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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션 Aug 17. 2018

아무것도 하기 싫다

간절하게 무엇이든 하고 싶다의 다른 말일지도_

어김없이 나를 부르짖는 아이들 때문에 휴일의 달콤한 낮잠은 꿈조차 꿀 수 없다. 그래도 물을 달라, 기저귀가 축축하다 등 내게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표현을 해준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도대체 왜 우는 지 달래고 달래도 달래지지 않았던,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한번쯤 시달려 봤던 엄마라면 지금 이렇게 불완전 하게나마 표현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나은 상황인 지 알 것이다.


짐작하듯 그렇게 시작한 하루는 쉴 틈이 없다.


언제부턴가 나는 시간에 쫓기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여섯살, 세살 아들 둘을 유치원,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그때부터 누군가 타이머 시작 버튼을 누른 것 마냥 이거 다음엔 저거, 저거 다음엔 이거...나름의 매뉴얼이 생긴 집안일에 바삐 움직이고 있다. 금방 허기가 찾아오고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고 나면 애들이 오기까지 두시간 남짓 남아있다. 어젯밤 본방을 놓친 드라마를 보거나 아이들 간식, 또는 저녁준비를 하면 이 두시간은 크게 심호흡 두 번 하면 지나갈 시간처럼 아주 짧게 느껴진다.


출산을 앞둔 전 회사 후배가, 회사에 출산휴가 3개월에 이어서 육아휴직을 더 쓰겠다고 말했다가  상사로부터 복직을 장담받지 못하고 되려 3개월 쉬는 게 어디냐는 말 같지도 않은 대답을 들었다고 하소연하는 카톡을 보내왔다. 내게 자기는 어떻게 해야하냐고 묻고 있지만 답을 이미 정한 그녀다. 경력은 탄탄하지만 나이와 상황때문에 이직이 쉽지 않은 그녀에게 임신과 출산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어김없이 불리하게 작용되고 있었다. 5년 전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아기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출근을 하던 내가 오버랩됐다. 가슴이 아려온다.


육아휴직 후 결국 떠밀려 퇴사를 선택한 나는, 아기를 돌보며 그나마 회사의 소속감을 위안삼아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자존감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더이상 육아휴직 중인 회사원이 아닌, 아이 둘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는 ‘전업주부’가 된 나는, 내 힘으론 절대 헤쳐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네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야.

그 후배에게 버틸 수 있을만큼은 버텨보라고 카톡을 하니 벌써 애들을 맞이할 시간이 되었다. 부랴부랴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곳으로 나가 있자니 이 더위에 고맙게도 선선한 바람이 분다. 얼마 전 휴가를 보낸 곳에서도 이 바람을 느꼈었다. 먼저 눈이 떠진 아침, 침대에서 보이는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대로 시간이 멈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나였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었다.


아니, 무엇이든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어쩌면 극히 짧은 시간일지도 모를 이 시기가 내게 왜이리 아무것도 하기 싫게, 또는 무엇이든 (육아가 아닌 다른 무엇을) 이토록 하고 싶게 하는지_ 뭐가 맞는건지 헷갈리지만, 애들을 재운 이 밤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나는 그 무엇이든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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