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주은 조약돌
12년 만의 첫 외박, 템플스테이
아침 식탁에서 우리들의 대화는 살며시 어긋났다. 아직 기회가 있다면서. 아버지가 말한 그 기회란 자잘한 맞춤법이나 표현들을 고쳐 쓸 기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에 <미뤄왔던 씀>이라는 신생 독립출판사 ‘고유’에서 주최한 첫 번째 책 쓰기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마감일이 지났음에도 보고 또 보며 차마 놓지 못하던 소설에서 오타를 발견하고 전전긍긍하다 수정해서 새로 올린 다음날이었다. 이미 하루 전 퇴고를 마친 소설 이야기에 신경이 조금 곤두섰다. 나와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 위치에 앉은 엄마는 이제 돈도 벌어야지, 하면서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 이를 테면 여행이라든지, 생활의 여유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다못해 일본 여행이라도 가야지. 일본 여행이라. 이런 맥락, 이런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즐거웠을 이야기. 나이 든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다만, 아버지의 염려와 마찬가지로 시점이 살짝 엇나간 이야기였다. 내 고민은 이제 두 화제를 벗어난 지점에 있었다.
닷새 전 생애 처음 수계식을 치렀다. 수계란 오계, 즉 뭇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으며, 사사로이 남의 연인이나 남편, 부인을 탐하지 않고, 거짓말과 험담 등 악한 말을 하지 않으며, 정신이 흐트러질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는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고 불자로 거듭나는 불교 의식이었다. 이렇듯 의식까지 거행하여 계율을 받아 지니는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바로 계율이 세상의 혼탁함에 물들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방부제의 역할을 해준다는 것. 수계식이 있던 토요일은 하늘이 푸르고 화창한 봄날이었다. 오전 열한 시 삼십 분이 되기 전, 나는 의식에 요구되는 규율대로 평소 잘 입지 않는 흰 색 웃옷을 겹쳐 입은 채 대법당 오른편 기둥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 좌복 위에 앉아 있었다. 마스크 안쪽으로 자꾸만 입 꼬리가 당겨 올라가며 미소가 지어졌다. 앞쪽 상단의 나와 제일 가까운 자리에 놓인 약사여래불상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 미소를 거울처럼 되풀이해 들여다보았다. 순간 반짝하고 눈동자만 한 흰 빛이 튀겼다. 약사여래불이 나를 향해 입 꼬리를 올려 보이며 살아있는 미소를 지었다. 감응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기뻐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이윽고 인례를 맡은 교육부국장 스님의 지도에 따라 식의 리허설이 진행됐다. 스님이 차례대로 불, 법, 승, 삼보와 계를 설해주실 계사스님을 청하고 참회와 맹세의 말을 선창하면, 신도들이 따라 큰 소리로 독송하고 반배와 삼배를 번갈아하는 식이었다. 계를 받기 전 시행하는 연비에 앞서 스님은 참회진언을 아주 큰 목소리로 외라고 강조하셨다. 내심 가장 궁금하고 기대되는 의식이 연비였다. 연비란 팔꿈치 안쪽에 향불을 놓아 따끔, 하는 찰나지간 그동안에 쌓은 업장을 태워 없애는 의식이었다. 마침내 식이 시작되고, 계사스님이 단상에 오르셨다. 나는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이 환희로웠다. 차근차근 순서에 따라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외고, 본격적인 수계식에 들어갔다. 계사스님께 삼배를 올려 말씀을 청해 듣고 난 뒤, 참회 의식이 있었다. 이것이 핵심이었다. 참회는 그릇을 씻는 것과 같았다. 그릇이 씻겨야 향기로운 것을 담을 수 있었다. 계사스님의 선창에 이어 목청껏 후창을 하는 사이 비로소 연비에 이르렀다. 나는 방금 리허설 때 인례스님이 강조하신 대로 무릎을 세운 상태로 합장하는 장궤합장 자세를 유지하며 집중해서 온 마음을 다해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를 외고 또 왰다. 그래서 우리에게 향불을 놓아주시는 증명법사 스님이 바로 옆으로 다가와 계신 줄도 몰랐다. 살포시 응, 하는 인기척이 느껴지고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스님은 마스크 위로 초승달 같은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스님께 재빨리 걷어 올린 오른팔을 내밀어보였다. 붉게 사르어지는 향불이 드디어 내 팔꿈치 위쪽을 지졌다. 제법 매운 감각이 순간 퍼졌다 사라졌다. 뭔가 말끔해지는, 개운해지는 감각이 있었다. 물론 내 안에 박힌 무엇이 말끔해지고 개운해졌는지는 아직 확연하지 않다. 다만, 이전보다 가슴 속이 시원하고 환하게 트인 것만은 분명했다.
이렇게 새롭게 씻긴 상태로 오계를 받고 수계식을 마친 그날 나는 같이 계를 받은 법우들과 함께 절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른바 템플스테이. 역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지난 12월 초 불교기본교육을 받으면서 다짐한 것이 있었다. 더는 움츠러들지 말자.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을 도전하고 체험하자. 그래서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확장시켜나가자. 2010년 겨울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홀로 제주도 여행을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집 아닌 곳에서 묵은 적이 없는 나는 사실 템플스테이를 조금 망설였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회로 여겨졌고, 도전하고 싶었다. 막상 자신은 없었지만, 여태까지 고수해온 나라는 틀을 깨부수는 경험이 될 것이란 생각에 물러서지지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이 거의 빌 때까지 내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템플스테이 신청서를 앞에 두고 1박 2일이냐, 당일이냐, 속 시원히 결정을 못 내린 채 앉아 있었다. 습관에 젖은 나와 습관을 깨고 나오려는 내가 한창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와중, 선하고 인자한 인상의 단발머리 교육봉사자님이 다가와 후자의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말씀을 하셨다.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롭게 보이는 게 있다고들 하시더라고요." 그 맑은 목소리에 마음이 확 끌렸다. 그래서 곧바로 신청서의 1박 2일 칸에 체크를 했다.
12년 만의 첫 외박이었다. 나와 같은 방에서 묵게 된 법우님은 둘이었는데, 한 분은 우연찮게도 수계식 때 내 바로 오른편에 앉아 계셨었다. 언제나 강의실 앞쪽에 앉아, 중간 혹은 뒤편에 앉곤 하던 나로선 그 뒷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던 분이었다. 단발머리를 하나로 묶고 옆머리까지 똑딱 핀으로 갈무리해 너무나도 정갈해보이던 사람이었다. 몸집은 아담했고, 자태는 단아했다. 봉긋한 연꽃잎 윤곽처럼 살며시 말린 앞머리와 총총하고 동그란 눈동자 때문에 나와 비슷한 연배일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십 년 남짓 연상이었다. 이날 부여받은 법명은 진해성. '참 진'에 '풀 해', '이룰 성'이었다. 또 한 분은 나보다 두 살 연하의 사람이었다. 방 비밀번호를 단박에 외워 닫힌 문을 열 적마다 척척 누르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간 맞춰 이빨 닦고 할 일을 다 해 마칠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한 야무지고 부지런한 MZ세대였다. 법명은 무여은, '없을 무'에 '같을 여', '은혜 은'. 둘 다 나에게 모자란 장점들을 넉넉히 가진 분들이었고, 묘하게도 엄마와 동생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었다. 나는 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인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서로서로 막힘없이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왔고 불교 관련한 공부, 개인적인 경험담을 이야기하느라 밤 시간이 풍요로웠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예불에 참여하려면 잠을 자둬야 했다. 활달하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자신이 유튜브를 보고 찾아간 봉사활동 단체가 후원금을 노리는 불순한 곳이었다고 털어놓은 무여은 법우는 제때 잠이 든 뒤였다. 진해성 법우는 그때까지 6년간의 공부 생활과 앞으로의 다짐, 포부 등을 총총한 눈빛으로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도 내 왼편에서 느지막이 잠이 들었다. 나는 잠든 둘 사이에서 약간 뒤척이며 몹시 각성된 상태로 눈을 뜨고 있었다. 무여은이 잠든 오른편 벽면 가장자리에 장지가 발린 전통 양식 격자창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 사이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탑이 보였다. 절 마당과 대법당, 경내가 그 뒤로 죽 이어져 있었다.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떻게 잠을 잔단 말인가. 이곳이 그곳인 것이다. 영원히 깨어있는 분이 살아계시는. 그리고 그가 홀로 발견하고 전한 법에 따라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계시는 곳인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고양된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질 않았다. 천장은 막혀 있지 않았다. 중앙에 격자살이 촘촘한 장지문이 붙어 언제라도 열릴 듯한, 그래서 환기가 절로 될 듯한, 더 나아가 내 머리 위 우주와 통할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한 편의 시 같았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왈칵 일어나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펼치고 삼색 펜을 집어든 다음, 어둠 속에서 써내려갔다.
밤의 속살은 하얗다
나는 오늘 더는 꿈꾸고 싶지 않다
깨고 싶지 않은 꿈속에 이미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감각을 느낀다
내가 누운 방에서 마주 바라다 뵈는 천장에
격자무늬 오래된 문짝이 달려 있다
어디로 통하는 문일까
신비로, 본체로,
잃어버린 내 본체에 닿는 문일까.
하나의 시험을 통과했다
내가 나를 이끌고 이 문 앞에 도달했다
고비라는 이름으로 나를 속이며 끌고 온 길
꿈이지만 허망하지 않은 꿈속으로
왜 이 꿈에선 깨지 않지,
처음으로 되뇌지 않는다
가만히 응시한다
네모난 창 너머 타오르기를 멈춘 별이 비추는 이 밤
아, 밤의 속살은 하얗다
이 시를 짓고 미소를 지었다. 또다시 뒤척뒤척, 둘레둘레 살피며 홀로 귀 기울였다. 그러다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게 시부저기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나직하면서도 또렷이 울리는 목탁소리를 듣고 깨났다. 그 소리가 귀에 닿자마자 벌떡 등을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네 시 삼십 분에 시작하는 새벽예불을 드리러 숙소 계단을 내려갔다. 젊은 스님들이 북과 운판, 범종을 치는 모습을 가까이서 듣고 보았던 범종루에서 새벽을 뚫고 소리가 가득히,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우리는 전날 오후 한 거사님의 안내를 받아 그곳에 직접 올라갔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집결지인 사찰안내소에 봉사자로 계시던 거사님이셨다. 그분은 그곳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질문에 영어로 능숙하고 친절하게 응대하셨다. 그런 뒤 학원장을 맡고 있다는 다른 거사님과 대화를 나누셨다. 주제는 줌 수업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들어보니 두 분의 입장이 사뭇 달랐다. 거의 아버지뻘로 뵈는 그분보다 더 연세 지긋해 보이던 학원장 거사님은 코로나 시국으로 어쩔 수 없이 줌 수업을 하게 되었지만 지금에 와선 대면 수업보다 시간 활용도도 높고 여러 면에서 더 낫다는 의견을 내놓으셨다. 이에 대해 안내자 거사님은 그래도 직접 만나서 하는 수업이 다르지 않겠냐고 넌지시 반박하였다. 나 역시 학원 강사로 일하며, 또 최근에는 줌으로 책 쓰기 프로젝트 모임에 참여하며 줌 수업과 대면 수업을 누차 경험한 바가 있어 쉽게 와 닿는 얘기였다. 내 입장으로 말하자면, 나는 둘 모두에 장단점이 있음을 몸소 체험하였으므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활용하자는 주의였다. 시간상의 효율을 따지자면 역시 줌이 편리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활기라든가 서로 간의 관계에서 오는 시너지, 친밀감은 물론 대면 수업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줌 환경의 한계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줌에서 작가님, 대표님, 그리고 일곱 분의 글벗들과 의견을 나눌 적마다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더 전달하지 못하는, 더 닿지 못하는 아쉬움이었다. 서로의 글을 읽고 합평하던 때 특히 그랬다. 서로의 말에 깊이 집중할수록, 그리하여 그 속에 담긴 진심이 더 가까이 와 닿을수록 물리적인 벽이 크게 체감됐다. 더욱이 마지막에 ‘나가기’만 누르면 곧바로 접속이 끊기게 되는 상황은 갑작스런 공백으로 허해지는 기분마저 동반했다.
오늘날의 비대면 관계는 이토록 허기지다. 후유증은 만나서 직접 얘기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솟구치는 것이다. 나는 외향적이거나 앞장서는 타입이 아니다. 그럼에도 비대면 소통은 관계에 대한 목마름과 외로움을 증폭시켰다. 물론 만남이 이 목마름과 외로움을 완전히 해소해 줄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지만. 그것은 어떤 만남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와 연결돼 있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대신 떠맡길 수 없는 자기 몫의 생을 짊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같이 담소하며 쉬어가는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찰에서 오랜만에 그러한 반가운 시간을 맞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일상에서의 만남과는 사뭇 달랐다. 일상에서의 만남이었다면 피로감이 더 컸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날 우리는 절에서 생일을 맞았다. 수계식을 통해 법명을 받고 연비를 받고, 보살계를 받고, 법의 세계에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이날 첫 모임에 우리들에게 계를 전해주신 계사스님께서 오셔서 우리들 한 명 한 명을 두루 살피며 어떻게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물으셨다. 나는 불교기초교육을 받게 된 동기가 되었던, 참으로 묘하게도 개기월식을 기점으로 온 내 생의 고비와 그 벗어남에 대해 비유적으로 간략히 풀어놓은 뒤 모두에게 시선을 돌리며 오늘은 우리 모두 법의 세계에서 새로 태어난 생일이잖아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날을 집에서 맞으면 습관적인 나로 되돌아갈 것 같아 불안하여 사찰에서 머물게 되었노라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러한 미증유의 체험들을 이어가며 함께 사는 도리를 깨닫고 싶다고 대답했다. 스님께서는 뜻밖에도, 그러려면 머리를 깎아야 되는데, 하고 응답하셨다. 그러고는 농담처럼 그 말을 맺으시고 앞으로의 공부와 신행 생활을 독려하는 말씀을 빠르게 이어가셨지만, 나는 그 말씀을 두고두고 심지어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붙잡은 채 되새김질을 반복하고 있다. 계사스님의 입을 통해 나온 그 말씀이 그 순간 너무도 새롭게 들려 지금도 떠올리면 사뭇 다른 느낌으로 울려온다. 나의 관점이 달라진, 아니 새로워진 때문일까. 연비를 할 때 이 주제와 관련한 내 안의 업장이 녹았던 걸까. 나는 사실 머릿속으로 지극히 합리적인 계획을 세워뒀었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돌아오면 의욕적으로 다시 학원 강사 일을 알아보고 계속해나가겠다고. 그런데 막상 그리해야 할 시점에 이르고 보니 그 일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졌다. 지난 책 쓰기 프로젝트 때 완성한 내 단편소설 주인공은 그 계획을 당당히 실천해냈었는데. 그녀에게 내 절절하고 간절한 생의 파편조각을 나눠준 이후 나는 어쩐지 그 인생 바깥으로 나와 버린 기분이다. 개기월식에서 벗어난 달처럼.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차일피일 미루던 습관 청산하기에 나섰다. 우선 기상 시간 앞당기기부터 시작했다. 삼 일째 되는 오늘 새벽녘, 나는 사찰에서 울리던 범패소리며 목어, 운판, 그리고 범종 소리를 떠올리고 그 울림을 또렷이 들었다. 절에 머물던 날 저녁 예불을 앞두고 안내자 거사님이 우리들을 이끌고 오른 범종루에서 각각의 불구를 치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셨던 것이 기억났다. 여기저기서 자신에 찬 대답이 튀어나왔다. 목어는 물에 사는 생명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을 깨우려 두드리고 범종은 지옥 중생들을 깨우기 위해 울린다고. 거사님은 여기에 보태어 중요한 물음을 던지며 우리를 일깨워주셨다.
"그런데 왜 그들을 깨우려고 종을 치는 걸까요. 바로 이 짐승들, 지옥 중생들이 우리 자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우리도 이렇게 윤회해왔을 테니까요. 지금은 인간이지만, 호랑이 가죽을 입은 적도 있을 테고, 새로 태어난 적도 있겠죠. 또 극락에서 생활한 적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왜 극락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벌어질까요?"
이 물음에 뒤따른 것은 침묵뿐이었다. 거사님은 좌중을 주의 깊은 시선으로 둘러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극락에서도 싫증을 느끼고 이번엔 지옥에서 한번 살아볼까, 아니면 호랑이 가죽을 한번 입어볼까, 그것도 아니면 훨훨 날아볼까, 하고 잘못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겁니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내 이성과 감성은 다 같이 지극히 그럴 법하다고 납득했다. 나 역시 오래도록 그렇게 윤회해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꾸자꾸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망. 거사님은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행위를 예로 드셨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어본 일이 있냐고 물으시고 왜 그것을 입을까요, 되물으셨다. 바로 앞에서 귀담아 듣고 있던 나는 욕망을 추구하는 마음 때문에 사 입었지요, 라고 웃으며 화답했다. 그래도 솔직하시네, 라는 응답과 함께 친절한 설명이 더해졌다. 우리가 구태여 윤회라는 번거로운 변천을 되풀이하는 이유도 청바지를 찢어입는 것과 같은 욕망이요 변덕이 아니겠냐는 해석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충격과 함께 깊은 공감을 느껴 저녁 공양 시간까지도 법우들과 이 화제를 들먹이며 얘기를 이어갔다. 극락에서도 만족을 못했을 거라는 말이 특히 의미심장하게 맴돌았다. 기억나지 않는 전생은 차치하고라도 이번 생, 그것도 지금까지만 돌아보더라도 그 말은 적용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새롭게 나를 던져야 하는 지금, 막상 옛 길이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박범신의 소설 『촐라체』 초반에 화자인 ‘나’는 스님이 된 ‘현우’에게 차마 뱉지 못하는 말을 속엣말로 묻는다. '왜 하필 그 길이냐.' 현우는 그 마음을 읽고 소리 내어 응답한다. "그리워서요." 비록 하룻밤 인연에 불과하지만 절에서 묵고 난 지금에야 비로소 이 대답이 이해가, 아니 공감이 된다. 나도 그립다. 하룻밤 사이에 만리장성이라도 쌓은 것인가. 하긴 사리탑을 가까이 두고 보며 밤을 지새웠으니 어디 만리장성뿐이겠는가. 나유타겁 만큼의 보이지 않는 인연의 탑이 쌓이고 세워졌으리라. 이날 오후 우리들에게 보낸 영상편지에서 주지 스님께서는 앞으로 우리들의 신행 생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시며, ‘마음의 고향’같은 사찰이 되어드리겠노라 말씀하셨다. 일상과 습관에 떠밀려 잠시 잊힌 듯 가리어졌던 마음의 고향이 사찰에서 하룻밤 지내는 사이 강렬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난 것을 느낀다. 이 솟아나는 그리움의 원천은 무엇일까. 정확히 헤아릴 순 없지만, 사무치고 절절해져 쓰고 찾고 되풀이할 내 운명이 문득 그려지는 건 우연이 아니겠지. 내 법명은 월륜행이다. '달 월'에 '바퀴 륜', 그리고 '다닐 행'. 기어이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운명인가. 아니, 이 두 발과 손이 닿는 모든 곳이 그곳이 되도록 마음껏 세상을 누벼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