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딸 있는 어린이집 보내는 워킹맘 이야기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서사는 하나씩 있다.
나로 치자면 이른바 불우한 어린 시절.
그리고 그걸 헤쳐나간 어머니와
성실하고 능력 있는 오빠 밑에서
어떻게든 돈을 벌겠다고 한 다짐.
인서울을 이루고 대기업에 취직한 후
토끼 같은 새끼 둘을 키워내며 적당한 자리에 집을 사고
그렇게 그 다짐을 이루어낸 40년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땅의 40대가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을 저마다의 서사 중에, 내것은 몇 등이나 될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란 드라마가 이슈다.
나도 흐름에 편승하여 한 두 편 보려 했으나, 이내 숨이 막혀와 중단했다.
제목만 보면 우리 세대 누구나 되고 싶었던 스펙 그 자체 아닌가.
하지만 그는 대기업 부장들 중 몇 위였던 걸까..
서울에 수많은 자가 중에 몇 위짜리 자가였을까..
어째서 그의 아들은 그다지도 아버지를 자랑스레 여기지는 않았으며,
보는 나는 왜 그를 애처롭게 여기는 걸까.
다시 나로 돌아와,
어떤 날에 그다지도 자랑스럽던 나의 배지들이, 실상을 들여다보면 남루하기 짝이 없음을 깨닫는다.
이런 날 퇴근길에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면, 그건 마음을 나눈 친구도, 사랑을 나눈 연인도 아닌
엄마였으면 좋겠다.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만으로도 우리 딸 오늘은 좀 그런 날인가 보네, 그런 날이 있어. 하고 무심한 척 온 마음을 담아 위로를 보내는 무조건 내편.
그렇게 집에 오면 여태껏 고생한 아빠를 내팽개치듯 품속을 파고드는, 경쟁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아직 어린 두 딸이 있다.
운 것 같은 눈이네 하며 양쪽귀에 퍼붓는 딸들 목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나의 동지의 목소리 또한 내 자랑거리 아니겠는가.
대기업 문 과장도, 딸 둘 워킹맘도, 어느 것도 잘 못하는 구멍 숭숭 뚫린 사고뭉치 사십 대여서 슬펐다가..
일할 직장이 있고, 전화기너머에 과거의 내 온 세상이었던 엄마가 있고, 온 세상이 나 천지인 작은 인간들이 있고, 그 천사들을 함께 키워갈 동지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나를 그냥 나로 받아들여보려 한다.
몇 등짜리 문과장 말고, 몇 점짜리 엄마 말고,
구멍도 있고, 실수도하고, 이렇게 글 쓰기도 종종 하는..
이런 내가 있다.
남루한 배지를 자랑하지 말고,
좋아해 줄 필요도, 미워할 필요도 딱히 없는
그냥 나로서의 나를 바라본다.
무슨무슨 드라마에 나오는 무슨무슨 역할을 맡은 배우가 오늘 좀 힘든 일이 있었나 보다.
울고 싶은데 목밑에 울음이 막혀 울지도 못하는 기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나 보다.
으응-리모컨을 들고 티브이를 끄면,
그래 그냥 그런 사람이 있고,
지금 나는 가을밤에 찬 기운이 돌아 보일러를 높여두고 잠이나 청하면 된다.
타자화 하는 것은 때로 이렇게 도움이 된다.
내게 특별히 애정을 쏟지 않으면, 특별히 힘들 이유도 없다.
마음은 저절로 스스로에 애정을 쏟게 되므로, 가끔씩 냉정해져도 연민할 필요가 없다.
애를 써서 떼어내는 마음. 그렇게 더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
오늘도 특별히 평범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