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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선생님 Jan 19. 2018

관계의 법칙 :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그 관계로 인해 내가 힘들다면 그리고 이미 노력해 볼만큼 해봤다면

제 카카오톡 숨김 목록에는 딱 한 명이 있습니다. 


바람 펴서 헤어진 구남친도 아니고, 노동청까지 갔던 이전 직장 사장님도 아니에요. 꽤 오래 친구로 지내온 사람이에요. 싸웠냐고요? 아니요 안 싸웠어요. 관계를 유지하는 게 힘들어서 도망쳤어요. 


계기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사소한 일이었죠. 취업준비와 연애 문제로 힘들던 시기에 친구들과 같이 있던 단톡방에서 나갔어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죠. 난 상황이 이러하고 다수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게힘들다. 친구가 정색하며 말하더라고요.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관계에서 그게 무슨 태도냐고. 

(어디까지나 제 시점에서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대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어요. 왜 단톡방에서 나갔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그때부터 그 친구의 연락을 다 피했어요. 비겁하게 도망쳤죠. 



그냥 그 친구는 저와 다른 사람이었어요. 전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그 친구는 타인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메뉴를 먹자고 하면 ‘그냥 따로 먹자.’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 친구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친구와 함께 식사자리에 가주는 사람이거든요. 


실은 애초에 우리는 서로 안 맞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특히 달랐어요. 저는 모든 일에 제 취향과 의견이 확실해요. 정색을 하고 이유를 하나하나 대면서 이건 아니라고 말하죠. 하지만 그게 끝이에요. 그 이상 화내는 법은 모르거든요. 바람 핀 전 남친 앞에서도 눈물만 흘리는 사람이죠. 


그에 비해 친구는 평상시에 다른 사람에게 다정한 사람이에요. 친구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기억해놨다가 직접 만들어주고, 주변 사람에게 작은 선물도 자주 해줘요. 연락도 꼬박꼬박 하곤 하죠. 그런데 자기 기분이 안 좋을 때면 화를 내요. 순간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만큼 쉽게 화를 풀기도 해요. 나쁜 건 아니라 생각해요. 그저 저와 달랐고 그 다른 점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죠. 


애초에 안 친해졌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아시잖아요. 친해지고 싶어도 인연이 안 닿는 사람이 있지만, 별로 안 맞는 사람하고 같이 살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예, 우린 룸메이트였어요. 


그것도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외국에서 같이 살았어요. 그리 가깝진 않았지만 큰 다툼 없이 6개월을 같이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동시에 아는 사람이 왕창 생겼고, 6개월 후에는 ‘친구 무리 중 한 명’으로 계속 봐야 했죠.

   

집 앞에 이런 게 있는 나라에 같이 살았었다


그 사람이 내 취향에 따라준 적도 있을 테지만, 난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눈치를 보곤 했어요. 나름의 추억 비슷한 것도 쌓였지만 피곤했어요. 관계를 유지하는데 점점 많은 힘이 들었거든요. 


안 맞는 사람하고도 맞춰가는 게 인간관계다, 서로 한 보씩 양보하면 된다, 미운 정도 정이다 뭐 이런 말이 있죠. 그런데 이런 말도 있잖아요.


내가 힘든 인간관계는 좋은 인간관계가 아니라고. 


그래서 도망쳤어요. 인간관계를 끝내는 게 또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자연스레 멀어지는 인간관계에 슬퍼할 때는 몰랐어요.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거하고도 또 다르더라고요. 사람들이 이유를 물었어요. 


‘왜? 왜 그 사람이랑 안 만나?’ 


이유를 말하기 참 힘들었어요.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면 왠지 일방적으로 뒤에서 욕하는 모양새가 될 거 같은데 그건 싫었거든요. 애초에 친해질 수 없는 사람 두 명이 어쩌다 가깝게 지냈으나, 이제는 다시 거리를 두려는 데 뭐라고 해야 했을까요. 분명 둘 다 잘못한 건 없는데. 



아직도 그 답은 찾지 못했어요. 누군가 그 친구의 근황에 대해 물어보면, ‘글쎄? 나도 궁금하다.’하고 말아요. 다시 연락해볼 생각은 없어요. 그 친구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나보다 훨씬 잘 맞는 배려심 깊은 친구들이 많으니까 잘 지낼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도 온화한 친구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내 친구일 수는 없어요. 


누군가는 그저 타인으로 남겨놓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있는 힘껏 도망치더라도, 그래서 부끄럽더라도 때로는 그게 나한테 도움이 되더라고요.


나와 다르다고 매번 도망칠 수는 없지만, 그 관계로 인해 내가 힘들다면 그리고 이미 노력해 볼만큼 해봤다면 괜찮은 선택지라고 생각해요. 혹시 누군가와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도망치는 거에도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니까 마음 굳게 먹고, 도망쳐요! 


*제목은 동명의 일본 드라마의 제목을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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