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뜰 Mar 10. 2020

사이다까지는 아니더라도

9. 기업 본사에 알리기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고용노동청에서 온 등기를 받았다.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

  성차별적 질문을 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조사 결과 서류상의 기재 행위가 없어 과태료 처분 없이 경고 조치만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랬다, 현실에 사이다는 없었다.


  이제 내 손을 떠난 일이라며 털어버릴 만큼 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면접관들이 나에게 상처가 되는 질문을 한 줄도 모른 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동안 내 삶은 그렇지 못했다. 적어도 그것에 대한 사과를 받는 일이 나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였다.


  사이다까지는 아니더라도 탄산수 정도는 마셔야지!

  승리의 단맛까지는 아니더라도, 탄산의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그 어떤 일도 더 해볼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최선을 다해 내 고통에 대해 무지할 면접관을 성가시게 하겠다, 이 경험을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겠다- 그날 면접 이후 이것이 나를 움직이는 단 하나의 힘이었다. 때로는 분노가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에 맞서기로 한 어떤 이가 썼듯, 나는 쌍한 사람이 아닌 불편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무엇일까.

  면접관들 역시 한 기업의 직원으로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해당 기업 역시 이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적으로 어떤 결과를 받게 되든 그와 별개로 기업 내 담당부서에 이 사건을 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 때로 외부적 차원에서의 제재인 법보다 내부적인 제재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몇몇 사례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본사에 이를 알릴 수 있는 채널을 찾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다. '고객의 소리'와 같은 게시판은 아무래도 해당 기업의 제품에 대한 클레임을 접수하는 창구로 보여서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의례적은 답변만 받고 끝이 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본사 인사 담당부서에 직접 연락을 취하는 것인데, 대표번호는 공개되어 있지만 세부적인 부서에 대한 연락처는 찾을 수 없었다.


  사이트를 종일 뒤지던 나는 결국 대표번호로 전화를 해 도움을 요청했다.

  안내데스크의 직원에게 해당 기업 지방 사무실 채용면접 중에 있었던 일을 건의하고 싶다고 하자, 그분은 자신의 메일로 경위를 보내주면 해당하는 부서로 내용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자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내용이라면 담당자의 메일 주소를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덧붙였다. 무척이나 친절하고 사려 깊은 분이었다.


  그런 세심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나는 괜찮다고 당신께 메일을 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간략한 경위에 덧붙여 해당 기업에 내가 바라는 점을 써 내려갔다.



(전략)


해당 사건을 고용노동청에 신고했고, 최근 그 결과를 받았습니다.

해당 질문이 있었던 사실은 확인이 됐지만, 조사 결과 서류상의 기재 행위가 없어 과태료 처분은 할 수 없었고 경고 조치를 했다는 결과였습니다.


과태료 처분은 되지 않았지만, 제가 받은 충격과 상처는 명백합니다.

때문에 저는 해당 사실과 신고 과정, 결과 등을 다수의 사람이 볼 수 있는 플랫폼에 기고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해당 사건에 관심이 있는 언론에 언제든지 제보할 수 있도록 각종 창구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업체명은 공개되지 않을 것이나 저는 제가 겪은 일에 대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우리나라 0000 기업인 000에게 바랍니다.

면접에서 여성이 다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업무 능력과 상관없는 부적절한 질문을 받지 않게 해 주십시오.

본사뿐만 아니라 지방 지점에까지 이러한 기업문화가 잘 자리 잡혀 있을 때, 000의 기업 이미지는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방 사무실 면접에서 겪은 일이 000 본사의 운영방향과 일치한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성차별적인 일로 인해 000 기업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기는 바라는 마음에서 메일 드립니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한 글자씩 받아쓴 직원의 메일을 받는 이에 채워 넣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탄산수라도 원샷하고픈 간절한 마음을 담아.



탄산수라도 먹고 싶다는 강한 의지.


매거진의 이전글 난 한 놈만 패 (ps. 한 번만 팬다고는 안 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