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생放生, 무엇을

내가 놓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by 수연

출입문 닫습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연거푸 기계음성이 울려퍼지고, 문이 닫혔다. 입가가 아치형으로 솟는 것이 느껴졌다. 이 순간이 좋았다. 열차가 출발하는 순간. 새로 달려나가는 느낌. 그 느낌은 벗어나는 기분으로 비약했기에 출발 직전이면 못내 초조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 뒤를 쫓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붙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

이따금 호수가 있는 숲 바깥에서 우리에 갇힌 새들을 마주했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길고 폭이 넓은 날개를 접고 초록을 입힌 철망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희고 키 큰 새였는데, 앙상하고 긴 다리가 마치 새로 심은 묘목의 줄기 같았다. 정수리의 볏이 피가 번진 듯 붉었다. 안내판에 단정학丹頂鶴이라고 쓰여 있었다. 붉을 단에 정수리 정, 학 학. '정수리가 붉은 학'이라는 의미였는데, 순 우리말론 두루미였다. 나는 그냥 두루미라 불렀다. 첫 눈에 두루두루 아름다운 새라는 느낌이어서. 걸을 적마다 검은 목을 내밀었다 도로 집어넣는 모습이 궁리가 깊어 머리가 몸을 끌고가는 듯 보였고, 숙했다. 몸짓은 나긋나긋 고개는 끄덕끄덕, 천천한 걸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우아하게, 느긋이 걸어도 금세 촘촘한 철망이 앞을 막아섰고 두루미는 우두커니, 이파리가 허예진 나무마냥 밖만 향하여 선 것이었다.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다. 나는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눈길을 떨구고 인사도 없이 물러나왔다. 날아오르는 두루미를 본 적이 있다. 두 날개를 쫙 펼친 두루미는 몰라보게 커다랗고 근사했다. 바닥에 넉넉히 그늘을 드리우며 떠오르자 곧 천장에 정수리를 찧을 듯 하였고 날개를 몇 번 펄럭이지 않아 이내 철망 앞이었다. 두루미는 도로 내려와 날개를 접었다. 자기 본성과는 다르게 나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두루미. 그네들과 마찬가지로 두 다리로 걷고 멀리 나는 꿈을 가진 인간이 관여한 때문이었다. 인간은 두루미를 천연기념물에 희귀종이어서 마땅히 보호 조치를 해야 하며, 교육적인 목적 때문에라도 관찰 및 관람이 필요하다 여겨 가둬두었다. 두루미가 이 사실을 안다면, 당장 자신에게 붙은 거창한 수식이며 꼬리표를 떼내 훌훌 날아가버리고 싶지 않을까.

최대한 두루미의 관점에서 두루미를 보려 하나, 나는 다만 내 마음을 두루미에게 투사시켜 보는 것이 고작이다. 나도 너처럼, 혹은 내가 만약 너라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떤 종일지라도 본성과 어긋나게 갇혀 지내야 하는 건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한 생명의 고통을 느끼고 의식하는 건 편치 않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두루미를 방생放生한다. 놓을 방에 생명, 할 때 생, 생명을 놓아주다.

절에서는 동안거를 마치고 보름이 지나기 전, 방생放生을 간다. 방생은 그 의미를 살려 '생명 살림'이라고도 부르는데, 주로 물고기와 새를 대상으로 뭇 생명을 바다와 하늘로 놓아보내는 의식이다.

지난 일요일, 어린 물고기를 바다로 통하는 수로로 흘려보냈다. 내 생애 첫 방생이었는데, 이틀 전 꿈에 이 수로를 봤었다. 수로는 해변에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앞으론 곧장 푸르고 너른 바다였다. 바다는 가득히, 그리고 깊고 선연히 푸르렀다. 파도 없이 잔잔한 물결이 밝고 짙은 색조로 펼쳐져 넘실거렸다. 나는 친절하고 활달한 여성 인솔자를 따라 큼지막한 파이프 관으로 연결된 수로로 다가섰다. 그런데 다음 순간, 수로에 놓인 것은 물고기가 아닌 나였다. 비록 몽중이었지만 나는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었다.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규모의 미지가 눈앞에 당도해 있었다. 나는 그 흐름 속으로 나아가야 했다. '모든 모험은 첫 걸음을 필요로 하지' 라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문장같이 스스로를 북돋으려던 순간. 불가사의하게도 자연 해방감이 느껴지며 자유와 가능성, 활기로 가득차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이 충만한 기분은 드물게 잠에서 깨나고도 얼마간 지속되었다.

방생 법회가 열린 곳은 양산 통도사였다.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 불보 종찰인 이곳엔 알려진 대로 불상佛相이 없었다.

대웅전 건물은 말할 수 없이 고색창연하였다. 빛 바래고 벗겨진 나뭇결마다 그대로 천여 년의 나이테를 이룬 듯 보였다. 나는 산문 아래로 이어진 긴 줄 중간쯤 서 있다 문득 튀어나왔다. 대웅전의 빈 자리가 보고 싶었다. 내가 서 있던 줄은 대웅전 오른편 금강계단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탑 둘레를 사각으로 감도는 길이었는데, 승려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꼭 걸어봐야 한다기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그럼에도 대웅전의 빈 자리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 궁금하고 기대되어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부처를 찾는 이 두 눈이 부딪쳐 닿을 그것은 무엇일까. 혹, 내 진면목을 보게 될까. 참선하는 이라면 꼭 그 자리를 마주보는 경험을 해야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다음 부처님의 사리탑을 향하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라 여겼다.

나는 슬그머니 올라와 등산화를 벗고 대웅전에 들어섰다. 그리고 시험하듯 불단 중앙을 향하였다. 내 눈길은 서늘한 공기에 텅 튕기며 되비춰졌다. 탁 트인 그 자리가 도리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가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하나의 교신이었다. 감길 수 없이 뜨인 크다란 눈구멍의 주파수를 이마엽 내부로 들이며 빠르게 부동이 되어가는 일이었다. 나는 우두커니, 합장하였다. 반배를 하고, 깔아놓은 붉은 좌복에 무릎 꿇어 이마를 대었다. 삼배를 올리며 그 어느 때보다 극진히 나를 맞아들이고 열린 문밖으로 나왔다.

"맨 뒤로 가셔야 돼요."

다시 등산화를 신고 금강계단 줄로 향하려는데, 대웅전 밖에서 질서를 잡으시던 봉사자 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성큼성큼 내려와 조금 전 대열을 이루고 서 있던 우리 지역 이름이 적힌 깃발을 뒤로 하고 한참을 더 내려갔다. 일렬로 선 줄이 별안간 ㄴ자로 꺾이더니 차량 두어 대가 주차한 건물 모퉁이로 비좁게 이어졌다. 낯모르는 흰 머리의 보살님을 지나 줄 맨 끄트머리로 다가섰을 때, 기슭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듯 기나긴 줄 전체가 한눈에 올려다보였다. 혹, 이러다 금강계단 못 보는 건 아닌지 슬몃 불안해졌다. 개방하는 날이 아닌데 특별히 참배를 허락해준 것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두 시 가까이 되어갔다. 나는 눈을 돌려 줄 왼편, 스님들이 경전 공부 중이라는 안내판이 내걸린 한옥의 목책을 바라보았다. 기와지붕과 문머리만 남기고 빼곡히 에워싼 목책에는 법구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서 발췌한 구절을 희고 시원스런 붓글씨로 새긴 검은 판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었다.


진실로 죄라는 건 제 성품이 없는 것
그것은 어둔 마음이 일으킨 구름
그 마음 없애면 구름도 걷히나니
어둔 마음 안 버리고 죄 걱정은 말아라

나는 나의 지나친 죄책을 의식하였다. 이따금 강박적으로 들려오는 검은 소리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였다. 입춘 날 예불과 공양을 마치고 도반들과 법당에서 촛대며 향꽂이를 비롯한 불기佛器를 내와 니스 칠을 해 닦았었다. 나는 높다란 촛대 하나를 붙잡고 웅크리고 앉았는데, 알려주는 대로 하얀 천에 역시 하얀 니스를 묻혀 촛대 마디마디 곡면을 문질러 닦고 또 닦고, 광이 날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때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자의 목소리를 한 검은 소리들이 저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참선을 하며 최근 부쩍 심해진 경계였다. 그 생각이 칭찬이든 험한 소리든 자꾸 되풀이되어 들려오면 괴로웠다. 나는 멀쩡히 있다가도 이따금 두 눈을 질끈 감곤 하였다. 그러다 이따위 실체도 없는 생각 소리에 끌어당겨져 공연히 신음하는구나, 문득 자각하곤 하였다. 그럼에도 그 검은 소리들을 튕겨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비록 눈앞의 헝겊 조각보다도 더 실체가 없는 유령 같은 소리들이었지만 그 생각 소리들이 나를 당기는 힘은 질겼고, 벗어나려 하면 껌처럼 들러붙어 주욱 늘어졌다. 나는 이 소리들에 남몰래 시달리며 촛대를 닦았다. 촛대에 입혀진 도금이 광택을 낼수록 헝겊은 까매졌다. 니스가 아니라 먹을 묻혀 닦아낸 것 같았다. 나의 참선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마음을 깨끗이 하려고 수행을 하는데 마음이 맑아질수록 얼룩들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는데, 혹여 검은 소리들을 듣다 내가 검은 소리대로 생각하게 되진 않을까 불안해졌다. 나는 헝겊을 힘주어 문질렀다. 대체로 부시도록 닦여 있었지만 군데군데 구름 낀 듯 자욱하게 흐린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이 부분을 거듭 문지르다 잘 닦여 광 나던 곳까지 번져 흐려졌다. 어쩌면 나는 지나치게 닦고 있는 것 아닐까. 자꾸 생각 소리들에 초점을 맞춰 그 속 빈 소리들을 다시 듣고 쳐내기를 되풀이하듯. 어느새 내 앞의 촛대는 부시도록 찬란하였다. 나는 얼룩진 헝겊을 그만 내려놓고 옆에 계시는 선배 보살님께 점검을 받았다.

"빨리 도세요, 빨리!"

버럭, 일갈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느새 금강계단을 신명나게 걷고 있었다. 길에는 레드카펫까지 깔려 있었는데, 발을 딱 떼어놓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얼굴이 찢길 듯 웃으며 사뿐사뿐 나아갔다. 그러다 쾅, 하고 부딪는 육중한 소리에 놀라 헉, 돌아보았다, 레드카펫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포개어져 있던 기왓장 두 개가 따로따로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오른 발등으로 기왓장을 차버린 모양이었다. 깜짝 놀라 우두커니 섰는데, 주변이 술렁이며 '기왓장을 발로 밟았네'하는 일침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큰 복을 받으려고 기왓장을 밟으셨어요!"

등뒤로 다가오시던 한 보살님이 활짝 웃는 얼굴로 쾌활하게 말을 건넸다.

"꿈보다 해몽이 좋으시네요."

나는 다소 겸연쩍게 웃으며 대꾸하였는데, 뜻밖에 이런 응답이 들려왔다.

"원래 인기척을 내는 거예요. 처음 법당에 들어갈 때도 하하하, 웃으며 들어가라고 하잖아요. 내가 왔다고 표시하는 거예요."

묘하게도 보살님의 그 말씀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져 미소가 우러나왔다. 더불어 중국 선종 역사에서 유명한 일화 가운데 하나가 떠올랐다. 마조 도일 스님이 스승인 남악 회양 선사를 모시고 수행하던 때의 이야기다. 당시 마조 스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매일같이 좌복에 앉아 참선 수행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 제자를 보다 못한 스승이 하루는 좌선하는 제자 옆에 앉아 돌덩이에 기왓장을 대고 묵묵히 갈았다. 그 모습에 마조 스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스승에게 물었다. "아니, 어째서 기왓장을 가시는지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회양 선사가 내지른다. "기왓장 갈아 거울 만들려고 그런다!" 마조 스님은 슬며시 웃으며, "기왓장을 간다고 거울이 되겠습니까?" 되받았다. 스승은 곧바로 "그럼 좌선하면 부처가 되겠느냐!" 일침을 놓았다. 마조 도일은 그 소리에 자세를 풀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어찌하면 부처가 되겠습니까." 그러자 스승이 말씀하시길,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만약 수레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채찍으로 수레를 때리겠느냐, 소를 때리겠느냐" 하였다. 순간 한 점 의혹도 없이 마음이 확연히 밝아진 마조 도일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스승께 예를 갖추어 삼배를 올렸다 전한다.

그로부터 천이백여 년이 훌쩍 지나 덜컥 기왓장을 차버린 나는 다시 발을 떼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재촉하는 스님의 호령 소리 아득한 초입이 다가오고, 네모나게 뚫린 입구가 보였다. 나는 그 열린 문밖으로 첫 발을 내딛었는데,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기왓장을 차며 스스로를 방생한 걸까. 보이지 않는 내게 물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하나 둘, 걷혀가는 속으로 뚫린 눈동자 같은 태양이 마주 비추었다. 그 부신 눈동자가 말없이 말하였다. 내가 놓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갇혀 있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실은 갇힌 두루미 이전에 갇힌 두루미를 붙잡고 있는 마음을 방생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어떻게.

귀로로 향한 버스에 몸을 싣고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불 밝힌 터널을 연거푸 지나왔다. 차를 몰아 밤의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운전자들을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 채 숱하게 휙휙 떠나 보내며 문득, 방생은 매순간 하고 있구나, 생각하였다.

긴 시간 침묵하며 달려 출발점으로 돌아온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웃는 낯으로 인사를 나눈 뒤 뿔뿔이 헤어졌다. 첫차를 타고 온 지하철 역이 코앞이었다. 나는 홀로 계단을 내려가 승강장에 우두커니 섰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안내 방송과 함께 열차가 도착했다. 익숙한, 아니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출입문 열립니다 출입문 열립니다

나는 곧장 열린 문을 통과해 나아갔다.

어떤 문도 닫혀 있지 않은 곳으로.

팽팽한 이동이었다

창 너머의 밤은 어둡지 않았다

부드럽고 가벼운 질감의

이 밤은

두루미가 펼친 날개가 드리운 그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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