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소소 Nov 28. 2023

< D-30 > 무지의 知





임신은 신비롭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처음 느껴봤다고 해야 할까.


흔한 표현으로 '아이가 사용 중이라 내 것이 아니다.' 라는 종류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내 몸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몸에 대한 무지를 자각한다.


어떻게 기능하는지, 어떻게 유지되는지,..
내 심장을 내가 펌프질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먹은 음식은 내가 주물러 연동운동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겉면(?)에 있는 나는 내가 나인 줄 알고 살고 있는데

속면(?)의 나는 겉의 내가 살도록



쉬지 않고 피를 돌게하고

소화를 시키고 또





아이도 만들어 낸다.





내 몸이 만들고 있는 작은 인간에 대해 나는 어떠한 조작도 지시도 할 수 없고

다만 작은 인간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을 비로소 느껴볼 뿐이다.



입덧을 하고, 태동을 느끼고. 몸이 부음을 감지하고,

골반이 열리고 있음에 아파하고...



그 과정 속에 ‘내 몸이 정말 내 것은 아니구나'와 동시에

‘아. 내가 정말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구나'를 깨닫게 된다.



임신한 시간 동안 그간 하지 못했던 잠시 미뤄두었던

엄마의 일생을 그림으로 그렸다.

환갑에 맞추어 책으로 엮었다.

제목도 지었고 그라폴리오에 연재도 마쳤다. #당신의 모든 날에게



그건 내가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기에

조금 더 용감해졌고

조금 덜 외로웠고


아주 많이 졸렸다.(???)



내 몸은 태어나 처음으로 아이를 만드는 일을 하느라

속면(?)에서 평소에 하던 심장 뛰기 소화시키기 외 의 과중한 업무로

자주 숙면을 권장했지만

10여 년 쉬지 않고 일만 하던 직장인은

한 달간 육아휴직 기간을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너와 나는 함께 10년 만에 다시 그림을 그렸다.




너는 나에게 용기와 여가시간을 선사했다.







해야 할 일들을 가지런히 끝 마쳐 두고
매듭 지을 것들을 잠시 묶어둔 나와 아이만의 고요한 시간.






아이를 품에 안고 예정일을 넘긴 하루하루

찬바람이 콧속을 아린 계절에

너무도 사랑하는 그 계절

명상센터 앞 선정릉공원을 걸으며

세상에 오로지 우리 둘만 있는 순간들을 만끽한다.



무언가 성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소중한 느낌.




그림에세이 보러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 D-70 > 명함 뒤에 숨지 않을 자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