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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뜰 May 12. 2020

그렇게 파이터가 된다

12. 나만이 언제나 유일한 내 편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 한 여성이 내가 면접 본 기업의 사무실 직원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얼마 전 면접에서 있었던 일로 화가 많이 나셨죠. 당시 면접관이셨던 부장님이 직접 뵙고 식사라도 하면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하셔서 대신 연락을 드렸습니다. 혹시 시간 어떠세요?"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당황한 마음에 생각해보겠다며 상황을 모면했다.


  역시 본사에 항의를 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용노동부의 감사 때는 받지 못했던 연락을 받았으니. 본인이 직접 연락하기에는 아무래도 껄끄러웠나? 아니, 어쩌면 나를 배려한 것일지도.

  사실 당사자에게 사과를 받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선택지였기에 지금 이 상황이 참으로 어색하고 낯설었다. 물론 그것은 상대 쪽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편과 상의 끝에 굳이 면접관을 다시 만나지는 않기로 했다.

  따로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을 잘 알겠다, 고 전해 달라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했다.




  취업 결심과 면접, 신고, 항의, 그리하여 사과의 뜻을 전해 받기까지 한 계절이 걸렸다.


  나의 가을을 통째로 갈아 넣은 이 사건에서 내가 배운 것은, 싸우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싸움은 해보기 전까지는 그 결과를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일단 싸워야 했다. 싸우지 않아도 웃을 수 있고, 싸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지만, 이기려면 싸워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이번 사건은, 지더라도 반드시 한 번은 걸어야 할 싸움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해.


  나는 다만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그런 일을 당한 스스로에게 결과가 어떻든 '할 만큼 했다'라고 말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 이 일이 다른 여성들의 앞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어쨌든 시작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였다. 그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일을 없었던 일로 묻으면 나 스스로 나를 볼 낯이 없을 것 같았다. 세상 사람이 모두 나를 떠나도 나만은 내 편이어야 했다. 나조차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나조차 나의 부당함을 돌아봐주지 않으면, 나는 누구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나 자신에게조차 외면당한 마음을 어떻게 추스르고 살아가야 하나.


  그 누구보다 내가 겪은 분노와 슬픔을 가장 잘 이해하는 내가 이 일을 그냥 넘기면, 앞으로도 나는 이런 일을 겪어도 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오로지 나만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일을, 나를 위해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파이터가 됐다.

  고용노동부, 기업 본사, 그리고 브런치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싸웠다.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싸우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나는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파이터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언제나 내 편일 나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남은 생 내내 나 자신에 대한 도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는 선언이다.


  나만이, 언제나 전적으로 유일한 내 편이므로.



필요하다면 언제고 스스로를 위해 파이터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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