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크크레이지> 리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애인들의 마지막 모습은 늘 낯설었다. 3개월을 만났든 3년을 만났든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으로 이별을
고했다. 나 역시도 어색하게 웃었다. 괜히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왜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이해가 안돼! 이유 좀 말해줘'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 사람은 작은 이유들을 늘어놨다. 그리고 그 모든 이유가 결국은 '네가 더 이상 여자로 보이지 않아'로 귀결됐다.
'사랑에 빠지는 데 이유는 없다'라고 하지만 실은 헤어짐이야말로 이유가 없다. 그래서 '왜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라는 질문을 위험하다. 억지로 찾아낸 헤어짐의 이유란 너무 사소해서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헤어짐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게 될 수 있으므로 상대에게 죄책감과 상처를 준다. 그래서 헤어짐의 이유는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다. 그저 더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 사랑해'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우린 헤어질 뿐이다.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의 애나와 제이콥은 눈빛을 교환하고, 어색한 첫 데이트를 하고, 사랑에 빠진다. 곧 둘이 살아가는 세상은 둘이 함께하는 침대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애나와 제이콥은 누구나 그러듯이 주변의 작은 것들을 놓아가며 애정을 쌓는다.
하지만 영국인 애나와 미국인 제이콥은 비자 문제로 떨어져 지내야만 한다. 그래서 각자의 환경에서 새로운 이성을 만나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다. 자연스레 점점 뜸해지는 연락에도 결국 둘은 서로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세상은 같은 축을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라이크 크레이지>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둘이 어떻게 사랑을 완성해가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은 속에서 둘의 관계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위태롭게 유지된다. 그리고 마지막 10분 동안 그들이 그동안 쌓아온 그것이 과연 '온전한 사랑'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애나와 제이콥 둘 다 미완의 사랑에 대한 책임은 없다. 두 인물 모두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서로를 우선순위로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뜨뜻미지근한 그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애나와 제이콥이 그 후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어색한 웃음을 짓고 괜히 시선을 피하면서 헤어졌을 수도 있다. 추억과 정을 재료 삼아 계속 함께할지도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그들의 우선순위에 이제 서로는 없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끊임없이 재확인해야 하는 시간만이 그들에게 남았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했을 당시의 나는 생각의 우선순위를 바꾸지 못해 힘들어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 '아 이거 걔가 먹으면 좋아할 텐데.'하고 생각했고 좋은 데를 가면 '여기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나와 헤어진 지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새 연애를 시작했다는 걸 알고 나서야 그런 생각을 멈췄다.
완전히 식지 못한 뜨뜻미지근한 내 마음은 그 사람의 우선순위에 더 이상 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차게 식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애나와 제이콥의 뜨뜻미지근한 마음을 보고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마음이 차게 식는 과정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가끔은 서로의 낯선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지나야만 할 것이다. 조금은 어리둥절하며 어떠한 이유도 찾지 못한 채로.
*브런치 무비패스로 시사회에 참석하고 쓴 리뷰입니다. <라이크크레이지>는 2011년에 개봉했으며, 2018년 재개봉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