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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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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이 언니 Feb 17. 2020

가족애가 강한 남자

그래도 그 남자의 최애 가족은 나


남편의 집은 가족애가 꽤나 강한 집이다.


명절 때나 친정 오빠 식구들 얼굴을 보고

때때로 생사확인 연락을 하며

잘 지내고 있으면 되었다, 하는

처가 식구들에 비해 ㅡ


잦은 시댁의 가족 모임과

가족 여행이

내게는 참 유별나다 느껴지기도 했었다.


특히 누나가 있는

둘째로 자란 남편은 남매끼리

사이가 무척 좋다.

화 '82년생 김지영' 속에서

명절날 시누이를 보고 집에 가야 하는

김지영 씨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와 똑같았던 것이다.


나는 몸이 불편하신 시어머님 대신

손위 시누이 가족들 식사를 차려주고

설거지까지 다 하고

시누이 가족들과 시댁에서 잠까지 하루 자고

처가를 가니 ㅡ

사실 빙의를 하려면 골백번도 더 했어야 했는데..


"사부인. 우리 딸이 명절 되면

3박 4일 전 부치고 설거지하려고

시집갔습니까?

처갓집이 가깝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네요~원~"하고.ㅎㅎ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시댁에 다녀왔다.

어머님 생신을 맞이하여

점심식사를 포장하고

케이크를 사서는

눈이 와서 막히는 고속도로를 달려

2시간 만에 도착한 시댁에서

내가 들은 첫마디는


"어유 음식을 만들어왔어?"라는

시누이의 말이었지만

그래도 해물찜은 맛있었고

케이크는 더 맛있었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심사가 꼬여도

열두 번은 더 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보인다.

물찜을 먹으며

내게만 새우껍질을 먹기 좋게 까주고,

내가 좋아하는 시원한 물을 건네주고,

누나와의 대화 중에

내가 행여 섭섭할까 봐 내 편을 들어주고,

설거지하는 내 뒤에 스윽 와서

미안한지 눈치를 보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누가 뭐래도

우리 남편의 최애 가족은

나와 우리 딸인 것이다.

그럼 되었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을 테니까 ㅡ


누나 가족을 배웅하고

함께 남편의 머리카락을 자르러

미용실로 향하며

오랜만에 펑펑 내리는 눈을 맞아본다.


눈이 소복이 덮인 산과 나무를 보니,

저 하얀 눈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우리 세 가족이 살 수 있는

예쁜 집이 있다면

참 좋겠다 생각해봤다.


시부모님도. 친정부모님도.

오빠네도. 형님네도.

나는 그 어떤 가족도 이제는

우리 가족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독립적으로 살아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아마 시댁, 처가의 영향으로

힘든 게 없어진다면

이 세상의 부부싸움도

꽤나 줄어들 것이라는 게

결혼 5년 차 아줌마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ㅡ

나중에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오고 싶다는 형님(남편 누나)의 바람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기를

소망하며 잠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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