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 부딪힌다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이 고생을 하더라도 묵묵히 바라본다.
예전에 미리 앞서 도우려 했지만, 결국 자기 고집대로 밀어붙이고는 실패를 경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도 그냥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 사람은 늘 그랬다.
문제 해결 능력은 부족하면서 오히려 상황을 더 크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상의할 일이 있으면 모르게 진행하는 것이 속이 편했다.
간섭은 간섭대로 하면서도, 정작 문제를 수습하는 몫은 늘 우리에게 돌아왔다.
주변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나서서 도와주지 않느냐고 의아해하겠지.
하지만 일일이 설명하려면 더 큰 무력감만 느껴진다.
정작 그 사람은 뭐든 함께하고 싶어 하고,
다 알고 싶어 하며, 왜 자신과 상의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관계라는 것이,
결국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의 차이가 클수록 오해와 갈등은 커지고, 관계의 거리는 멀어진다는 사실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젠 진솔한 교류는 어렵다.
수면 위로 꺼내 논쟁하기에는 이미 쌓인 골이 너무 깊고, 남은 시간은 한정적이다.
변화보다는 부딪힐 횟수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긴다.
모두가 평안하길, 별 탈 없기를 바랄 뿐이다.
돌아보며 복기하는 습관이 생겼다.
단점이라면, 멈춰 서서 과거를 두세 번 곱씹는 일이 잦아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주변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때론 참 피곤하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지곤 한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상황은 조하리의 창이 보여주는 그림과 닮아 있다.
그 사람은 스스로 보지 못하는 ‘눈먼 영역’이 크다.
나는 그 사실을 알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으니 ‘숨긴 영역’ 또한 넓어졌다.
결국 서로의 ‘열린 영역’은 좁아지고, 대화와 신뢰의 공간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투기보다는 거리를 두는 길을 택한다.
조하리의 창은 말한다.
우리가 서로의 시선을 조금씩 나누고, 나에 대한 인식을 피드백으로 받아들일 때 ‘열린 영역’이 커진다고.
하지만 어떤 관계는 굳이 그 과정을 강제로 시도하기보다,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더 지혜로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사진_일본 가마도지옥에서 찍은 예쁜 돌멩이