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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Dec 17. 2019

아이에게 하는 뽀뽀도 ‘결재’가 필요합니다.

‘자기결정권’이라는 감수성

최근 EBS <보니하니> 프로그램에 대한 이슈가 뜨겁다. 두 딸의 아빠로서 이 번 이슈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자기결정권’이라는 감수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BS <보니하니사건의 전말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지난 10일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 중 여성 진행자 ‘버스터즈’ 채연이 남성 출연자 ‘당당맨’ 최영수의 팔을 잡자 최영수가 갑자기 뒤돌아 채연을 때리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노출됐다. 다른 출연자에 가려 명확하게 폭행이라 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누리꾼들은 ‘퍽 하는 소리가 났고 정황상 폭력’이라며 이를 ‘청소년 폭행’이라 정의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과거 ‘먹니’로 활동하는 개그맨 박동근의 성희롱과 욕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글이 폭주했고, 국민청원까지 번져 15일 기준 7만 8천 명이 ‘청소년 방송인을 향한 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에 동의했다. 이런 사태로 팽수가 그토록 부르던 EBS 김명중 사장까지 나서 사과했고, 긴급회의를 소집해 제작진을 전면 교체, 국장과 부장의 보직을 해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갈수록 높아지는 감수성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하는 A집단과 ‘이 사건은 청소년에 대한 폭력이야!’라는 B집단으로 나누고, ‘B집단은 A집단에 비해 감수성이 높을 것이다’는 가설을 세워본다. 지금까지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그런 폭력적인 상황을 암묵적으로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감수성이 높은 B집단이 그걸 보고 가만히 넘어갈 리가 없다.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당사자들은 문제가 없다지만 그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런 폭력은 만연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당사자 간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기에 그들의 하위문화에 흘러들어 모방 혹은 폭력에 대한 허용적인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기결정권

첫째의 허락을 받고, 뽀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둘째는 거절했다. ⓒ문선종

이 미묘한 감수성을 ‘뽀뽀’로 설명해본다. 두 딸의 아빠로서 아이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뽀뽀를 할 때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뽀뽀해도 될까?” 자신의 몸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는 자기 자신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가 귀엽다고 함부로 만지거나 뽀뽀할 수 있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가족을 포함한 외부사람들이 아이에게 신체적으로 접촉할 때 이렇게 외쳐야 한다. “귀엽다는 표현으로 아이를 만지고 싶으면 아이에게 허락을 받으세요!” 라고 말이다. 아이는 부모의 이런 모습을 통해 “아! 이런 게 자기결정권이구나!”라고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많이 컸네. 고추 한 번 따먹어보자”며 나의 음경을 만진 동네 사람들을 생각하면 36세인 지금도 이불 킥을 날린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음경을 허락한 적이 없다. 2014년 판례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징역 2년 6개월 감이다.   

   

<보니하니> 출연자들에게 있어서 ‘자기결정권’이 있을까? 사건에 대한 입장표명에서 제작자와 소속사에게 ‘문제없음’을 강요받지는 않았을까?라는 우려도 있다. 과거 채연의 목을 세게 잡는 모습, 채연의 얼굴에 물을 퍼붓는 장면 등 폭력적인 장면이 누리꾼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런 현장의 분위기들이 퇴적돼 여성 출연자의 ‘자기결정권’이 무력화된 것은 아닐까? 그것이 무력화되면서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작금의 사태를 만들었을 것이다.     


인권미생에서 완생으로 가려면...

최근 ‘성교육’이 ‘양성평등’과 같은 ‘젠더 감수성’ 교육으로 이어지면서 가끔 나보다 상당히 높은 인식을 가진 아동들을 만나기도 한다. 34개월 둘째 딸이 귀여워 엉덩이를 꼬집었다가 “아빠, 내 엉덩이 만지면 어떡해?”라는 소리에 첫째 딸이 가세해 비난의 공세를 받은 적이 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며 진심 어린 사과로 마무리했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만들어지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안다면 <보니하니> 사건은 당사자들의 ‘허물없음’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EBS <보니하니> 제작진이 공식 인스타에 올린 사과문에서 ‘출연자들끼리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심한 장난으로 이어졌다’는 글 속에서 어렴풋이 출연자들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객체라는 ‘을(乙)’이기에 ‘자기결정권’은 자연스럽게 갑(甲제)인 제작진과 소속사의 소유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영화 <미스 백>의 이지원 감독은 아역배우 김시아에게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영화를 촬영했다. 아동·청소년 출연자의 경우 신체적·정서적 폭력에 대한 치유와 자기결정권의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방송사의 가이드라인과 이들을 보호할 촘촘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부모들은 이번 사건을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야 한다. 한 인격체에 대한 동등함과 주체성의 인정이야말로 ‘인권’이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부터 아이에게 “뽀뽀해도 될까?”라며 결재를 받아보자. 


※육아 전문 No.1 언론사 베이비뉴스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빠칼럼니스트 문선종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를 두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한다. moons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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