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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선생님 Feb 21. 2018

잘 먹고 잘 살고 싶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감상평

배고픈 취준을 견디고 취업을 했습니다. 학교 선배는 취업 선물로 메모지와 핸드크림 그리고 소화제를 선물로 줬습니다. 필수품이니 서랍에 꼭 넣어두라고 했습니다. 그때 받은 선물 중 가장 먼저 바닥을 보인 건 소화제였습니다.  


하루의 끼니는 점심부터 시작합니다. 점심을 고르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따릅니다. 한 시간 안에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비를 생각하면 9천 원이 넘는 건 부담스럽습니다. 같이 밥 먹는 사람의 취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몇 가지 면 요리와 패스트푸드 그리고 저렴한 뷔페식 백반집만 남습니다.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니 불만은 없습니다. 속이 더부룩하면 소화제를 먹고, 맛있는 게 먹고 싶은 날에는 달달한 커피를 마십니다. 다들 이렇게 살겠거니 생각하며 평범하게 먹고 평범하게 삽니다.



그 흔한 먹고 사는 이야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김태리)가 먹고 사는 이야기입니다. 혜원은 임용고시에 떨어집니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순탄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버틸 수 없을 때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돌아온 고향에서 김치 수제비를 끓여 먹고 막걸리를 담가 먹습니다. 감자를 캐면 감자 빵을 굽고 밤을 따면 밤 조림을 만듭니다. 말도 없이 곁을 떠난 엄마의 레시피로 음식을 만듭니다. 그리고 고향 친구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과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곧 다시 갈 거라던 혜원은 고향에서 겨울, 봄, 여름, 가을을 꼬박 보냅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이지만 잘 먹고 잘 살아갑니다. 땅은 정직하게 결과물을 내어주고 내어주는 만큼만 누리니 배고프지 않습니다.


크레딧에 오구 올라갈때 너무 귀여워서 오구오구 하고 울뻔했습니다


남이 결정하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남이 결정하는 삶’을 살기 싫어서 농사를 짓는 재하는 능동적인 인물입니다. 은숙은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는 직장인입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쉽게 내려 놓지는 못하지만 괴롭히는 상사를 내려칠 수 있는 정도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내용에 능동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물론, 혜원이나 재하나 은숙 그 누구도 꾸역꾸역 먹고사는 우리에게 해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을 그렸지만 그들보다 더 겁 많은 현실 속의 우리는 평생 그렇게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세 친구들의 모습은 충분한 위로가 됐습니다.



작은 것들을 쌓아가는 과정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합니다. 하지만 밝은 미래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도망칠 수 있는 작은 어떤 것입니다. 혜원처럼 아카시아 꽃을 튀겨먹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아주 매운 떡볶이일 수도 있고, 친구들과 마시는 조금 비싼 술 일수도 있습니다.


세 친구는 작은 것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마음, 서운한 마음 그리고 예쁘게 익은 사과 한 알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고 충분히 즐깁니다. 그 시간들이 쌓여서 혜연을 가난하지만 풍요롭게 고향에 머무르게합니다. 혜원의 일 년을 함께하며, 먹고산다는 건 그런 작은 것들을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과 내일을 맛있게 살고싶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잘 반영했습니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참고 견디라고만 배웠습니다. 곶감처럼 추운 겨울이 될 때까지 견디면 더 맛있어지는 게 인생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꾸역꾸역 살고 싶지 않습니다. 미래를 위에 뛰기보다는 현재의 작은 것을 충분히 누리고 살고 싶습니다. 영화는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았던 현재의 행복에 대해 넌지시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입이 군침이 돌았습니다. 가다랑어포가 춤추는 오꼬노미야끼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내일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런치 무비패스로 시사회에 참석하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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