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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선생님 May 02. 2018

첫사랑이 바람을 폈다  

그건 그저 나만의 상처였다

첫사랑이 바람을 폈다. 내가 아는 여자였다. 


다들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문득 ‘그게 진짜 나한테 일어난 일이 맞을까?’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마치 내가 눈으로 본 듯이 생생하던 그때의 일을 떠올리지 못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절대 잊힌 건 아니다. 가끔 잊고 살아갈 뿐이었다. 오히려 불현듯이 찾아오는 기억에 당황스러운 불쾌함에 시달렸다. 


어느 날 꿈에 날 괴롭힌 사람들이 나왔다. 꿈에서의 난 용감했고, 삼자대면을 주도했다. 둘을 미안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꿈에서 깨니 그저 무작정 덮어두려 한 나로 돌아왔다.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잠에서 깬 직후의 그 몽롱함이 꿈에서의 나와 현실의 나의 경계를 흐려주었다. 


이미 족히 백번은 들어갔던 그녀의 SNS에 접속했다. 메시지를 보냈다. 그 묵힌 시간의 힘으로 아주 덤덤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으며, 아주 상처받았다고.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는 환호했다. 내가 해냈다! 심지어 떨리거나 긴장되는 느낌도 없었다. 내가 피해자인데도 왠지 모르게 그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냥 모르는 척, 없었던 일인 척 넘어가고 싶었다. 그런 내가 영리하다고 위안하면서도 답답했었다. 난 그녀에게 약간의 질책을 했으며, 잘못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고, 불행하라는 말까지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건 정말 축하받을 일이라고. 


그리고 나는 이틀간 잠에 들어서도 몇 번을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혹시 답장이 와있을까 봐. '답장에 욕이 담겨있으면 어쩌지, 죄송하다고 하면 뭐라고 하지, 답장이 안 오면 다시 연락을 해야 하나' 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머리에 그렸다. 그런데 나는 정말 당연한 경우의 수 하나를 그리지 못했다. 그녀의 적당한 자기변명과 조금의 미안함을 서두로 다시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지난 일을 꺼내는 게 조금은 당황스럽다는 그 메시지를 보고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안 하느니만 못한 무기력한 답장을 보냈다. 


왜 나는 당황했을까 

왜 그냥 ‘시발 너는 쌍년이야 닥쳐’라고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너의 나쁜 행동을 여기저기 퍼트리겠노라 말로라도 협박하지 못했을까. 


그때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 상처 앞에 ‘이건 누구누구 때문에 생긴 상처’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됐다. 내 상처는 오직 나만의 상처였다.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누구도 위로해줄 수 없는 그저 나만의 상처였다. 가해자들을 통해 내 상처를 치료하겠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판타지일 뿐이었다. 일단 그걸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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