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_ 둔갑
서울 종각
대한 빌딩
오전 9시
로비의 거대한 자동문이 수많은 직장인들을
아가리를 벌려 삼키듯 실어 나르고 있다.
그 틈바구니에, 갓 실려 들어온 누군가의 운동화 한 켤레.
뒤꿈치에 힘찬 맹수 한 쌍이 도약하는 포즈가 무색하게도
발걸음은 영 매가리가 없다.
자신의 살벌한 전장을 향해, 간헐적 야근의 부산물인
양쪽눈의 쌍눈곱을 떼어내며 묵묵히 전진하는
광고회사 SKY AD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유나
SKY AD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무수한 뒤통수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잠시 멈춰서 생각에 잠긴다.
바야흐로
정보와 디지털,
검색과 인공지능이
설쳐대는 AI 시대
...
라고들 하지만
야만과 살육,
잔인무도와 계략,
생존본능이 설쳐대는
이곳은
동물의 왕국일지도...
엘리베이터 홀은 오늘도 복작복작하다.
승강기 하나가 만원으로 올라가자마자,
그 옆 엘리베이터가 운 좋게 1층으로 내려온다.
라유나는 오만원이라도 주운 듯,
속으로 '아싸!'를 외치며 뛰어들 듯 탑승한다.
닫힘 버튼에 손을 뻗는 찰나! 명품 하이힐 한 짝이
그 틈을 밀고 들어와, 기어이 평화를 훼방 놓는다.
라유나의 시선이 불청객의 신발에서
브랜드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박힌 핸드백과
온갖 과시형 액세서리들을 지나
마침내 종착역인 얼굴을 향해 올라간다.
아놔, 아침부터 맹은하 팀장이다.
“어머! CD님~ 안녕하세요!
키비주얼 보낸 거 벌써 피드백이 와서요. CD님
아침부터 왜들 그렇게들 난리인지~
근데 CD님, 오늘따라 피부에 광이 아주…
요즘 뭐 바르세요 CD님?"
CD라는 본분을 절대 잊어선 안된다는 듯,
CD로 온통 도배된 아침 인사와
음절 사이사이 교묘히 숨겨둔 더 피곤한 피드백.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듯
이마 곳곳에 봉기한 허연 각질들을
손끝으로 꾹꾹 눌러 달래가며 라유나가 말한다.
“팀원들, 어제 새벽까지 작업해서 보낸 거 아시죠?
점심들 먹고 천천히 나오라고 했어요.
수정, 급한 건 아니겠죠?”
“네? 아 네... 제작팀이 늘 고생이시죠~
일단 올라가자마자, 피드백 정리해 보내드릴게요
일정은 나중에 한 번에 말씀드릴게요."
일단.
나중에.
한 번에.
유독 싫어하는 표현들만 콕콕 박힌 문장을
아침부터 선물 받고서 급 언짢아지지만
그렇다고 티를 낼, 라유나가 아니다.
“네, 오케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순간! 반사면에 비친
기이한 형체가 라유나의 눈에 쓱 들어온다.
주둥이는 길고 뾰족하고, 귀 뒷부분은 빛깔이 어두우며,
눈꼬리가 한껏 추켜올려진 데다, 이마와 코 주변으론
갈색과 오렌지색, 입 주변으론 흰색털로 뒤덮여 있는
붉은여우.
일명 불여시다.
킁킁대듯 미세하게 떨리는 콧잔등부터
살짝 열린 입가의 날카롭게 빛나는 송곳니,
단단히 조여진 턱 근육 주변까지,
억센 여우털이 빈틈없이 빽빽히 감싸며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을 교활하게 허물고 있다.
불여시는 라유나를 곁눈으로 흘깃하며,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포식자처럼,
아무 미동 없이 관망 중이다.
라유나는 반사면에서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실제 맹은하를 직면한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듯 인간의 형상으로
맹... 하게 층수 버튼을 바라보고 있는 맹은하.
15층 사내 카페 라운지에 도착하자, 최소한의 각도로
고개만 까딱! 하고, 불쾌할 정도로 경쾌하게 하차한다.
또 시작이다.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다시 재발이다.
이인증 (Depersonalization)
라유나는 가끔
자신이 마치 정교하게 구성된
세트장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의 얼굴은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눈동자에선 초점을 찾을 수 없고
입꼬리는 웃고 있지만 의미는 없어 보인다.
표정은 있는데 감정이 없으며
행동은 있지만, 품고 있는 온도가 없다.
그럴 때면, 라유나의 뇌는
그 ‘텅 빈 공허’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자신만의 상상으로 급히 메꾸는 것이다.
이인증의 발현은
3년 전, 스카이 애드로 옮기고부터였다.
거대 기업 속,
사람들의 거대한 결핍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그 속에서
‘동물들의 윤곽’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이건
단순한 환각이 아닐지 모른다.
인간을 상대로 공허해지는 감정을 빠르게 복원시키는
라유나식의 생존 방식이자,
현실에선 해석불가한 상대의 본능을 번역하는
라유나만의 생존 언어일 수도 있다.
라유나는 가방 속을 재빨리 뒤져,
몇 주 전 처방받은 약을 발견한다. 알프라졸람 0.25mg.
‘긴장 시 복용, 단기 사용 권장’
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바늘처럼 날선 털들이 살갗 밑에서 뚫고 나오고
입은 귀 밑까지 잔인무도하게 찢어지며
눈빛은 당장이라도 상대를 찢어발겨 포식할듯한,
그 끔찍한 순간을 홀로 감당해야만 해도
그로인해
두 손바닥이 젖도록 온몸이 땀으로 뒤덮이고
등줄기가 얼어붙을 만큼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아도
라유나는 일단,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버텼다.
약 한 알로
이 모든 공포가 단숨에 잠잠해질지 몰라도
부작용인 무기력감으로
남들 먹잇감이 되는 건
훨씬 더 공포스러운 일이니까.
약을 삼키는건 결국,
약에게 삼켜지는 거니까.
라유나는 약봉지로부터 아쉬운 듯 시선을 거두고
휴대폰을 열어, 팀 단톡방으로 들어간다.
'아침에 광고주 피드백 온 거 공유…'
라고 쓰다가, 이내 지워버린다.
오늘 새벽이 되어서야,
저마다의 깊은 굴 속으로 돌아가
곤히 잠들어 있을 팀원들에게
적어도. 최소한.
불여시 같은
팀장은 되긴 싫어서...
Credit cookie
#SKY AD 동물원 #맹은하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 #식육목 #개과 #3초 후 여우됩니다
#성형위장술 #명품없인 출근불가 #출근길부터 사냥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