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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선생님 Jan 23. 2018

다음을 기약하는 법

<영화 : 다시 태어나도 우리> 리뷰

용하다는 곳에서 사주를 봤다. 내 옆에 앉은 아줌마는 고등학생 아들의 여자친구 때문에 왔다고 했다. 아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얼마나 사귈지 궁금해서 아들 사주를 보러 왔단다. 걱정 많은 아줌마와 나란히 대기실에 앉아 운명이란 게 진짜 있을까 생각했다.


한때는 자매 같았던 친구와 더 이상 연락도 주고받지 않는다. 처음엔 죽도록 미워했던 직장 동료와 친구가 되어 같이 밥 벌어먹고 산다. 운명의 존재는 도통 알 수 없다. 분명 내일도 볼 거라 생각했는데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꾸만 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고 어쩌다 보니 헤어지기도 한다.



인간관계 말고도 세상에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앙뚜는 6살에 린포체가 된다. 린포체는 환생한 스님을 뜻한다. 티베트 불교를 믿는 이들에게 린포체는 살아있는 부처로서 대접과 존경을 받는다. 리디크에서 태어난 앙뚜는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티베트에서 살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이후 린포체로서의 운명을 짊어진다.  


어린 앙뚜는 노승 우르간의 보살핌과 교육 속에 성장한다. 쭈글쭈글한 손으로 앙뚜의 언 발을 녹여주고, 늙은 몸으로 앙뚜가 두고 간 준비물을 학교에 가져다주는 건 모두 우르간의 몫이다. 우르간은 이전에 의사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을 했었지만, 앙뚜가 린포체가 된 이후 낮에는 앙뚜를 돌보고 저녁에는 공부를 알려주는 스승의 삶을 산다.



하지만 앙뚜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린포체는 전생의 제자들이 모시러 와서 과거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앙뚜가 전생에 산 티베트는 정치적 이유로 중국이 통행을 막고 있는 곳이다. 제자들이 오지 않자, 앙뚜는 '가짜 린포체'라는 조롱과 무시를 받는다. 앙뚜와 우르간은 앙뚜가 전생에 살았던 티베트로 직접 가기로 한다. 설산을 넘고 국경을 넘어서.


험난한 여행 끝에 그들은 티베트 근처에 도착하지만, 근처에서 바라볼 뿐 고립된 그곳에 가지 못한다. 다행히 앙뚜는 한 사찰에서 린포체로서 받아야 할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고, 긴 동행의 끝에서 앙뚜와 우르간은 이별한다.


아이와 노승은 ‘꼭 훌륭한 분이 될 거라 믿어요.’ ‘15년 후에는 제가 스승님을 모실게요.’라고 하며 헤어진다. 이미 늙어버린 노승과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을 동시에 살아내야 하는 아이에게 다음은 없을지라도.



운명이라 생각한 남자와 헤어진 나를 가장 많이 위로해준 건 별로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다. 인간관계만큼은 내 의지와 선택의 결과가 아님을 그때 알았다. 운명이 어떻게 작용을 하든 하나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관계는 언젠가 끝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과 무슨 기억을 쌓든 이별의 순간은 찾아온다.


그래서 언제 누구와 헤어지든 미련 없이 보내주기 위해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마치 모두가 운명의 상대인 것처럼 죽을 만큼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 떠나갈 때 웃으며 보내주지는 못하더라도 ‘다시 또 만나’라고 손 흔들며 미련 없이 뒤돌아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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