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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Jun 01. 2022

내 선택지에는 포기뿐이었다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다.

우리 집은 그저 그런 평범한 집이었지만 소중한 외동딸인 나는 가지고 싶은 건 모두 가지면서 자랐다. 물론 하고 싶은 것도 대부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바이올린도 전공을 하겠다고 우기고 우겨 결국 음대입학했다.

평범한 집에 평범한 부모님에게는 버거운 바이올린을 전공하며 해맑게만 지내던 나였다.


첫 포기는 대학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당연하게 대학원을 준비했다.  

나름 유학도 가고 싶었지만 당장 레슨비를 마련하기도 힘드셨던 부모님은 나를 포기시켰다. 더 이상 레슨비와 학비를 지원해줄 수 없다고 하셨다. 내가 바이올린 레슨을 하고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는 유학은 꿈도 못 꿨다.

 

그때 레슨 해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이런 사정을 아시고 다른 친구들 레슨비의 절반도 안 되는 레슨비만 받고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도 내가 열심히 번 돈은 레슨비와 반주 비 그리고 연습실 빌리는 비용으로 모두 쓰게 되었다. 당시에 티셔츠 한 장 사는 돈이 없었는데 입을 옷이 없다고, 레슨비가 모자라다고 부모님께 투정만 부리는 못된 딸이 되어 있었다. 돈을 벌면서 대학원 준비를 한다고 열심히도 살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실력을 쌓고 입시를 치러도 매번 1순위로 뽑히는 사람은 그 대학원 교수님의 제자들이었다. 한 번은 한 대학원 시험날 모든 입시생 중 내가 제일 잘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나는 떨어졌다.

그렇게 힘들었던 생활고와 좌절 끝에 나는 대학원을 포기했다. 어렸을 적부터 10년을 해오던 것을 포기하려니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대학원을 포기하고 열심히 돈 버는 일에만 집중했다. 아이들 레슨도 하고 연주도 해서 버는 돈으로 맘껏 즐기며 살다가 갑자기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나와 결혼한 남편은 군인 장교인데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직업이다. 그땐 앞일은 생각도 안 하는 사람처럼 괜찮다며, 사랑한다며 어느새 결혼식장에서 나는 웃고 있었다.

 

그렇게 결혼생활과 함께 다시 포기가 시작되었다. 지방이었던 신혼집 탓에 직장을 포기하고 레슨 생들을 포기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포기했다.

얼마 안가 아이가 생기고 이번엔 나 자신을 포기해야 했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니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행복한 순간도 정말 많았지만 돌아서서 흘린 눈물도 행복 못지않게 많았다.



결과는 내 마음대로 정해놓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때가 있었다

꼭 그렇게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다녔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꿈에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때의 실망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서

그 무게에 짓눌린 나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꿈을 포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이 포기하는 내 모습을 질책하는 듯 느껴졌고

누구를 만나던 자신 없는 내 모습에

난 외로움 속으로 스며들고 말았다

누가 그랬나 포기하지 말라고

포기하는 것, 포기하는 내 모습을 인정하고

다시 사랑해 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도 다시 사랑해 보려고 한다

어떤 모습이건 어느 방향이건

다시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감 제로, 자존감 제로에 가까운 사람으로 살았다.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눈에 보이는 누구든지 원망만 해댔었다. 그때는 우울한 마음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그래서 우울감을 없애려는 마음마저도 포기했다. 또다시 내 시간을 포기하고 자아마저 포기했다.

그렇게 나에게는 포기만 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물론 아이들은 잘 커주었다. 엄마인 나를 사랑하고, 나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남편과도 아주 사이가 좋다. 아마 나의 포기가 그들에게는 사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두운 조각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실패한 나의 과거가 바뀌지 않으니 어두운 조각들도 그대로 박혀 있을 것이다. 포기는 그렇게 깊숙이 들어와 쫓아내고 싶어도 쫓아내 지지 않는 어둠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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