입덕 했는데 둘째 딸이 태어나고 나서 더 심해졌다. 아내는 사랑이 식었다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래서 아내보다 아이들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볼까 한다. 나는 왜 딸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가?


◇나를 닮은 첫째, 아내를 닮은 둘째

아내의 어린 시절과 둘째 지온이, 피는 못 속인다. ⓒ문선종

진화론자들은 자신과 더 닮은 자식에게 물질과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자신과 더 닮은 자녀가 자신의 DNA를 확실히 물려받았다는 확신 때문에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이 연구는 엉터리다. 첫째 서율이는 우리 집 식구들을 닮았다. 어느 구석에서도 아내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반면에 둘째 지온이는 아내가 다시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닮았다. 서율이가 나와 더 닮았다고 해서 더 많은 사랑을 주거나 물질적으로 더 좋은 것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우리의 어린 시절과 마주하는 것이다.


누구나 어릴 적 해결하지 못한 비합리적인 신념과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 나와 똑 닮은 서율이를 보면 어릴 적 나를 만나는 기분이다. 서율이에게 나타나는 기제(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경험한다. 태어나고 매 순간 존재하며 자라온 지금의 절대적인 나 자신이 있지만 겹겹이 축적된 기억과 DNA에 새겨진 감정들은 상대적인 파편으로 존재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과 마주하는 것이다.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성찰과 치유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 둘째를  사랑하는 것은 아내의 어린 시절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시공간을 초월해 상대적인 시간 속에 서로를 알아간다.


◇기다려... 곧 아내바보가 될 께

글을 쓰다 보니 시공간을 초월한 딸바보의 사랑을 그린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올랐다. ⓒwarnerbros

아이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런 맥락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심오하고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윗 세대들의 집단 무의식과 인류의 거대한 역사가 우리의 머리 위로 반짝이는 거대한 우주처럼 한 아이의 가슴과 뇌 속에 담겨있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거대한 우주를 담은 아이를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에 얽힌 맥락과 기제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아내와 결혼하고 집에서 살면서 서로의 양식들이 충돌해 많이 다퉜다. 크고 작은 부부싸움을 경험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경향성과 기제들을 관찰해본다면 지금의 배우자를 잘 알 수 있다. 아직도 어디선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는 어린 시절 우리의 모습들을 안아줄 때 우리는 보다 완전해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딸바보에서 아내바보가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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