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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소소 Feb 20. 2024

어느 날, 미래의 나를 만난 일에 대하여.

미래의 나를 만난일 ep.1 보러가기

미래의 나를 만난일 ep.2 보러가기

미래의 나를 만난일 ep.3 보러가기


일러스트로 짧은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많이 오셔서 구경하고 가세요! 

긴 글을 읽어 주시는 브런치 독자 분들이시라면 아래 글을 읽어보시고

차례로 감상해 주시면 더욱 와 닿으실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





어린 나는 분명 만났다고 생각했다. 


아니, 진짜 만났다.

버스 정류장이었다.

그 사람은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작고 예쁜 크로스백을 메고 있었다.


엉뚱한 공상가였던 작은 나는 그 사람을 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사람은 아가씨가 된 미래의 나였고,

우리는 잠시 시공을 초월해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른이 되는 동안 어땠나요?

-어른이 된 나는 또 어떤가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겠죠?

-아니 그보다 이 힘든 일은 도대체 어떻게 끝이 났어요?

짧은 순간 그 작은 머릿속에 어마어마한 질문 빅뱅이 일어났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실제로 물어볼 수도 없을뿐더러,

낯선 아가씨는 답 또한 도통 알 수 없는 황당할 노릇이겠지.

알고 있지만,


어떤가,

한번 생각이나 해보는 것이다.


나만의 버스정류장 놀이.


그 후로도 가끔 '이 사람이군!' 하는 느낌이 오는 사람을 만날 때면

혼자서 이런저런 궁금한 일들을 추려놓고 대답을 듣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다음에 만나면 이것만은 꼭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한 질문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고, 소거되는 동안  내 세상은 점차 재미없고, 고루하기 짝이 없는 어른의 세상이 되어갔다.


질문과 공상의 시절은 가고,

호기심도 가능성도 없이 꽉 닫힌 결정과 확신의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그래도 가아끔, 버스 정류장에 서면 주변을 한번 살펴보곤 한다.

내 눈을 또렷이 응시하는 어린 소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고...

과거의 나를 찾아 또 한 번 시공을 초월하는 상상을 하려고..

그리고 이런 대답을 해 주려고...



-소녀야 어른이 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단다.

-어른이 된 나는 그저 그래.

-재미있는 일들은 짧게 지나갔고

-힘든 일들은 끝나기 무섭게 새로 생겨났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세상은 끝나지도 않고 잘 굴러가고,

-지금 나를 봐. 이 정도면 잘 성장했잖니.



역시나 낯 모를 소녀를 상대로 지껄일 수도 지껄여대서도 안될

황당한 대꾸를 마음속으로 읊조려 보곤 했다. 

정말 궁금해한다면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미래의 나와 만나는 참신한 방법을 선사했다.


1년짜리 예약메일을 보내는 것.



연수원에서 배운 것들이 얼마나 실천되고 있는가 하는 인사팀이 고안한 평가방식의 일부였겠지만

수신인은 오로지 나였으므로 나는 약간의 양념을 추가하기로 했다.


-연수원의 지금 분위기, 이곳의 생활을 하며 내가 하는 생각들.

-부서에 배치받고 해내야 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

-어린 만큼 과도했던 신년 계획 같은 것들 말이다.


2년 차 사원이 된 나는 정신없이, 그러나 사뭇 익숙해진 모습으로 회사원인 일상을 보내다

커다란 사무실 창밖으로 흰 눈이 정신없이 흩날리던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당장 처리해야 할 메일들이 뒤죽박죽 쌓여가고 있는 동안

창문 한번 바라볼 여유 없이 일을 하다가 받은 1년 전 내가 보낸 메일을 받고는

일순간 연수원의 공기가 파도처럼 밀고 들어옴을 느꼈다.



흩날리던 눈이 멈추는 정적의 소리를 들었다.



잔뜩 새것이었던 나의 의지와 두려움 가득한 질문들을 마주하자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그리움과 묘한 우월감이 뒤섞인

그러니까 시공을 초월한다는 건 이런 걸까 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답장하기를 누르며 1년 뒤로 다시 한번 예약 메일을 보낸다.

1년 전의 나에게 답장을 보낼 수는 없으니

대답을 쓰면서 동시에 1년 뒤의 나에게 질문도 함께 던지며...


그렇게 매년 내년의 나에게 보내는 예약 메일은 1년짜리 질문지이자 체크리스트였고.

10년을 빠짐없이 보내던 나만의 타임캡슐 속에는 미래의 나로서의 내가 실존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리원에서 새해를 맞이한 나의 노트북에 예약 메일이 왔다.


예상 못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휩싸인 나는 더 이상 내년의 내게 궁금한 것이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궁금하지가 않았다.


그보다는 내일의 나에게 질문할 것 투성이었고.

당장, 1초 안에 찾아야 할 정답들과 걱정거리들이 순서 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렇게 미래의 나를 찾는 놀이는 끝이 나는 듯했다.









어린 나는 분명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내 미래를 알고 있고,

조언할 수 있었으며,

내 질문에 막힘없는 정답을 알려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만나기를 바라 마지않던 미래인은 

동물원에 갇힌 코끼리처럼 조리원에 갇혀 있는 나에게 별안간 성큼 다가왔다.



섬광 같은 깨달음이 번쩍였다.



'나는 왜 내 미래를 알고 해주는 조언을 등한시하고

정답을 알려주는 커닝 페이퍼를 그토록 오랜 시간 지척에 두고도 질문하지 않았을까'


라는 한탄을 할 겨를도 없이

코밑까지 들이닥친 우울한 물살이 찰랑찰랑 숨을 막기 전에,

쏟아내고 들이켜야 할 이야기들이 잔뜩 있었다.

질문할 내용이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은 이야기를 내뱉음으로써 정리될 것이었다.


짧은 신호음이 끝나고 나의 미래인과 교신에 성공했다.













"...... 엄마......."
















“엄마. 나 너무 우울해.”


나는 바보같이 지나 보낸 세월에 대한 후회나 사죄도 없이 일단 나를 좀 살려달라고 할 참이었다.


“어쩌자고 내가 아기를 낳았을까.

잘 키울 자신이 없어.

이 세상에 어렵고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을까.

아프지는 않을까. 아빠처럼 불치병이라도 걸렸다간....

학창시설에는 분명 친구들에게도 상처받게 될 텐데 그거 마음 아파서 어떡해…

그보다도 이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데 내가 어쩌자고 이 아이를 세상에 불러들였을까…”


산모인 여자는 대부분 무능감에 휩싸인다.

실제로 그들은 환자이기 때문에 조리를 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방금 생을 나눈 여리고 여린 한 존재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갖게 되기 때문에

둘 사이에서 오는 역할 갈등은 우주를 통틀어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회복되지 않은 내가 당장 이 아이가 감기라도 옮으면 데리고 병원이라도 갈 수 있는가.

운전은 고사하고 아이를 카시트에 혼자 두고 떨어져 앉을 수나 있느냔 말이다.

아주 사소한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음에서 오는 무능감과 더불어 

무에 가까운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그 얼굴에 어떤 근심과 노여움이 서릴 것이 걱정되어

모든 것을 막아 줄 수 없을 미래에 대한 무능감이 더해지게 마련인 것이다.


아마도 내가 느낀 우울감의 대부분은 무능감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혼자서는 일어서는 법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아 흐느꼈다.

칭얼거렸다.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이 불안감을 어서 해소시켜 달라고 억지를 썼다.


 그동안, 미래의 나를 찾아 헤매던 그 청춘의 시간 동안, 

찾지 못해 묻지 못한 질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에 대한 질문도 아니었다. 내가 아니지만 마치 나인 것 같은.. 오롯이 온 생을 나에게 의지하는

여리디 여린 존재에 대한 부담감과 걱정스러움을 질문과 더불어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의 내가 있다면 이런 대답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미지의 대답을 듣고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엄마를 내 미래로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한 일들만 겪으며 살 수는 없어. 겪어야 할 일들을 다 겪고 살아야지.

엄마가 되었다고 나쁜 일들을 다 막아줄 수는 없어.

넌 그냥 그것들을 견딜 힘을 가르쳐 주면 돼.

아이는 생각보다 강해. 그리고 넌 내 아이고.

잘할 수 있어."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현명하고, 다정한 내 미래가 퍽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제 버스 정류장에서 미래와 과거의 나를 찾지도, 1년짜리 예약메일도 쓰지 않는다.


다만 매일 나의 미래에 전화를 건다.


더 이상 마음속으로만 질문 하지도, 이미 다 아는 대답을 1년 뒤로 보내지도 않는다.


밤사이의 안녕을 나누며, 매일의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다정한 미래가 되어간다.


먼 훗날, 나처럼 불현듯 깨우칠 그날,

그날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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